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팩트만으로는 분열과 갈등을 풀지 못한다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
커트 그레이 지음 / 제효영 옮김
김영사 / 556쪽│2만4500원
오래 사냥감으로 살아온 인간
생존 위협 느끼면 객관성 잃어
존중하는 느낌 줘야 대화 가능
커트 그레이 지음 / 제효영 옮김
김영사 / 556쪽│2만4500원
오래 사냥감으로 살아온 인간
생존 위협 느끼면 객관성 잃어
존중하는 느낌 줘야 대화 가능
도덕심리학 석학인 커트 그레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신간 <나와 당신은 왜 분노하는가>에서 사람들 간 싸움은 본능적인 ‘위험 인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피해의식이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 도로에서의 싸움뿐만이 아니다. 갈등이 만연한 정치 이슈에서도 사람들의 판단은 ‘정의’나 ‘공정’이 아닌 위험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본능은 잡아먹힐 위험이 없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정과 판단에도 깊게 배어 있다. 피해를 주는 누군가로 인해 내가 큰 위협을 받을 수 있다고 느끼곤 한다. 산 속에 호랑이는 없지만 현대인은 그 대신 선거 결과, 단체 대화방에서 벌어지는 다툼, 학부모 회의가 내리는 결정을 두려워하게 됐다. 물리적 포식자가 사라진 이후에도 위험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고, 그 대상만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SNS에 ‘피해자 경쟁’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고통을 확대해석하는 동시에, 상대편의 고통에는 눈을 감는다. 세상에서 가장 힘센 존재가 된 사람들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연쇄 성범죄를 저지른 영화감독 하비 웨인스타인도 자신이 언론의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를 인간이 자신의 피해에는 민감하고 타인의 고통에는 둔감해지는 경향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정신에는 접근할 수 없지만 자신의 고통은 아주 선명하게 경험한다.
많은 사람들은 ‘팩트’가 갈등 해소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는 단순히 대화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이같은 분열을 쉽게 해결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도덕적으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객관적 증거가 아닌 각자가 직관적으로 느끼는 위험성에 따라 각자의 신념을 형성한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무엇이 더 위험한지, 누구를 더 보호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대신 저자는 정치 얘기를 하기 전에 사람 대 사람으로 유대를 형성하라고 말한다. 같은 취미나 취향을 공유하거나 자신의 꿈에 관해 얘기하는 게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특히 “저 사람은 무엇을 위험하고 해롭다고 느끼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부탁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의견을 구하는 게 ‘약점을 드러내라’는 식이면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반발을 사지 않으려면 의견을 강요하지 말고 부탁을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상대방이 하는 말도 맞다고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