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국회의사당역 앞. 서울시장 후보자들 선거 포스터들이 연이어 걸려있다. /사진=이정우 기자
22일 국회의사당역 앞. 서울시장 후보자들 선거 포스터들이 연이어 걸려있다. /사진=이정우 기자
"보고 있으면 짜증만 나서 정치 뉴스 잘 안 봐요."

22일 국회의사당역 앞. 유권자 최모 씨(29)는 6·3 지방선거에 관해 묻자 이같이 답했다. 최 씨는 "오세훈이 어떻다느니, 정원오가 어떻다느니가 뭐가 그리 중요하냐"며 "맨날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는데, 제가 보기엔 그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에 투표도 아예 안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6·3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2주도 안 남긴 시점에서 전국적으로 후보들의 정책 공약 대결은 실종되고 상대 흠집 내기에 매달리는 네거티브 공세가 격화됐다. 특히 각종 여론조사에서 접전 양상으로 나타나는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싸고 상대방을 향한 비방전이 두드러진다. 다만 정치권의 이런 모습에 시민들은 '정치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 정원오 "안전불감증"…오세훈 "박원순 시즌2"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뉴스1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사진=뉴스1
최근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GTX-A 철근 누락 논란'을 두고 연일 각을 세우고 있다. 정 후보는 전날 GTX-A 삼성역 구간 현장을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제가 발견되면 책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어떻게 해결할지 방법을 마련하고 다음 공사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 상식"이라며 GTX-A 공사 중지를 촉구했다.

정 후보는 앞서 20일에도 "최근 벌어진 삼성역 부실 공사는 우연이 아니라 바로 서울시의 안전 불감증 때문에 생긴 구조적 문제"라며 오 후보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오 후보는 "박원순 시즌2 후보답다"며 "과학이 아니라 괴담에 기대어 시민을 선동하는 무책임한 후보에게는 절대 시민의 삶을 맡길 수 없다"고 맞받았다. 또 오 후보는 이날 광진구 동서울터미널과 건국대 앞 번화가를 연달아 찾아 "서울시 들어가 보니 박원순 전 시장 주변에 붙어먹고 사는 시민단체 출신이 수십 명"이라며 "정원오 후보가 당선되면 '박원순 시즌2'가 돼 서울시를 말아먹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 "이러니 정치 퇴행"…피로감 호소하는 시민들

서울시장 후보 선거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서울시장 후보 선거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이런 비방전을 두고 서울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시민 조모 씨(37)는 "저 사람도 능력이 뛰어나지만 내가 그보다 더 뛰어나서 당선돼야 한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깎아내리며 '내가 이 사람보단 낫지 않냐'고 하는 것 아니냐"며 "(매번 선거 때마다) 이러니 점점 정치가 퇴행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유권자들은 후보의 도덕성보다 정책·공약을 더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공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이 지방자치단체장을 선택하는 기준으로 '정책·공약'(26.5%)이 가장 많았다. 이어 '능력·경력'(25.6%), '소속 정당'(22.8%) 순이었다. 정작 네거티브 공세의 표적이 되는 후보의 '도덕성'은 16.9%에 그쳤다.

그럼에도 정작 후보들의 공약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온다. 직장인 김모 씨(43)는 "공약을 보고 뽑으려고 하는데 후보자들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공약 같은 것은 안 보인다"며 "국민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나온 건지, 한자리하고 싶어서 나온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이 같은 상황은 정치 불신으로 이어졌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2023년 한국 등 글로벌 31개국을 대상으로 직군별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가장 믿을 수 없는 직군으로 정치인(8%)을 꼽기도 했다.

다만 네거티브를 무조건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박모 씨(28)는 "후보자의 자질과 정책을 함께 평가해 적임자를 가려내는 것이 선거의 본질"이라며 "지금처럼 인신공격만 남발하는 것이 아쉬울 뿐, 네거티브 자체는 후보를 검증하는 순기능이 더 크다"고 봤다.

◇ 전문가 "선거 운동 기간이 짧은 만큼 네거티브 필연적"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네거티브 전략이 선거전에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정책을 얘기해서 효과가 있으면 정책을 얘기하겠지만, 그게 아니니까 네거티브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철희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선거 기간 네거티브가 횡행하는 근본 원인으로 정치인의 소명 의식 부족을 지적했다. 신 위원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있는 후보라면 상대방을 비판하기보다 자기가 뭘 할지 그 얘기 중심으로 선거 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 중심 선거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유권자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신 위원은 "지방선거는 지역을 누가 발전시키고 주민 생활이 어떻게 개선될지에 관심이 있어야 하는데 유권자 자체가 중앙 정치에 많이 휘둘리는 것 같다"며 "무소속이라도 일 잘할 것 같으면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기사에 인용된 조사는 전화 면접(CATI) 방식으로 이뤄졌으며 표본 프레임은 무선전화 가상번호(89.8%)와 유선전화 RDD(10.2%)를 활용했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정우 한경닷컴 기자 krse905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