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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왕이 연 '현대판 모세의 기적', 우리가 닫고 있다 [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공간]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가족과 생이별한 뽕할머니가 뽕나무 지팡이를 바다에 꽂으며 울었던 그 밤, 진도 회동리와 모도 사이 바다가 갈라졌다. 2.8㎞의 갯벌 길이 드러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 시간. 그리고 할머니는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 기도의 힘을 다 써버린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호랑이의 습격을 피해 모도로 피난한 마을 사람들, 홀로 남겨진 노파, 그리고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 이 전설은 수백년간 진도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매년 음력 2월 영등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제를 올렸지만 바깥 세상은 몰랐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다.
프랑스인들이 관심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기도, 용왕의 응답, 그리고 재회의 순간에 맞이한 죽음. 유럽의 어느 성당 벽화에 그려져도 어색하지 않을 서사가 진도의 갯벌 위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는 말이 이보다 선명하게 증명된 사례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나는 지속가능을 추구하는 건축가다. 정확히는 지역의 이야기, 로컬의 신화와 기억을 바탕으로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사람이다. 공간은 단순히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땅 위에 쌓인 이야기들이 공간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뽕할머니의 전설이 살아있는 한, 회동리의 갯벌은 그냥 갯벌이 아니다. 씻김굿의 선율이 남아있는 한 진도는 그냥 섬이 아니다.
이야기가 곧 장소의 정체성이고, 정체성이 곧 지속가능성의 뿌리다.
그런데 지금, 그 뿌리가 두 갈래로 위협받고 있다.
하나는 기후변화다. 해수면이 계속 상승하면 이 바닷길 자체가 영영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용왕이 열어준 길을 우리가 서서히 닫고 있는 셈이다.
또 하나는 인구 소멸이다. 진도군의 지방소멸위험지수는 고위험 단계다. 사람이 떠나면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도 사라진다. 전설을 다음 세대에 전할 목소리가 없어진다. 지역 소멸은 단순한 인구 통계의 문제가 아니다. 수백 년간 켜켜이 쌓인 신화들이, 서울로 수도권으로 향하는 인구의 물결 속에 소리 없이 지워지는 것이다.
올해도 축제는 열렸다.
2026년 제46회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지난 17일부터 20일까지 회동리 일대에서 수만 명의 발걸음을 맞이했다. 갯벌 위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을 상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축제가 앞으로도 계속 열릴 수 있을까. 해수면이 더 오르면 바닷길은 영영 잠기고, 찾아오는 사람마저 없어진다면, 46회를 이어온 이 아름다운 만남은 어느 해를 끝으로 조용히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진도 신비의 바닷길 하나만을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곳곳에는 아직 세상에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로컬의 이야기들이 있다. 섬마다, 마을마다, 골목마다 저마다의 전설과 의례와 기억이 살아있다. 그 이야기들이 발굴되고 기록되고 현재의 공간과 삶 위에 켜켜이 쌓일 때, 비로소 도시는 지속가능해지고 나라는 단단해진다. 뿌리 없는 나무가 폭풍을 견디지 못하듯, 이야기 없는 도시는 어떤 위기 앞에서도 쉽게 무너진다.
로컬의 신화를 지키는 일은 낭만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피에르 랑디는 외지인의 눈으로 진도를 보았기에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봤다.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어서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바닷길이 열리는 그 한 시간, 갯벌을 걷는 발바닥에 전해지는 서늘한 감촉 속에 뽕할머니의 기도가 아직 남아 있다. 용왕은 이미 제 몫을 다했다. 그 길이 완전히 잠기기 전에, 우리가 먼저 눈을 열어야 한다.
<한경닷컴 The Lifeist> 김성훈 지음플러스 대표,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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