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의 맨 앞 서면 먹잇감 된다"…리스크 대신 안전성 택한 CEO
2000년 새해 첫날 새벽 CNN에 오리 한 마리가 등장했다. 이 오리는 ‘꽥’ 대신 ‘애플랙’이라고 울었다. 10%에도 미치지 못하던 미국 보험사 애플랙의 브랜드 인지도가 단숨에 80%를 넘어선 계기다. 이 회사 매출은 이후 3년간 두 배로 늘었다.

모두가 반대하던 이 광고의 시안을 밀어붙인 인물이 댄 에이머스 최고경영자(CEO·사진)다. 그는 1990년부터 36년간 애플랙을 이끌고 있다. 워런 버핏이 벅셔해서웨이 CEO에서 물러난 이후 포천 250대 기업 경영자 중 최장수 CEO다. 에이머스 CEO는 애플랙을 이끌며 한 번도 연간 실적 전망치를 밑도는 실적을 낸 적이 없다.

‘장수’ 비결에 대해 에이머스 CEO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들은 특정 상황이 발생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할지 짐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이머스 CEO는 또 단순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90년 CEO에 오른 뒤 5개국 사업에서 철수하기로 한 결정이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그는 진출 국가를 줄이고 미국과 일본 시장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 결과 애플랙의 연간 매출 170억달러(약 26조원) 중 절반 이상이 일본에서 발생한다. 일본 4가구 중 1가구가 애플랙 보험에 가입돼 있을 정도로 입지가 탄탄하다. 오리 캐릭터 역시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에이머스 CEO는 특히 일본 문화를 존중하며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일본 사업을 미국 본사에서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그들이 현지 문화에 맞게 운영하도록 맡긴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신중함은 투자 철학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글로벌 보험사가 높은 수익률을 노리고 투자에 나선 사모신용 상품을 애플랙은 외면했다. 대신 채권 투자를 선호했다. 에이머스 CEO는 “(투자 실적에서) 경쟁사를 앞서 나가려는 욕심은 없다”며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보듯 무리 앞쪽으로 너무 멀리 나가면 사자의 공격 대상이 되기 마련”이라고 했다.

한명현 기자 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