최태원 "한일 협력은 생존문제…EU처럼 경제·안보 묶어야"
일본 닛케이포럼서 연설
미·중 패권 경쟁과 저성장 시대 대응 위해 협력
에너지·AI·반도체 공동 투자로
성장 확보하고 비용 절감해야
미·중 패권 경쟁과 저성장 시대 대응 위해 협력
에너지·AI·반도체 공동 투자로
성장 확보하고 비용 절감해야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9일 일본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닛케이포럼 한일특별세션에서 한일 협력의 수준을 기존의 산업·기업 간 협력을 넘어 경제와 안보를 포괄하는 경제공동체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회장은 세계 경제 질서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독립적인 산업 구조를 구축하며 거의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나라가 됐고, WTO 체제 아래에서 자유무역의 혜택을 누리며 성장해 왔다”며 “하지만 이제 그 질서는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시작됐고 이 갈등은 수십 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며 “과거의 자유무역 질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복원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과 일본이 공통적으로 저성장과 인구 감소라는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반면 미국과 중국은 여전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회장은 “결국 우리는 미국이 만드는 룰을 따라가고, 중국이 만드는 룰을 따라가고, 유럽이 만드는 룰을 따라가는 처지에 놓여 있다”며 “안보적으로도 완전히 자립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협력을 통해 규모를 키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상품 하나를 같이 만들자는 수준의 협력이 아니라 경제와 안보를 모두 아우르는 협력이 필요하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선진국이지만 지금과 같은 국제 정글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더 큰 덩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한일 협력의 핵심 목표로 ‘성장’과 ‘비용 절감’을 제시했다. 그는 “양국은 저출산과 고령화 등 사회 문제로 인해 비용 구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며 “비용은 계속 증가하는데 성장은 정체돼 있어 지금의 구조로는 미래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비용 낮춰야 사회 전반 비용 낮출 수 있어"
대표적인 협력 분야로는 에너지를 꼽았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에너지 비용을 낮춰야 한다”며 “에너지 개발과 활용을 공동으로 추진하면 사회 전반의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에너지 안보도 강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에도 공동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전력이 필요하지만 전기는 저장과 관리가 쉽지 않은 자원”이라며 “전기화 사회로 전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막대한 만큼 양국이 함께 인프라를 구축하면 비용을 10~20% 절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헬스케어 분야 역시 협력의 잠재력이 큰 영역으로 제시했다. 최 회장은 “치료기술과 보험 시스템 등을 공유할 수 있다면 연구개발 비용과 사회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비용을 낮추는 모든 전략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관광 분야에서도 새로운 협력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해외 관광객이 한국과 일본을 동시에 방문하는 상품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며 “양국이 공동 관광 상품을 개발하면 두 나라 모두 혜택을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이처럼 작은 협력부터 큰 협력까지 성장과 비용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지정학적 도전을 극복할 수 있다”며 “현재의 국제 정세가 계속된다면 한일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주최하고 SK그룹과 최종현학술원이 공동 기획했다. ‘견고한 한일관계를 뒷받침하는 다각적 경제협력’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 김진표 전 국회의장, 도쿠라 마사카즈 스미토모화학 고문 등 양국 정·재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도쿄=최만수 특파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