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두나무 투자' 함영주 회장의 결단
“후배 세대와 그룹의 미래 가치를 위해 뭔가 남기고 싶었습니다.”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두나무에 투자한 배경 중 하나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나은행이 업계 1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날이었다.

국내 은행이 가상자산거래소 지분에 투자하기로 한 사실은 그 자체로 이례적이다. 그동안 국내에서 가상자산은 제도권 금융 바깥에 있는 위험자산으로 취급됐다. 신뢰와 안정성을 중시해야 할 은행이 가상자산과 거리를 두는 것은 당연했다. 실명계좌 제휴 등 간접적으로 시장에 참여한 이유다. 이런 면에서 하나은행이 두나무 주요주주로 올라선 것은 국내 금융산업과 디지털자산 시장에 한 획을 긋는 일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함 회장이 여러 우려에도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린 점이다. 금융지주는 기업가치 제고(밸류업)가 강조되면서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소각 등을 요구받고 있다. 신사업을 위한 대규모 투자는 주주환원 여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로 여겨진다. 두나무 투자를 발표한 날 하나금융 주가가 다른 금융지주보다 더 내려간 것도 이런 우려가 한몫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함 회장은 미래 금융 주도권을 선점하는 길을 택했다. 전통 금융시장은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세계적으로 디지털자산이 금융 인프라로 편입되는 흐름은 빨라지고 있다. 지금 움직이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에 하나금융이 설 자리는 좁아질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투자 규모는 작지 않지만 하나금융 자본 여력을 감안하면 감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에픽AI에 따르면 하나금융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이번 거래로 0.11%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하나금융 2분기 실적 전망을 고려할 때 CET1이 0.2%포인트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 건전성을 흔들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지만 법제화 논의가 이뤄지자 대형 금융회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앞서 미래에셋도 코빗을 인수했고 한국투자증권도 코인원 투자를 검토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규칙이 마련될 것이라는 신호만으로도 책임 있는 플레이어들은 새 시장에 들어올 준비를 한다”고 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명확한 법이다. 법 공백이 길어질수록 시장의 혁신도, 기업의 도전도 회색지대에 머물 수밖에 없다.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을 둘러싼 경쟁이 본격화하는 만큼 법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 공정한 규칙 아래 금융회사들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나설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