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지속 가능한 개발 이념을 바탕으로 현대 도시와 환경에 적합한 바이오필릭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건축, 도시, 환경, 생태 등 다양한 영역과 스케일의 공간에 대한 디자인을 하고 있습니다.
10여 년간 프랑스에서 실무 경험을 쌓았고 2018년부터 지음플러스의 대표 건축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며, 생물종 다양성 국제 인증 기관 IBPC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제 도시 프로젝트에 참여해 혁신적인 공간을 기획하고 있으며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건축가입니다.
역사와 장소가 만드는 도시의 힘2026년 3월 어느 밤, 나는 TV 화면을 통해 광화문광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이 컴백 공연 '아리랑'을 열었다. 왕복 10차선 세종대로가 공연장이 되었고 광화문 외벽이 스크린이 되었다. 넷플릭스가 190개국에 생중계하는 동안 나는 이상하게도 공연보다 그 장소 자체에 시선이 머물렀다.광화문. 저 문 너머에는 무엇이 쌓여 있는가.건축가로서 나는 오래전부터 장소를 물리적 좌표로만 보지 않는다. 장소에는 시간이 응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무게가 장소의 힘을 만든다고 믿어왔다. 그날 밤 화면 속 광화문을 바라보며 오래 품어온 이 생각이 하나의 방정식으로 선명하게 떠올랐다.E = mc²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빛의 속도의 제곱이다. 작은 질량 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에너지가 잠들어 있으며, 조건이 갖춰질 때 비로소 방출된다. 장소의 질량(m)은 바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이 길고 깊을수록, 방출되는 에너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제목이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사대문의 방정식. 시간과 역사성 — 장소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왜 어떤 장소는 사람들을 끌어당기고, 어떤 장소는 그냥 지나치게 되는가. 왜 같은 크기의 광장이라도 누군가는 그 앞에 서서 숨을 고르고, 누군가는 그냥 통과하는가.나는 그 답이 '시간의 층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장소는 그 위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기억한다. 사람들의 감정이 공간에 스며들고, 반복되는 역사가 겹쳐지면서 보이지 않는 밀도가 형성된다. 이것이 장소가 가진 질량(m)이다. 아무리 화려하게 설계된 새 공간도, 시간이 만든 이 밀도를 단번에 가질 수는 없다. 역사성은 돈으로도, 설계로
용왕은 뽕할머니의 기도를 들었다.가족과 생이별한 뽕할머니가 뽕나무 지팡이를 바다에 꽂으며 울었던 그 밤, 진도 회동리와 모도 사이 바다가 갈라졌다. 2.8㎞의 갯벌 길이 드러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한 시간. 그리고 할머니는 가족과 재회하는 순간 기도의 힘을 다 써버린 듯 조용히 눈을 감았다.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호랑이의 습격을 피해 모도로 피난한 마을 사람들, 홀로 남겨진 노파, 그리고 간절함이 만들어낸 기적. 이 전설은 수백년간 진도 사람들만의 것이었다. 매년 음력 2월 영등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바닷가에 모여 제를 올렸지만 바깥 세상은 몰랐다. 아니, 알려 하지 않았다.전환점은 1975년, 한 프랑스 외교관이 만들었다. 주한 프랑스 대사 피에르 랑디(Pierre Landy)는 진돗개를 연구하러 이 섬을 찾았다가 바다가 열리는 장면과 우연히 마주쳤다. 외교관의 눈에 비친 그 광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는 이 장면을 프랑스 언론에 소개했다. "한국의 현대판 모세의 기적." 서울도, 부산도 아닌, 전라남도 끝자락의 작은 섬에서 일어나는 일이 유럽 독자들의 심장을 두드렸다. 진도군은 1998년 그의 이름을 딴 피에르 랑디 공원을 회동리 언덕에 조성했다. 가장 진도다운 이야기가 가장 보편적인 감동이 된 순간의 기념비다.프랑스인들이 관심 있었던 것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이야기'였다. 할머니의 기도, 용왕의 응답, 그리고 재회의 순간에 맞이한 죽음. 유럽의 어느 성당 벽화에 그려져도 어색하지 않을 서사가 진도의 갯벌 위에 살아 있었던 것이다. '가장 로컬한 것이 가장 글로벌하다'는 말이 이보다 선명하게 증명된 사례를 나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나는 지속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펼친 것은 순전히 궁금증 때문이었다. 뉴스를 볼 때마다 드는 질문 하나. 인간은 왜 이렇게 맨날 싸우는가. 이란과 이스라엘, 미사일과 핵시설, 호르무즈 봉쇄와 수천 명의 사망자. 이 싸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천 년째 같은 땅에서, 같은 이유로 반복된다. 나는 그 본성을 이해하고 싶었다.