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커버 스토리 - 재생에너지 대전환, 투자지도 바뀐다
전문가 인터뷰
이주헌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정책전문위원
"150조 재원의 투자 우선순위는 ESS와 계통 확충"


최근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국제 유가가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인 에너지 대외 의존도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에너지 안보는 이제 단순히 화석연료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느냐의 단계를 넘어섰다. 탄소중립이라는 거대한 전환기 속에서 재생에너지는 산업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인프라이자 천문학적인 자본이 움직이는 새로운 자산군으로 정의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150조 원 규모의 금융 지원과 에너지 대전환 계획을 발표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과연 이 대규모 재원은 고금리와 계통 포화라는 거대한 벽을 넘어 민간 자본을 끌어들이는 마중물이 될 수 있을까. <한경ESG>는 이주헌 사단법인 넥스트 수석정책전문위원을 만나 에너지 전환의 핵심 과제인 금융 구조 설계와 전력망 거버넌스,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 전략을 중심으로 한국 에너지 정책이 나아가야 할 로드맵을 짚어봤다.

최근 이란전쟁으로 국제 유가 변동성이 극심하다. 과거의 에너지 안보가 ‘화석연료의 안정적 수급’이었다면, 현시점에서 재생에너지는 어떤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가.

“역사적으로 재생에너지는 기후 대응 수단이기 이전에 에너지 안보 수단이었다. 1973년 오일쇼크 이후 미국의 프로젝트 인디펜던스, 덴마크의 에너지 자립 정책이 모두 탄소 감축이 아니라 수입 의존도 축소를 목적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재생에너지가 기후 정책의 의제가 된 것은 훨씬 뒷일이다. 이번 미·이란 충돌로 배럴당 100달러를 위협하던 국제 유가가 호르무즈해협 재개 소식 하루 만에 10% 이상 급락한 장면은, 취약한 에너지 체제를 다시 드러냈다. 수출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에 이 변동성은 단순한 물가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국가 신용의 문제다. 태양과 바람은 국내 자원이고, 설비가 구축되면 연료비가 사실상 0에 고정돼 미래 전력 단가를 고정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려고 해도 고금리와 공급망 비용 상승이 걸림돌로 작용하는데.

“재생에너지 발전단가의 대부분은 자본비용에서 결정된다. 연료비가 거의 들지 않아 금리가 오르면 단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고금리 국면에서 재생에너지가 위축되는 이유는 모듈이나 터빈 가격 때문이 아니라 금융 조달 구조가 가장 먼저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금융 조달 구조를 바꾸려면 정책적 시그널이 필요하다. 해외 주요국은 이 문제를 제도로 풀었다. 영국은 차액결제계약(CfD)으로 발전사업자에게 20년간 고정 수익을 보장해 프로젝트 금융비용을 크게 낮췄다. 독일은 국책은행인 독일재건은행(KfW)의 장기·저리 정책금융이 민간 상업은행의 선순위 대출을 끌어오는 레버리지 구조를 운영한다. 덴마크는 국채를 녹색 프로젝트 전용으로 발행함으로써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자금을 국가 신용으로 조달한다. 세 나라 모두 기술 보조금이 아니라 미래 수익의 안정화라는 금융 구조를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해외에서는 재생에너지가 이미 ‘정책 테마’를 넘어 안정적인 ‘인프라 자산’으로 편입되고 있다. 한국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글로벌 재생에너지 시장은 2010년대 중반 이후 보조금 정책의 대상에서 연기금·생명보험·인프라펀드가 장기 보유하는 인프라 자산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이 전환을 가능하게 한 조건은 세 가지다. ①20년 이상 현금흐름을 보장하는 장기계약인 차액결제계약(CfD)·직접 전력구매계약(PPA)) ②프로젝트 지분 거래와 리파이낸싱이 표준화된 유동성 ③ 국가가 보장하는 표준화된 계통 접속·인허가 프로세스다. 우리나라를 이 세 기준에 비추어 보면 장기계약 측면에서 20년 고정가격 CfD가 아직 법제화되어 있지 않다. 유동성 측면에서 대부분 프로젝트가 프로젝트회사(SPC)·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구조 안에 묶여 있어 지분 양도 시장이 성숙하지 못하다. 계통 측면에서는 신규 발전허가가 사실상 제한될 정도로 계통이 포화 상태에 있다. 연기금을 비롯한 장기 기관투자자가 본격적으로 들어올 전제조건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정부는 에너지 전환에 150조 원 규모 금융 지원을 내세웠다. 이 지원이 민간자본을 유인하는 레버리지가 될 수 있나.

