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의무=사용자성 인정?…산업안전은 근로조건인가
한경 CHO Insight
개정 노동조합법이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하는데, 현재 노동위원회가 인정하고 있는 산업안전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 판단은 과연 ‘근로조건’에 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지, 최근 판정례를 살펴보면 이에 대한 검토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노동위원회의 판단 사례
노동위원회는 제조업 A사 사건에서 산업안전보건 의제에 대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원청이 ① 공장 설비와 작업공간을 관리하고 ② 위험성평가 ③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④ 사고 대응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실질적 지배력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였다.
한편 건설업 B사와 C사 사건에서 노동위원회는 ① 원청이 전체 공정을 총괄 관리하면서 ② 안전예산 편성 ③ 작업중지 조치 ④ 안전시설 운영 등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면서, 특히 건설현장에서는 어느 한 하청업체만으로는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원청만이 현장의 안전성 확보가 가능하다는 취지로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였다.
유통업 분야에서도 비슷한 판단이 나타난다. D 면세점 사건에서는 노동조합이 통합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위생·편의시설 개선, 고객응대 노동자 보호 매뉴얼 등을 의제로 제시하였는데, 노동위원회는 판매사원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은 브랜드사이지만 사업장 내 위생·편의시설과 고객응대 보호체계에 대해서는 면세점 운영주체가 실질적 권한을 가진다고 보아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였다.
E 고객센터 사건에서는 감정노동 보호, 고객응대 매뉴얼, 휴게환경 등이 문제되었다. 노동위원회는 고객센터 업무가 원청 사업에 편입되어 있고 고객응대 체계와 업무 운영기준을 원청이 결정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 산업안전은 물리적 안전을 넘어 감정노동 보호와 고객응대 환경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산업안전 의제 사용자성 판단의 문제점
그러나 이러한 판단이 과연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에 대한 핵심에 부합하는지는 상당히 의문이다. 요컨대 현재 노동위원회의 판정서들의 판단 구조는 대체로 '안전관리 의무=사용자성 인정'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노동위원회가 산업안전 의제로 인정하는 근거 중 위험성평가, 안전관리체계 구축, 안전예산 편성, 사고조사 및 재발방지 대책 수립 등은 대체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 타 법률에 따라 원청사용자에게 이미 의무가 부과되어 있는 사항들이며, 해당 의무들은 하청 근로조건 통제에 대한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 아님에도, 사용자성 인정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노동위원회의 사용자성 인정근거는 대부분 작업장과 설비의 소유·관리, 안전관리체계 운영, 사고 대응 권한 등 사업장에 대한 관리권한에 집중되어 있는데, 사업장 관리권은 시설이나 장비에 대한 관리 권한이고, 근로조건 결정권은 사용자로서 근로자와의 관계에서 행사되는 권한이라는 점에서 양자는 구별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원청이 공장이나 건설현장을 관리, 출입을 통제하며 안전규칙을 시행한다고 하여 하청 근로자의 임금, 근로시간, 휴게시간, 복리후생 등 어떠한 근로조건도 결정한다고 보기 어려운 것과 같다.
#예상 파급효과와 우려
이와 같은 판단 경향은 향후 현장 노사관계에 상당한 불확실성을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노란봉투법이 산업안전 의제 교섭하라고 만들어진 것인지도 매우 의문이고, 이 법이 왜 만들어졌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위원회는 산업안전 의제에 대한 사용자성을 인정하면서도 어디까지가 산업안전의 영역인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산업안전 의제는 다른 의제로 쉽게 확장될 수 있으므로 현재와 같은 산업안전 의제에 대한 포괄적인 사용자성 인정은 상당한 노사갈등과 혼란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산업안전의식 고취를 위한 수당의 지급, 유급 휴게시간이나 휴게시설 확충 등의 문제로, 업무수행 방식과 평가체계 문제로 충분히 확대될 수 있다. 실제 일부 교섭요구안에서는 산업안전 의제의 범위에 작업중지권 보장, 위험수당 지급, 혹서기 유급 휴게시간 인정, 식당 확충, 안전보호구 지급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산업안전은 분명 중요한 가치이고, 안전한 사업장을 만드는 데에 원하청이 합심하여야 하며, 원청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원청에게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는 것과, 산업안전을 의제로 교섭을 하자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이미 타 법률에서 요구하고 있는 원청의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과, 산업안전을 기화로 단체교섭을 하고, 사용자로서 부당노동행위나 쟁의행위의 위험을 부담하는 것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노동조합법과 산업안전 관련 법률의 균형 있는 해석이 필요한 때다.
김영민 법무법인 태평양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