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를 물들인 진은숙 "30년의 궤적, 동서양의 경계없는 저만의 음악"
[제81회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
작곡가 진은숙 단독 인터뷰
81년 전통의 클래식 음악제 상주 작곡가로 위촉
5월 29,30일 두차례 공연…30년의 궤적 무대에
대원음악상 대상,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 상주작곡가 선정
작곡가 진은숙 단독 인터뷰
81년 전통의 클래식 음악제 상주 작곡가로 위촉
5월 29,30일 두차례 공연…30년의 궤적 무대에
대원음악상 대상, 베를린콘체르트하우스 상주작곡가 선정
체코 프라하에서 매년 5월 열리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가 81번째 생일을 맞아 파격적인 선택을 했다. 한국인 작곡가 진은숙을 상주 작곡가로 위촉한 것이다. 81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진은숙은 명실공히 동시대 최고의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2024년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3월에는 BBVA 재단의 지식 프런티어상을 받았다. 국내서는 오는 8일 제14회 대원음악상 대상을 수상한다. 최근엔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의 2026/27 시즌 상주 작곡가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지난 5월 30일,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는 체코 프라하 현지에서 진은숙과 만났다.
30년 인연이 프라하로
진은숙과 앙상블 모데른의 인연은 30년 전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앙상블 모데른은 진은숙의 곡 ‘말의 유희’를 연주했다. 이후로 진은숙의 대부분 곡들 독일 초연은 그들이 해왔다.
축제의 예술 감독은 지난 3년간 베를린과 프라하를 오가며 기획에 공들였다. 그는 "앙상블 모데른 디렉터와 몇 년 동안 진은숙에 대해 이야기해 왔다"며 "우리가 꼭 가져오고 싶었던 그녀의 음악들이 많았고, 앙상블 측에서도 그녀와 작업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고 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비로소 (진은숙을) 프라하로 모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진은숙은 이번 축제를 계기로 처음 프라하를 찾았다. "유럽에 40년 넘게 살았지만, 공식 초청을 받아 체코에 온 것도, 이 페스티벌에 참가한 것도 모두 처음이에요." 그럼에도 프라하는 낯설지 않았다. 특히 예술과 지성의 도시로 오래전부터 각별히 여겨온 곳이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의 책을 거의 다 읽었고, 야나체크나 요즘 활동하는 온드레이 아다멕처럼 체코 작곡가들의 음악이 그들의 언어와 굉장히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오래 전부터 눈여겨봐 왔습니다. 직접 와서 확인하니 프라하가 더욱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30년의 궤적, 이틀의 무대
"제 커리어의 아주 초기, 중간, 그리고 최근작까지 총 3곡의 궤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음악 언어가 세월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전달하고 싶었죠."
작곡가의 예술적 궤적을 총망라한 회고이자, 현대음악이 난해한 악보의 세계가 아닌 '소리의 경험'임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첫날 선보인 곡 '말의 유희'는 죄르지 리게티 문하를 떠나 베를린에 정착할 무렵 쓴 초기작이다. 작곡가로서 극심한 슬럼프를 극복하게 해 준 첫 앙상블 작품이라고 그는 회상했다. 진은숙이 창조한 '인공 언어'를 사용해 텍스트의 의미를 해체하고 순수한 음색의 유희를 강조했다. 소프라노의 정교한 발성과 목관악기의 섬세한 음색이 격자처럼 얽히는 곡이다.
이날 청중들은 프라하는 물론 유럽 각지, 특히 진은숙의 활동 근거지인 독일에서 공연을 보기 위해 넘어온 이들이 많았다. 진은숙표 음악 텍스트와 혁신적인 곡 전개는 이날 객석을 압도했다.
35년 전 쓴 곡을 마주한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각기 다른 캐릭터를 가진 여러 악장을 만들고 인공적인 언어를 사용한 곡이죠. 지금 돌아보면 내가 그때 이걸 왜 썼을까 생각도 들고요. 쓸데없이 음악을 어렵게 만든 부분이 분명 있죠.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제 작품 앞에서는 늘 그렇습니다. (웃음)"
같은 날 연주된 '코스미기믹스'는 우주가 연상되는 곡이었다. 피아노 줄로 전혀 새로운 음색을 만들고, 타악기의 불규칙한 마찰음으로 미지의 우주 공간을 청각화했다. 음악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장한 파격, 음악에 대한 청중의 관성을 와르르 무너뜨리는 공연이었다.
진은숙은 '구갈론'이 자신의 음악관을 바꿨다고 했다. 동서양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뛰어넘어 진은숙의 음악관이 정립된 곡이다.
"제가 어렸던 1960년대 동네에 오던 약장수들의 거리 공연 기억에서 출발했어요. 일상에 오락이나 유흥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는데 한 달에 한번 유일하게 위안받는 시간이었죠. 무엇보다 '음악은 반드시 이 정도 수준이어야 한다'는 서구 중심적 강박을 스스로 허문 계기가 된 작품이에요. 들으면 굉장히 한국적이라고 느끼지만, 한국 전통음악을 직접 가져다 쓴 부분은 전혀 없습니다. 서구의 테크닉과 한국적 기억, 양쪽의 영감으로 저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려 했습니다."
공연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많은 분이 공감해 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음악을 오랫동안 좋아해 주신 독일 청중들이 프라하까지 왔더라고요. 모든 행보를 지켜보고 있다는 팬들을 만나 상당히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우리 안에서 세계적인 것을
"작곡가로 살면서 늘 편안할 수는 없는데, 꾸준히 상을 받으며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았어요. 중간중간 상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어오기 어려웠을 겁니다."
특히 대원음악상 대상 수상에 대해선 "생각지도 못한 예상 밖의 수상"이라며 "대원문화재단이 한국의 클래식계를 많이 도와주고 응원하셔서 늘 감사한 마음인데, 대상까지 받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작곡가로 작품을 써내려가는 동시에, 통영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서 그가 쌓아온 성과도 뚜렷하다. 한국의 남쪽 끝 소도시 통영과 세계적인 음악의 만남은 진은숙이 아니면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는 이 축제에서 지켜온 철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통영은 외국 단체가 와서 하고 싶은 곡만 연주하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기획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고 라인업을 철저히 통제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로 나가는 발판을 만드는 일이에요. 클래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해서 서양을 향해 고개를 숙일 이유는 없어요. 우리 안에서 세계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은숙은 자신의 음악이 현대음악이라는 카테고리에 한정되는 것을 거부해왔다. 그럼에도 실상은 여전히 난해하고 어려운 현대음악이라는 인식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그는 여유로운 태도로 낙관했다.
"음악을 듣는 판도가 상당히 바뀌고 있어요. 제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말러는 (연주조차) 안했어요. 근데 2000년대 들어서 말러 붐이 일었고 귀가 트인 거죠. 이제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연주 많이 하잖아요. 예전엔 기괴하다고 아무도 안 들었어요. 현대음악이라도 다 좋은 건 아니에요. 필터링되겠죠. 브람스나 베토벤에서 줄 수 없는 새로운 차원의 감정이거든요. 이제 그 감정을 발견하게 되면 음악을 듣는 재미가 생기는 거죠."
프라하=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