하라리는 책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호모 사피엔스는 왜 지구를 지배하게 됐는가. 더 힘이 세서도, 더 빠르거나 영리해서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함께 믿는 능력' 때문이었다. 국가를 생각해보자.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물리적으로 어디에 존재하는가. 땅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대한민국'이라는 개념 자체는 우리가 함께 믿기로 약속한 것이다. 화폐도 마찬가지다. 지폐 한 장은 그냥 종이지만, 모두가 그 가치를 믿기 때문에 실제로 작동한다. 종교도, 법도, 인권도 따지고 보면 모두 그렇다. 하라리는 이것을 '상상의 질서(Imagined Order)'라고 불렀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십억 명이 함께 믿기 때문에 실재하는 어떤 것보다 강력한 힘을 갖는 것. 그리고 인류의 역사는 이 상상의 질서들이 서로 충돌해 온 역사라고.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문화에 따라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척도는 우리에게 없다."역사에는 정의가 없다. 이 문장 앞에서 나는 오랫동안 책을 덮지 못했다.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언제나 이 질문을 먼저 한다.이 장소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열흘 전, 2026년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가 발표되었다. 칠레의 건축가 스밀랸 라디치(Smiljan Radić). 그의 작업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지독히 소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어딘지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이 소식을 들으며, 나는 10년 전 파리의 기억이 떠올랐다.2016년 3월이었다. 그날 나는 파리의 사무실 의자에 앉아, 요르단 프로젝트 건으로 현지 업체와 한창 통화 중이었다. 아랍어 억양의 영어가 수화기 너머로 이어지던 그 순간, 사무실 안에서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묘하게 깔리는 것이었다. 사무실 특유의 집중된 공기가 흔들리고 있었다.자하 하디드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기관지염 치료를 위해 미국 마이애미의 병원에 입원 중이던 그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숨을 거두었다. 향년 65세. 이라크 바그다드 출신의 영국 건축가. 중동의 감수성과 유럽의 지성이 결합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유체적(流體的) 건축 언어로 세계 건축계를 뒤흔들었던 사람. 한국에서도 그녀의 이름은 특별하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설계한 건축가로, 대중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중동계 여성 건축가라는 정체성 위에 쌓아 올린 그 압도적인 스타성은, 건축계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었다.내가 몸담고 있던 아키텍처 스튜디오(Architecture Studio)는 자하 하디드 사무소와 여러 차례 국제 공모전에서 맞붙은 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느꼈던 그녀의 존재감은 단순히 '경쟁자'라는 말로는 담기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날 사무실을 감돌던 웅성거림은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는 소리처럼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Habitus). 처음 이 책을 손에 쥐었을 때는 사회학 개념으로만 읽었다. 그런데 두 번, 세 번 읽을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페이지마다 건축이, 공간이, 나아가 도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 개념은 단순히 인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구나. 그 인사이트가 오늘 이 글의 출발점이다.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개인에게만 적용했다. 그러나 나는 읽을 때마다 확신이 깊어졌다. 아비투스는 개인을 넘어, 공간과 건축, 나아가 도시에도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삶의 지문이 도시의 지문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지문이 깊이 쌓일 때 비로소 품격의 도시가 탄생한다.오늘 내가 이야기할 도시는 세 곳이다. 파리, 서울, 그리고 부산. 파리는 내가 건축가로서 오랫동안 실무를 익힌 도시이고, 서울은 지금 내가 중심을 두고 활동하는 도시이며, 부산은 나의 고향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도시들. 그만큼 그 도시의 결을 몸으로 느껴온 곳들이다.건축가는 왜 아비투스를 생각하는가건축을 한다는 것은 공간을 짓는 일이다. 나는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짓는 것인가.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내면화된 고유한 습관, 취향, 행동 방식, 가치관. 어린 시절부터 환경을 통해 몸에 배어버린,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행동. 제2의 본성. 그는 이것을 "삶의 지문"이라고 불렀다.지문. 참 정확한 비유다. 건축가의 눈으로 보면 공간이 바로 그 지문을 찍는 잉크판이다. 높은 천장의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와 어두운 골방에서 자란 아이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아름다운 가로수 길을 걸으며 출
