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펀드(PEF) MBK파트너스는 2023년 연성동박적층필름(FCCL) 제조사 넥스플렉스를 약 5300억원에 인수했다. 이듬해 부품 수요 급감으로 실적에 빨간불이 켜지자 보험사에 진술보장보험금을 청구했고, 올해 초 500억원에 가까운 금액을 수령했다. 업계에 알려진 대표적인 대규모 W&I 보험금 지급 사례다.

M&A 진술보장보험(W&I)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W&I 보험은 M&A 계약서상 매도인의 진술·보장 내용이 허위로 드러날 경우 보험사가 손해를 배상하는 상품이다. 글로벌 보험중개업체 마쉬에 따르면 2025년 전세계 W&I 보험 취급 한도는 916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국내 시장도 마찬가지다. 마쉬코리아가 지난해 중개한 W&I 보험 거래 건수는 2024년 대비 15% 이상 늘었고, 의뢰 건수는 두 배 가까이 급증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국내 W&I 시장 규모는 약 300~400억원으로 추산된다.

마쉬코리아 PE·M&A팀을 이끄는 이혜민 미국변호사는 "1~2년 전만 해도 건수가 조금씩 늘어나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며 "올 상반기에 이미 작년 전체 거래 종결 건수의 6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될 만큼 시장이 빠르게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SPA 사인' 이후가 더 무섭다…커지는 M&A 보험 시장

PEF 엑시트 러시와 맞물려, 대기업까지 수요 확대

국내 W&I 보험 수요가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건 PEF 시장의 성장과 맞닿아 있다. PEF는 출자자(LP)로부터 자금을 모아 기업에 투자한 뒤 매각해 수익을 돌려주는 구조라, 매각 후 분쟁이 터지면 이미 청산한 펀드로는 감당이 어렵다. 법적인 분쟁으로 비화하기 전에 최대한 보험 처리를 하는 게 효율적이다. 여기에 6~7년 전 본격화된 PEF의 바이아웃 투자 회수 시기가 도래하면서 수요가 더욱 집중되고 있다. 한 PEF 관계자는 "바이아웃 투자가 집중됐던 시기의 포트폴리오들이 본격적으로 회수를 기다리고 있어 W&I 보험이 늘어나는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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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 보험은 M&A 협상의 윤활유 역할도 하고 있다. SPA에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진술 및 보장 조항의 책임을 보험사로 넘길 수 있어 협상 난이도가 한층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한 M&A 변호사는 "W&I 보험 가입을 전제로 협상 테이블에 앉으면 계약 협상 자체가 훨씬 원활해진다는 피드백을 매도·매수 양측 모두에게서 받고 있다"며 "경쟁 입찰 딜에서는 W&I 보험에 가입한 인수 후보를 더 우호적으로 보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엔 기업 M&A에서도 자주 활용되고 있다. PEF가 보유한 포트폴리오 기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W&I 보험을 처음 경험한 기업이, 다음번엔 자신이 매각할 때 상대방 매수인에게 가입을 요구하는 식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일부 기업은 매도할 때 보험 가입을 사실상 의무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국내선 간소화 상품 등장

W&I 보험은 계약자가 보험사에 직접 가입하는 게 아니라 보험중개사가 계약자를 대리해 보험사와 담보 범위를 협상하는 구조다. W&I 보험 브로킹 시장에서는 마쉬와 에이온의 투톱 체제다. 이들 중개사는 단순 중개를 넘어 M&A 전문 변호사팀을 투입해 실사 보고서 검토부터 클레임 처리까지 전담한다.

기존 W&I 보험은 사실상 영문 계약이 전부였다. 해외 재보험사가 위험을 인수하다 보니 실사 자료부터 계약 협상까지 모두 영어로 진행됐고, SPA 조항 하나하나를 맞춤형으로 검토하는 비스포크 방식이라 시간이 오래걸리고 비용도 컸다. 최근엔 이 장벽이 낮아졌다. 커지는 한국 시장에 맞춰 해외 재보험사들도 국문 계약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SPA나 실사 보고서를 영문으로 번역할 필요도 없어졌다. 가입까지 걸리는 시간도 3~4주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국내 보험사들도 이 시장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삼성화재는 지난해 업계 최초로 국문 W&I 보험을 출시하면서 약관을 표준화하고 프로세스를 간소화했다. 삼성화재 관계자는 "영문 상품이 SPA 조항을 하나하나 테일러메이드로 만드는 방식이라면, 국문 상품은 표준 약관 안에서 담보 항목을 선택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현재 거래금액 1500억원 이하 중소형 딜을 대상으로 하며, 상한을 높이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다.

실제 보험금을 부담하는 재보험사들도 잇따라 한국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비즐리, 리스크포인트 등 글로벌 재보험사들이 한국 시장에 관심을 높이고 있고, AIG는 최근 한국 전담 심사 인력까지 새로 뒀다 이혜민 변호사는 "한국은 실사의 상대적 투명성이 언더라이팅 신뢰도를 높여 여러 해외 재보험사가 관심을 가지는 지역 중 하나"라며 "시장에 뛰어드는 보험사가 늘면서 보험 요율도 많이 내려온 만큼 앞으로 활용도는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다은/서형교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