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AI 열풍에 증시 급등…"100년 전 대공황 데자뷔"
1929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 조용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632쪽│3만2000원
美 언론인, 대공황 실상 그려
자동차·라디오 등 신기술 열광
1928년 주가 62% 올랐지만
1년 만에 '검은 월요일' 닥쳐
"지금 우리가 배울 점은 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 조용빈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 632쪽│3만2000원
美 언론인, 대공황 실상 그려
자동차·라디오 등 신기술 열광
1928년 주가 62% 올랐지만
1년 만에 '검은 월요일' 닥쳐
"지금 우리가 배울 점은 뭔가"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 채팅방에서도 식당, 카페에서도 사람들은 엔비디아 주가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 이야기를 나눈다.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지는 않지만, 종종 같은 박자로 운율을 맞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르는 풍경이다.
1920년대 미국은 황금기였다. 자동차, 세탁기, 그리고 라디오라는 신기술이 세상을 뒤바꾸고 있었고, 사람들은 기술이 가져올 무한한 성장을 의심치 않았다. 미국 다우지수는 1928년 한 해에만 62% 폭등했다. 당시 언론은 “은행 시스템은 건전하고, 생산과 소비 모두 팽창하고 있다”고 일제히 낙관론을 쏟아냈다.
그러나 번영의 이면에는 위험한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다. 투자자들은 주가 100달러어치 주식을 사면서 단 10달러만 내고 나머지는 빚으로 충당하는 극단적인 레버리지 투자에 몸을 던졌다.
저자의 시선이 특히 날카로운 부분은 이 재앙이 시장의 자연재해가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였다는 점을 폭로하는 대목이다. 공격적인 투기를 주도한 내셔널시티 은행의 찰스 미첼, JP모간의 막후 실세 토머스 러몬트, 하락장에 베팅한 전설적 투기꾼 제시 리버모어. 거물들의 무모한 야망과 서로를 향한 불신이 시장을 통제 불능으로 몰아넣었다.
뉴욕증권거래소 소장 리처드 휘트니는 대중 앞에서 시장의 건전성을 역설하면서 뒤로는 고객 자산을 횡령해 개인 투기를 일삼았다. JP모간을 비롯한 거대 은행들은 정계 요인들에게 뇌물성 주식을 상납하며 규제를 피해갔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관망으로 일관하며 결정적 대응 시점을 놓쳤다. 위기를 직감하고 경고를 울린 회의론자들의 목소리는 집단적 도취감 속에 묻혔다.
결국 1929년 10월 28일, 주식시장은 하루에만 13% 폭락하며 최악의 ‘검은 월요일’을 기록했다. 그날 저녁 월스트리트에는 중절모를 쓴 불안한 중개인과 메신저 소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다. “무엇이 폭락을 불러왔을까? 내일은 얼마나 더 떨어질까?” 저자는 그 긴박한 공기를 생중계 화면처럼 생생하게 재현해낸다.
대폭락 이후는 더 처참했다. 1만1000개에 달하는 은행이 문을 닫았고, 약 1300만 명의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 실업률은 23.6%까지 치솟았다. 대공황이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 참담한 대가는 제도의 개혁을 낳았다. 페코라 청문회를 통해 금융권의 추악한 관행이 세상에 드러났고,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한 ‘글라스 스티걸 법’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탄생했다. 그러나 저자는 “100년 전 비극이 남긴 이 제도적 방어벽들이 오늘날에도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풍경과 1929년의 모습이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고 경고한다. AI와 반도체 기업들의 질주는 영원한 우상향 신화를 쓰는 듯하고, 가상화폐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약속한다. 천문학적 투자에 따르는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조차 ‘이번에는 다르다’는 낙관론에 묻힌다. 저자는 묻는다. 지금의 성장 신화가 한계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그 대가를 치를 준비가 돼 있는가.
“신뢰는 서서히 쌓이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저자의 일갈은 투자자들에게 차가운 지혜를 전한다. 번영의 정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시스템이 붕괴하기 직전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 돌아보게 한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