선진국의 문화, 우리에게 있는가2021년, 대한민국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UNCTAD 설립 57년 만에 최초의 일이다. 세계 10위권 GDP, 높은 소득 수준, 산업화 성공.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이 되었다.그러나 나는 묻는다. 우리는 진짜 선진국인가? 선진국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가? 낮은 출산율, 높은 노인 빈곤율, 그리고 심각한 지역소멸.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절반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지만, 6개월이 지나면 텅 빈다. 서울의 화려함을 복제했지만, 사람들은 오지 않는다.선진국의 기준이 경제 지표만이 아니라면, 우리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그 답을, BTS의 아리랑 컴백에서 발견했다.세계 정상에서 뿌리로 돌아온 이유세계 정상의 BTS가 선택한 것은 K-POP의 화려함이 아니라, 한국의 가장 오래된 민요 '아리랑'이다. 빌보드를 석권한 그들의 선택, 왜 지금 아리랑인가?BTS, 봉준호, 오징어게임. 한국 문화는 세계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건축가이자 지속가능한 공간을 기획하는 기획자로서, 이번 BTS의 선택이 특별한 이유는 내가 마주한 현실 때문이다. 여러 지자체의 공간기획에 참여하며 지역소멸의 절박함 속에서 깨달았다. 로컬을 살릴 수 있는 진짜 힘은, 그 로컬이 가진 '이야기'라는 것을.글로컬리제이션 - 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특수적인 것의 보편화사회학자 롤랜드 로버트슨은 글로컬리제이션을 "보편화(세계화)와 특수화(지역화) 경향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 또는 "보편적인 것의 특수화 및 특수적인 것의 보편화"로 정의했다. BTS가 바로 이것을
변화하는 한국인의 주거 패러다임한국 사회의 주거 문화는 오랫동안 '소유'와 '단일 거점'에 집중되어 왔다. 서울 수도권의 아파트 한 채를 소유하는 것이 중산층의 목표이자 안정의 상징이었다. 30년 장기 대출을 받아서라도 내 집 마련에 몰빵하는 것이 당연시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부동산과 자본의 굴레에 갇혔다.그러나 최근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면서 '반드시 회사 근처에 살아야 한다'라는 전제가 무너졌다. 줌(Zoom), 슬랙(Slack) 등 협업 도구의 발전으로 출근의 필요성이 급격히 감소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워라밸(Work-Life Balance)이 핵심 가치로 자리 잡으면서, 눈치 보는 회식 문화보다 개인과 가족의 삶이 우선시되고 있다.이러한 변화는 구조적 전환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중거점 생활'이라는 새로운 주거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뉴노마드 라이프의 등장노마드(Nomad)는 유목민을 의미한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생활하는 사람들. 디지털 노마드라는 용어가 이미 익숙하지만, 이제는 '뉴노마드(New Nomad)'라는 새로운 개념이 부상하고 있다.뉴노마드는 완전히 떠도는 삶이 아니라, 두 개 이상의 거점을 오가며 사는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도시에서 생산적으로 일하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전원에서 충전하는 리듬. 이것이 바로 '사일도시, 삼일전원(四日都市, 三日田園)'의 뉴노마드 라이프다.단일 거점에 묶인 전통적 정주 생활도 아니고, 완전히 떠도는 노마드 생활도 아닌, 두 세계를 균형 있게 오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 이는 기술 발전과 사회 변화가 만
