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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싸움'의 시대…늦게 켜지는 조명이 더 비싼 이유 [조수민의 빛이 채우는 시간]
즉각의 시대에, 지연(遲延)이 만드는 편안한 아름다움에 대하여
3억 년에 1초도 틀리지 않는 원자시계와 수많은 인공위성으로 전 지구가 동시(同時)성을 공유하는 세상에서, 지연(遲延)은 그야말로 죄악이 된 시대다. 그런데 그 한복판에서, 아이러니하게 결과를 즉각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느리게 내보내기 위해 공을 들이는 분야가 있다. 바로 '빛' 이야기다.
문제가 된 완벽함
어두운 방에서 올린 스위치에 천장 조명이 한 번에 강하게 켜지면 우리는 눈살을 찌푸린다. 칼로 자른 듯 선명한 어둠과 빛의 날카로운 경계는 시각을 넘어 촉각마저 자극한다. 조명을 끌 때도 마찬가지다. 침실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스위치를 내리면 탁 소리와 함께 공간은 찰나의 기다림 없이 한 번에 완전한 어둠으로 단절된다. 지연 없는 빛의 변화는 밝음으로나 어둠으로나 우리의 몸이 적응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그러나 인간의 눈은 빛의 변화에 적응하는 데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홍채가 조리개처럼 수축하고, 망막의 시각세포가 새로운 밝기에 반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빛의 변화가 순식간에 일어나면 적응하지 못한 눈과 시각세포는 일종의 불쾌한 감각 또는 통증으로 받아들인다. 한 번에 꺼지는 조명은 눈에 잔상을 남기기도 한다.
초창기 자동차에 도입된 LED 브레이크 등과 방향지시등이 지나치게 눈부시고 날카롭다는 불만을 샀던 것도, 단순 밝기의 문제뿐 아니라 깜빡임이 너무 즉각적이어서 주변 운전자의 눈에 강한 자극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차량들이 점멸하는 조명들을 부드럽게 페이드(Fade) 되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불완전했던 과거의 빛이 그리워지다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 빛과 하늘을 차치하더라도, 돌이켜 보면 LED 이전의 광원들은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지연'을 품고 있었다. 초에 불을 밝힐 때도 성냥 머리 위 작은 점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불꽃을 볼 수 있었다. 백열전구나 할로겐램프들은 필라멘트가 달궈지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 물리적 과정이 자연스러운 찰나의 지연을 만들었다. 심지어 형광등의 깜빡임조차, 불편하긴 했지만 즉각적이지는 않았다. 아무도 설계하지 않았지만, 광원의 물리적 한계가 자연스러운 지연 현상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지연시키는 방법을 연구하다
현시대의 조명은 반대로 지연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이에 비용을 지불한다. 소위 ‘페이드인/아웃’ 또는 ‘소프트온/오프’ 등으로 불리는 부드러운 단계적 점소등 기능을 구현하기 위해, LED 드라이버 내부에는 커패시터의 충전 시간을 이용해 전압이 서서히 올라오도록 하는 소프트스타트 회로가 들어간다. 또는 마이크로컨트롤러가 전류를 잘게 쪼개어 매끄러운 그라데이션을 만들어내는 PWM 방식도 쓰인다. 아날로그 시절에는 물리 법칙이 공짜로 해주던 일을, 이제는 정교한 반도체와 알고리즘이 대신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연을 만드는 곳에 기술과 비용을 사용하고 있다. 밀리초로 측정하며 지연을 0에 수렴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없는 지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세상이다. 빛의 지연은 장면과 장면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고급 공간의 필수 요소가 된 빛의 지연
이제 호텔처럼 고객이 직접 조명을 켜고 끄는 고급 공간에서 부드러운 빛의 지연은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빛이 서서히 공간을 채우는 경험, 잠자리에 들기 전 스위치를 내리면 빛이 천천히 물러나는 경험. 그것이 그 공간의 첫인상과 마지막 인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잠들기 전, 우리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면 서서히 체온으로 채워지며 몸이 풀리는 것을 느낀다. 그 서서히 변화하는 온기가 하루를 닫는 감각이 된다. 빛도 마찬가지다. 부드럽게 어두워지는 빛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은 몸에게 이제 쉬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는 일이며, 부드럽고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빛은 시간을 채우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시간의 질감을 만드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어떤 빛을 마주하느냐가 그 시간의 색을 결정하듯, 빛이 어떻게 켜지고 어떻게 꺼지느냐의 과정이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의 결을 만든다. 서서히 번지는 아침 햇살이 하루를 여는 감각을 만들고, 천천히 물러나는 불빛이 하루를 닫는 감각을 만드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지연을 즐기는 여유가 우리에게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