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파견 직고용…정규직 근로조건과 같아야 하나?
최근까지 불법파견 사건의 핵심 쟁점은 대체로 동일하였다. 사내하청이나 도급의 외형을 취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도급인이 지휘·명령을 하고 도급인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어 있다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파견법’)상 직접고용의무가 발생하는지 여부이다. 자동차 제조업을 중심으로 축적된 수많은 대법원 판례를 통해,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에 관한 판단기준은 이제 상당 부분 정립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무에서는 오히려 그 다음 단계가 더 큰 문제로 남아 있었다. 즉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되어 직고용한 파견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파견법 제6조의2 제3항은 근로자파견으로 인정되어 파견법에 따라 직접고용의무가 인정될 경우에 적용되는 근로조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은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해당 파견근로자와 같은 종류의 업무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 즉 동종·유사 근로자가 있는 경우에는 그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에 따르고(제1호), 사용사업주의 근로자 중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해당 파견근로자의 기존 근로조건의 수준보다 낮아져서는 아니된다는 것이다(제2호).

대법원은 2024년 한국도로공사 사건에서 사용사업주에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는 경우 근로조건의 설정에 관한 새로운 법리를 판시하였다. 이에 따르면 근로자파견관계가 성립하더라도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는 경우에는 당사자들이 기존 근로조건을 하회하지 않는 범위에서 자치적으로 근로조건을 형성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자치적 형성이 어려운 경우에 법원은 개별 사안에서 근로의 내용과 가치, 사용사업주의 근로조건 체계(고용형태나 직군에 따른 임금체계 등), 파견법의 입법 목적, 공평의 관념, 사용사업주가 직접 고용한 다른 파견근로자가 있다면 그 근로자에게 적용한 근로조건의 내용 등을 종합하여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합리적으로 정하였을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대법원은 이와 같이 파견근로자에게 적용될 근로조건을 정하는 것은 본래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가 자치적으로 형성했어야 하는 근로조건을 법원이 정하는 것이므로, 한쪽 당사자가 의도하지 아니하는 근로조건을 불합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3303 등 판결, 대법원 2024. 3. 12. 선고 2019다229829 판결).

그런데 대법원이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음에도 다른 직종의 근로조건을 적용한 사례는 원고들이 통행료 수납원이었던 사안이다. 통행료 수납원의 경우 2008년경 외주화가 완료되어 한국도로공사에 같거나 유사한 업무를 수행한 근로자는 없었지만, 대법원은 통행료 수납원에게 현장직군으로 하위 직종 중 하나인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적용한 것이 타당하다고 보았다. 조무원은 경비, 청소, 식당조리 등을 하며 가장 낮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 근로자로서 특별한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반복적인 잡무를 처리하는 직종이라는 점, 기간제 근로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현장직에 비해 통행료 수납원의 근로가치가 낮다고 볼 수 없는 점, 외주화 되기 이전에도 통행료 수납원은 청소원이나 경비원보다는 높은 임금을 받았던 점 등이 고려되었다.

반면 대법원은 같은 한국도로공사 내에서도 상황실 보조 업무를 수행한 원고들에 대하여는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적용하지 않고 ‘기존 근로조건’을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그 이유는 주로 당직근무를 하는 상황실 보조와 조무원은 근무형태와 근로시간이 서로 다른데, 근무형태가 서로 상이한 조무원과 상황실 보조의 노동강도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고, 업무 내용의 차이까지 고려하면 상황실 보조의 직무가치가 조무원과가 같거나 그보다 높다고 보기 어려워, 합리적인 사용자가 해당 원고들을 직접 고용할 경우 조무원의 근로조건을 그대로 적용하는 데 동의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대법원 판례의 취지는 사용사업주에 동종·유사 근로자가 없다고 해서 법원이 정규직이나 일반직의 근로조건의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업무의 구체적인 내용과 성격, 노동강도 및 난이도, 근무형태, 임금구조의 차이 등을 종합한 결과 직무가치가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하여 예외적으로 해당 직군의 근로조건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파견법의 입법 목적은 파견근로자의 고용불안 해소와 열악한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데 있는 것이지, 이를 넘어 애초에 채용 절차나 요구되는 업무수행능력, 근로의 내용과 가치를 동일하게 평가할 수 없는 사용사업주 정규직의 근로조건을 100% 보장하라는 것이 아닌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또 공평의 관념은 균형 있는 처우를 지향하지만, 단순히 결과의 평등을 추구할 경우 공정의 가치를 훼손하고 사용사업주의 기존 체계와 기준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이러한 점에서 파견법 제6조의2 제3항 제1호의 동종·유사 근로자의 존재 여부 또한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한국도로공사 사건의 법리를 적용한 후속 하급심 판결들을 살펴보면,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을 인정하면서도 원고들이 주장하는 사용사업주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금전지급 청구는 기각한 사례가 상당히 많이 발견된다.

사실 기업이 핵심업무나 연구개발에 역량을 집중하고 이외의 부차적인 분야는 외부의 전문 업체에 도급하거나 위탁하여 업무 효율화를 꾀하는 것은 기업의 경영전략 중 하나이다. 그렇지만 이른바 불법파견 분쟁의 확대에 따라 제조업뿐 아니라 도급이나 용역을 통해 업무가 이루어지는 여러 산업에서 근로자파견관계 성립이 인정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이에 일부 기업은 선제적으로 협력사 근로자들의 직고용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미 외주화가 진행된 업무를 법원의 판단이나 내부 의사결정에 따라 다시 인소싱(insourcing)하게 되면 조직 규모가 커지고, 그에 따른 인사, 노무 등 각종 비용 증가가 수반되며, 노사관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직고용 자체가 조직에 큰 부담을 초래하는 것이다. 근로조건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협의하여 정하는 것이 이상적이고, 특히 인위적인 직고용이 이루어지는 국면에서 기존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 내지 노노(勞勞)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직고용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조건 설정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박은정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