“정부가 발표한 재원은 두 갈래로 구분해 보아야 한다. 하나는 2026년 정책금융 공급계획 중 5대 중점분야 집중 공급분 150조 원이며, 재생에너지(풍력)가 신규 중점산업으로 편입되었다. 다른 하나는 국민성장펀드로, 직접투자·간접투자·인프라투융자·초저리대출로 구성되어 첨단 전략산업과 관련 생태계에 연간 상당 규모의 자금이 공급될 예정이다. 두 경로가 결합되면서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재생에너지에 조 단위 장기자금을 본격 투입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레버리지가 작동하려면 민간이 공공자금을 신호로 읽고 따라 들어와야 한다. 그 신호를 만드는 것이 제도다.”

한국은 어떤 제도를 짜야 하나.

“세 가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CfD 같은 장기 수익보장제도의 법제화다. 현행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의 인증서(REC) 가격 변동성은 장기금융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해상풍력부터 단계적으로 CfD를 도입해야 한다. 아무리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해도 미래 수익이 불안정하면 민간은 들어오지 않는다. 둘째, 공공자금의 후순위(subordinated) 설계다. 공공이 먼저 손실을 흡수하는 위험완충 레이어 역할을 해줄 때 민간의 선순위 참여가 늘어난다. 기후·에너지 투자에 특화된 장기·저리·후순위 공공자금 구조가 추가로 필요하다. 셋째, 인허가·주민수용성·계통접속처럼 리스크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대응이다. 특히 계통접속 권리와 사업 좌초 시 손실분담에 관한 법적 보장, 주민참여 이익 공유의 법률상 의무화가 중요하다.

150조 원의 재원이 가장 시급하게 투입되어야 할 ‘투자 우선순위’는 무엇인가.

“최우선 과제는 계통이다. 호남권은 이미 계통이 포화 상태이고, 전국 계통관리변전소 대부분이 광주·전남에 몰려 있다. 봄·가을 출력제어가 일상화된 상태에서 태양광을 추가로 짓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일이다. 전체 재원 중 가장 큰 비중이 ESS(배터리·양수발전)와 계통 확충에 배정되어야 한다. 특히 ESS는 국내 배터리 3사의 제조 경쟁력과 직접 연결되는 유일한 영역이다. 중기는 해상풍력이다. 태양광 발전이 약해지는 야간·겨울철에 발전량이 유지되고, 조선·철강·케이블 등 우리나라 제조업 경쟁력이 직접 연결되는 거의 유일한 재생에너지 분야다. 연간 4GW 처리가 가능한 항만·설치선박 기반 구축, 집전망(에너지 허브) 선행 투자, 주민 이익 공유 표준모델 보급, 국산 터빈과 부유식 기초 연구개발(R&D) 지원이다. 자산으로서의 투자 매력을 확보하기까지는 2030년 전후가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본다. 장기 구간에서 수소는 여전히 실증 단계로, 수요처가 명확한 철강·화학 등 산업의 수요 실증, 해상풍력 연계 수전해 클러스터, 수소항만·암모니아 운송R&D에 재원을 집중 배분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계통 문제를 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치는.

“계통은 기술 문제도 돈 문제도 아니다. 거버넌스의 문제다. 전력망을 국가 기간 인프라로 재정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네 가지가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첫째, 전력망 특별법의 실행력 확보다. 2025년 9월 시행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국가 차원의 기본계획 수립과 입지·보상 특례를 규정하고 있다. 핵심은 이를 예외적 절차가 아니라 표준 절차로 확장하는 것이다. 둘째, 국가 재정의 직접투자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대규모 연방·공동체 재정을 전력망에 투입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한전 차입에 의존해 왔다. 2030년 재생에너지 100GW 목표와 전력수요 증가에 대응하려면 송배전망을 도로·철도와 동급의 국가 기간시설로 재정의하고 국가 재정 투자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대형 송전망이 건설되기까지의 다리 역할을 할 단기 비상대책이다. 올해부터 호남권부터 재생에너지형 준중앙급전 발전 제도를 시행해 출력제어 수용 사업자에게 정산금을 지급하는데, 이러한 과도기 제도를 전국으로 확장해야 한다. 넷째, 주민 수용성의 제도화다. 송전선 경과지 주민을 전력망 사업의 공동 수익자로 편입시키는 전력망 이익공유제가 필요하다. 국가의 시간표에 맞춰, 국가가 재정과 법률로 직접 책임지고, 주민이 수익자로 참여하는 3자 구조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주민 이익공유 표준화의 사례를 든다면.