지난 칼럼에서 EBS 다큐멘터리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다'를 보며 느낀 복잡한 감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필자가 참여한 해심당이 소개되어 기뻤지만, 동시에 많은 성찰을 하게 되었다는 것. 특히 부산에서 평생을 사시다 덕소로 오신 부모님을 보며, '익숙한 곳'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공간도 평생 쌓아온 관계와 일상을 대신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노년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의 시간이라는 것을.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는 단순히 같은 장소에 머무는 것을 넘어, 스스로 결정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권리를 의미한다는 것을.하지만 이미 익숙한 곳을 떠나야 하는 어르신들도 계시다. 그분들을 위해 건축가로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 고민이 담긴 두 가지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해심당 – 도심형 고령화 특화주택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해심당'은 필자가 기획 및 설계에 참여한 프로젝트다. '편한 마음을 가지고 지낼 수 있는 집'이라는 뜻이다. 65세 이상 무주택 어르신들이 사신다.이 집의 설계와 기획에 참여하며 가장 고민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혼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였다. 부모님을 보며 알았다. 노년에는 타인과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자신만의 공간, 자신만의 시간도 필요하다.그래서 해심당에는 층마다 공동 거실이 있다. 어르신들이 모여 차 한잔하시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 하지만 방으로 돌아가면 완전히 독립된 나만의 영역이 있다. 문을 닫으면 혼자, 문을 열면 이웃. 그 거리감이 중요했다.옥상에는 정원을 만들었다. 어르신들이 직접 채
지난주 EBS 특집 다큐멘터리 '특별하지 않아서 좋았다'가 방영됐다. 필자가 기획 및 설계에 참여한 해심당을 소개한 프로그램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프로젝트가 다큐멘터리에 나온다는 소식에 기대도 있었다.하지만 막상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오히려 많은 생각이 따라왔다.다큐멘터리는 해심당뿐 아니라 충남 부여 송정마을, 강원도 원주 구도심, 서울 중랑구 등 여러 곳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중 부여 송정마을의 85세 할머니 말씀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서울 가서 노인네 갇혀서 못 살아요. 이게 좋아서 마을을 못 떠난 거예요" 원주 구도심의 한 상인 어르신도 말씀하셨다. "나이 들면 편안한 게 좋지. 아는 사람 많으면 더 편안하고" 그래서 신도시로 떠나지 않고 익숙한 골목을 지키신다고.화면을 보며 문득 부모님 생각이 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만든 해심당이 아무리 좋은 공간이라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익숙함과 편리함 사이80대 초반의 부모님은 이제 두 분 다 몸이 아주 불편하시다. 평생을 부산에서 사셨고 친구가 많으셨다. 같은 아파트 단지의 오랜 이웃들과 매일 얼굴을 보며 차 한 잔을 나누고, 단골 식당에서 식사를 하셨다. 그러다가 내가 가족과 함께 한국에 돌아온 해, 부모님도 양평 우리 집 근처 덕소로 이사하셨다. 아들 가까이 계시려는 마음이셨을 것이다.하지만 그 선택이 두 분에게 행복이었을까. 지금도 가끔 부모님 댁을 방문하면 느낀다. 두 분은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계신다. 낯선 동네, 낯선 사람들. 외출은 점점 더 줄어든다. 전화를 드리면 "괜찮다"라고 하시지만,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며칠 전, 부산에 역사적인 순간이 찾아왔다. 해양수산부가 세종시가 아닌 부산으로 정식 이전 개청하며 명실상부 국제 해양 수도로서의 위상이 확고해진 것이다. 거기에 더해 세계디자인수도(WDC) 선정, 북극항로 개발이라는 굵직한 호재들이 줄을 섰다. 부산은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약 306km에 이르는 장대한 해안선은 서울-부산 간 도로 길이 400km와 비교해 봐도 압도적인 규모다. 바다만이 아니다. 금정산, 백양산, 황령산, 승학산까지 도시 곳곳을 산이 둘러싸고 있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진 도시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부산만의 보물이다.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수도권으로 떠나고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도시의 활력이 죽어간다. '죽은 도시'가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진다. 화려한 외양만으로는 부족하다. 국제 해양 수도라는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하다. 도시 내부의 건강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면, 부산의 꿈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것이다.나는 '즐거운 지속가능성(Hedonistic Sustainability)'을 추구하는 건축가로서, 부산의 딜레마에 대한 해답을 '부산형 자연 친화적 지속 가능 도시' 전략에서 찾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친환경 인프라 구축을 넘어, 부산의 고유한 자연과 문화, 경제, 사회 전반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미래 도시 모델을 의미한다. 지속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올리는 엄숙함과 강박에서 벗어나, 도시의 아름다움과 생활의 풍요로움이 자연스럽게 지속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것이 진짜 지속가능성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도시 설계가 있다.부산형 지속 가능 도시 전략 1: 블루-그린 네트
