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에서 상영되는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작품 전경. / 루프랩 부산 제공
부산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에서 상영되는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작품 전경. / 루프랩 부산 제공
부산은 K컬처에 빠진 외국인들이 서울 다음으로 가장 많이 찾는 도시다. 그 이유로 해운대 바다의 풍광이나 돼지국밥 같은 먹거리부터 떠올린다면 부산의 경쟁력을 절반만 알고 있는 셈이다. 사실 부산은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앞세운 영화뿐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흐름이 해안을 따라 끊임없이 밀려드는 ‘미감(美感)의 도시’란 점에서다.

이런 부산의 미적 감각은 5월에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도시 곳곳에서 열리는 디지털아트 전시와 부산을 대표하는 미술장터 아트부산을 통해 미술시장의 맥을 짚어볼 수 있다. 최근 미술 소비방식이 미술관 전시 위주의 ‘보는 미술’과 아트페어를 앞세운 ‘사는 미술’로 뚜렷하게 분화되는 흐름 속에서 부산은 감상과 거래를 동시에 경험하는 미술 플랫폼으로 눈길을 끈다.

기술과 만난 예술 ‘루프랩’


지금 부산은 어딜 가나 반짝인다. 도시 전역에서 각종 디지털 기반 미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28일까지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랩 부산’이 열리기 때문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매년 개최되는 세계적인 예술행사 ‘루프(Loop) 페스티벌’을 옮겨왔다. 부산현대미술관, 조현화랑, 옛 해운대 역사인 해운대플랫폼 등 35개 문화예술기관이 참여해 25개국 130여 명의 작품을 선보인다. 공립 미술관부터 상업화랑과 복합문화공간 등 별다른 접점이 없는 곳들을 마치 고리(Loop)에 건듯 미디어아트를 주제로 묶었다.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에서 시민들이 '루프 랩 부산'의 영상 전시 '디지털 서브컬처: 모두가 창조자'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지난달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에서 시민들이 '루프 랩 부산'의 영상 전시 '디지털 서브컬처: 모두가 창조자'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
부산을 찾는 방문객들의 출발점인 초량동 부산역 앞 광장인 부산 유라시아 플랫폼과 우동 부산시립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이 페스티벌의 큰 줄기다. ‘디지털 서브컬처: 디지털 시대의 내러티브와 스토리’ 전시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숏폼, 릴스 등 소셜미디어를 기반으로 인공지능(AI) 등을 활용해 영상작품을 만드는 14인(팀)의 작품이 상영되고 있다. 나이 지긋한 이모, 할머니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선보여 젊은 세대에서 유명한 나이스앤티스를 비롯한 ‘인플루언서 아티스트’들이다.

대형 스크린 14개가 마련된 시립미술관 야외 공원을 가볼 만 하다. 스마트폰 등 네모난 화면에 머물던 콘텐츠를 미술관 바깥 공간으로 확장을 시도했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인 ‘부산국제영화제(BIFF)’ 등 영상미디어 산업이 자리 잡은 부산의 문화적 토양을 디지털 예술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서진석 부산시립미술관장은 “공간마다 해석을 제시해 동시대 디지털 예술을 도출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홍승혜 '가족', 2019. 국제갤러리 제공
홍승혜 '가족', 2019. 국제갤러리 제공

디지털로 풀어낸 유기적 기하학


루프랩과 연계한 전시들도 눈길을 끈다. 수안동 동일고무벨트 동래공장은 부산의 과거와 현재를 비추는 장소다. 산업화 첨병이었지만 1980년대부터 문을 닫아 40년간 방치됐던 공장이 루프랩을 통해 미디어아트를 소개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새로 단장했다. 1층에선 정혜련 작가의 설치작품 ‘마이그레이션’이 관객과 만난다. 2층에선 중국 출신의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쉬빙의 ‘쉬빙 우주 예술 레지던시 프로그램’, ‘잠자리의 눈’이 상영되며 기술과 예술의 공존을 실험한다.

루프랩이 동시대 디지털아트의 실험성과 확장성을 보여준다면, 망미동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열리는 홍승혜 개인전 ‘이동 중’은 그 흐름을 보다 정제된 언어로 압축해 설명하는 전시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작가는 붓으로 선을 그리는 대신 약 30년간 컴퓨터 화면 기본 단위인 픽셀을 재료 삼아 움직임을 표현해 왔다. 전시에선 대표작인 ‘유기적 기하학’ 연작 등 26점을 선보인다. 서사와 특수효과를 최소화한 홍승혜의 작품들은 간결한 도형이 느린 호흡으로 움직이는 형식에서 독특한 정서적 울림을 준다.

110개 갤러리 만나는 ‘아트부산’


석가탄신일 연휴가 낀 오는 21일부터 나흘 동안에는 미디어아트를 감상하는 애호가뿐 아니라 미술작품 거래를 위해 부산을 찾은 컬렉터도 눈에 띌 예정이다. 상반기 최대 규모 아트페어인 ‘아트부산 2026’이 우동 벡스코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국제갤러리, 가나아트, 리안갤러리 등 국내 주요 갤러리와 탕 컨템포러리 아트, 글래드스톤, 화이트스톤 등 영향력 있는 해외 갤러리 등 18개국 110여개 갤러리가 참가한다.
지난해 열린 아트부산 2025 전경. /연합
지난해 열린 아트부산 2025 전경. /연합
아트부산은 부산이 서울 1극 체제화된 미술시장 쏠림을 해소할 지역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여겨진다. 같은 기간 서울 마곡에서 ‘하이브 아트페어’가 열리기 때문이다. 신생 페어지만 갤러리에 부스를 벌집 모양의 육각형으로 바꾸고 부스비를 받지 않는 대신 기획력을 강조하는 등 기존 아트페어와 차별화를 시도하는 점에서 기존 아트부산 관객을 나눠 가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선주 아트부산 이사는 “글로벌 시장과 부산을 연결하는 ‘글로컬 플랫폼’으로 아트부산만의 역할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했다.

유승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