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잊게 만드는 독한 藥…술, 예술의 오브제가 되다
'현대미술 이단아' 데이미언 허스트의 주류(酒類)의 삶
시상식서도 필름 끊긴 애주가
죽음의 공포 직면한 뒤 금주
영원불멸 담은 앱솔루트 보틀
죽음의 유예를 그린 벡스 라벨
캔버스 밖 예술을 술병에 박제
시상식서도 필름 끊긴 애주가
죽음의 공포 직면한 뒤 금주
영원불멸 담은 앱솔루트 보틀
죽음의 유예를 그린 벡스 라벨
캔버스 밖 예술을 술병에 박제
그럼에도 전시 자체의 예술적 성취와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그가 제시한 ‘죽음’이라는 화두가 시대를 초월한다는 점을 확인시켰고, 작품의 제작 방식과 그 적절성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 자체가 활발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이 전시에 수많은 관람객의 발길이 이어진 이유다. 그렇다면 시대의 아이콘인 그의 삶은 어땠을까. ‘악동’이라는 별명답게 그의 인생은 ‘술’을 떼어 놓고 논하기 힘들다.
시상식에서도 취해 버린 애주가
허스트는 젊은 시절 지독할 정도로 술을 탐닉했다. 1995년 영국 현대미술의 최고 영예인 터너상을 수상하는 역사적인 자리에서도 완전히 취해 수상 소감조차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그는 “당시 받은 2만파운드의 상금조차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는 술을 음미하는 수준의 애주가가 아니라 오로지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시고 코카인까지 곁들이는 방탕한 중독자에 가까웠다.다행히도 현재의 그는 술을 멀리하고 있다. 변화의 계기는 2002년 찾아왔다. 전설적인 펑크 록 밴드 더 클래시의 조 스트러머, 예술가 마이클 주프와 밤샘 작업을 하던 어느 날이었다. 아침 9시쯤 담배를 찾던 그의 시야에 일곱 갑의 빈 말버러 라이트가 들어왔다. 140개비 모두 자신이 피운 담배였다. 충격을 받은 그는 그길로 금연을 결심했고, 담배를 피우고 싶게 만드는 술까지 함께 끊어내며 방탕한 과거와 작별했다.
이듬해 파머시는 칼튼 런던 레스토랑 어워드에서 최고의 디자인 레스토랑 상을 받았지만, ‘약국’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영국 왕립 약학회와 갈등을 빚는다. 이 때문에 레스토랑 이름은 ‘아미 챕’을 거쳐 ‘파머시 레스토랑 앤드 바’로 두 차례 바뀌었고, 2003년까지만 운영됐다.
예술을 술병 속에 담다
허스트는 1998년 자신의 대표작인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을 통해 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포름알데히드를 가득 채운 유리 진열장 안에 뱀상어 사체를 넣은 작품으로, 앱솔루트와의 협업에서는 사체 대신 시그니처 보틀이 배치된 모습이 담겼다. ‘영원히 썩지 않게 보존한다’는 포름알데히드의 속성은 브랜드의 영속성을 증명하고 싶은 앱솔루트에 더할 나위 없는 헌사였다.
이 시리즈의 정식 명칭은 ‘제약 회화(Pharmaceutical Paintings)’다. 그가 작품마다 LSD, 비소, 모르핀 같은 화합물 및 약품명을 붙인 이유는 현대인이 종교의 자리를 대신한 과학과 의학에 의지해 죽음을 유예하려고 한다는 점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질서 정연하게 배치된 알약 같은 점들은 인간의 고통을 치유하려는 현대 의학의 차가운 시스템을 상징한다. 벡스의 이 한정판 보틀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고, 현재는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뮤지엄(V&A)에도 소장돼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허스트는 예술을 캔버스 밖으로 꺼내 술병에 담았고, 레스토랑으로도 만들어 우리 삶의 영역에 의도적으로 침투해 왔다. 이달 말까지 열리는 특별전은 그가 걸어온 입체적인 예술적 행보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다. 그와 작품에 대한 평가는 아마도 전시장을 찾은 관람자의 몫으로 남겠지만 말이다.
정인성 책바 대표(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