“햇빛마을 모델이 실증 사례다. 신안군은 2021년 4월부터 주민 참여형 수익환원 모델인 햇빛연금을 시행했고, 최근 5년간 약 220억 원이 주민에게 환원되었다. 그 결과 2023년부터 2년 연속 인구가 증가하며 전남 내 유일한 반등 지역이 되었고, 만 18세 이상 주민에게 연간 약 120억 원 규모의 이익이 지급되고 있다. 이는 재생에너지 수익이 지역의 장기 현금흐름이 되어 주민 수용성을 만들고, 그 수용성이 다시 금융 조달 비용을 낮추는 연결고리를 입증한 사례다. 따라서 햇빛·바람소득마을 제도는 중앙정부가 전국 표준모델로 수립하고 법률로 뒷받침하는 단계로 가야 한다고 본다.”

한국 RE100을 이끌 보조수단으로 분산요금제는 어떻게 보고 있나.

“분산요금제는 RE100 이행에 양날의 검이다. 권역 설계에 따라 실질적 이행수단이 될 수도, 새로운 갈등 요인이 될 수도 있다. 2025년 말 기준 7개 지역이 분산에너지 특화지역으로 지정되었는데, RE100 이행수단과의 결합이 필요하다. 단독 제도가 아니라 ‘RE100 산단+분산특구+지역별 요금+기업PPA’의 구조로 작동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갖기 때문에 추가 노력이 필요하다. 또 특정 지역에서 분산에너지를 통해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모델을 빨리 보여줘야 한다. 지자체가 스스로 역내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기업을 유치할 프로그램을 기획해야 한다. 전남 등 재생에너지 과잉으로 출력제어가 발생하는 지역에서는 전기차 충전 요금을 무료로 하거나 파격적으로 낮추는 등 인센티브 기반의 차등 요금제를 실험해야 한다.”

최근 EU나 미국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응해 재생에너지 인허가 절차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EU는 재생에너지지침(RED III)을 2023년에 개정하여 회원국이 2025년 5월까지 국내법으로 이행하도록 했다. 이 지침은 풍력·태양광 잠재력이 높은 지역을 ‘재생에너지 가속화 구역(Renewables Acceleration Areas)’으로 사전 지정한다. 이 구역 내 프로젝트는 환경영향평가를 간소화하고 인허가 기간을 단축하는 법적 근거를 갖는다. 이어 독일은 풍력육상법을 통해 각 주에 국토 2%를 풍력 전용으로 지정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식으로 인허가 병목을 구조적으로 제거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전력망 접속 대기열을 기존 선착순 방식에서 ‘사업 성숙도 기반 클러스터 평가’ 방식으로 전환해 투자가 확정된 프로젝트부터 먼저 접속되도록 제도를 개편했다.”

세액공제와 보조금도 중요한데.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섹션(Section) 45X를 통해 자국 내에서 생산된 태양광 모듈, 풍력 블레이드, 배터리 셀, 핵심광물에 제조 세액공제를 제공하고 있다. EU는 탄소중립산업법(NZIA)을 통해 2030년까지 탄소중립 기술 수요의 최소 40%를 역내에서 조달하도록 명시했고, 여기에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 시행되면서 역외 제조품에 탄소비용이 부과된다. 일본은 2023년 GX(Green Transformation)추진법에 따라 GX전환채를 통해 철강·화학 등 산업의 탈탄소 전환에 장기 자금을 공급하고, CCfD(탄소차액계약)로 탄소가격과 기술비용의 격차를 정부가 보전해 국산 기술·공급망을 키우고 있다.”

한국도 GX 입법을 앞두고 있다.

“GX 입법에는 핵심 장치가 아직 빠져 있다. 일본 GX법이 가진 CCfD, GX전환채, 화석연료 부과금에 해당하는 재정 장치가 도입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공급망 전략은 목표는 있으나 재정이 없는 반쪽짜리가 된다. 공급망 리스크 관리는 다변화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제조 기반 자체를 살리는 문제이고, 통상·재정·산업 세 측면의 전면적 접근이 필요한 영역이다. 또 일본의 GX는 겉으로는 녹색이지만 본질은 산업 경쟁력 강화에 있다. 우리나라도 단순한 탄소 감축 목표 달성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GX를 설계해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재설계의 가장 큰 과제는.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목표는 많은데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다.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 2030년 100GW 보급 목표, 2026년 4월 발표된 에너지 대전환 추진계획 등이 모두 과감한 방향을 담고 있지만, 이들 목표는 대부분 시스템(법)이 아니라 계획에 들어 있다. 정권과 정치적 수사가 바뀌면 목표가 흔들리고, 이는 투자자 입장에서 현금흐름의 불확실성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차기 국가 에너지 기본계획에 반드시 담겨야 할 단 하나의 키워드는 ‘법적 예측 가능성’이다.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가 비싼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도가 부족해서다. 법적 예측 가능성이 확보되면 자본비용이 내려가고, 자본비용이 내려가면 균등화발전비용(LCOE)이 내려가며, LCOE가 내려가면 보조금 없이도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된다. 이 단일한 인과관계의 사슬이 차기 기본계획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