첫날밤의 공간이 카페가 되었다는 건, 어쩌면 가장 로맨틱한 지속가능성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서기 48년. 금관가야의 젊은 왕 김수로와 먼바다 너머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 허황옥이 '명월사'라는 곳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2천 년이 지난 2024년, 그 이름을 물려받은 공간 '명월'에서 누군가는 책을 읽고,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며, 또 누군가는 가야의 정원을 거닐고 있다. 이게 바로 필자가 말하는 '즐거운 지속가능성'이다. 무겁지 않고, 교훈적이지 않으며, 그저 자연스럽게 과거가 현재의 일부가 되어버린 공간.잊힌 철의 왕국, 가야를 말하다사실 가야는 오랫동안 한국사에서 '불운한 존재'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 삼국의 그늘에 가려져, 마치 역사의 각주처럼 취급받았다. 하지만 최근 가야사에 대한 재평가가 활발해지면서, 우리는 비로소 가야가 얼마나 놀라운 문명이었는지 깨닫고 있다. 가야는 철의 왕국이었다. 당시 동아시아 최고 수준의 제철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철을 바탕으로 중국, 일본과 활발한 해상 무역을 펼쳤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가야가 단순한 지역 소국이 아니라, 국제적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던 선진 문명임을 증명한다. 로마 유리구슬, 페르시아 유리병 등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진 서역의 물건들이 2천 년 전 김해에 존재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이야기다. 더 흥미로운 것은 가야의 개방성이다. 김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 이야기는 단순한 신화가 아니다. 이는 가야가 얼마나 국제적이고 개방적인 사회였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증거다. 서기 48년, 인도에서 온 공주를 왕비로 맞이했다는 것. 이건 21세기 기준으로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골목길, 40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벽돌 주택이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한국 현대건축 1세대 거장 김중업이 1984년 설계한 장석웅 주택이 복합문화공간 '연희정음'으로 재탄생한 것이다.상업화 속에서 문화의 거점이 되다연희동은 스페셜티 커피의 성지로 불리며 전국구 카페들이 즐비하고, 독창적인 디저트와 요리를 선보이는 로컬 브랜드들이 경쟁하듯 들어서 있다. 1975년부터 운영되어 온 사러가마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골목 상권은 개성 있는 가게들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업화의 물결 속에서 연희정음의 존재는 특별하다. 카페와 식당이 넘쳐나는 동네에서, 이곳은 연희동 재생의 문화 앵커시설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적 거점 역할을 한다. 이 재생 건축은 오래된 건물을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죽어있는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마법과 같다. 연희정음을 리모델링한 쿠움파트너스는 실제로 연희동과 연남동에서 100여 채 이상의 건물을 리모델링하며 지역 재생을 선도해왔다. 그들의 손을 거친 공간들은 시간의 층위를 간직하며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살아있는 장소로 거듭난다.1980년대, 대량생산의 시대한국은 1980년대에 폭발적인 주택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다가구 주택과 단독주택을 대량생산 했다. 아파트가 일반화되기 전, 이는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주거 타입이었다. 1984년 다세대주택 제도 도입 이후 땅만 있으면 전세로 건축비를 충당할 수 있었기에,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에 걸쳐 엄청난 양의 다가구주택이 건설되었다. 팽창하는 인구를 수용하던 이 건물들은 점차 기능을 상실하며 재개발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 시기 건물
전편에서 우리는 '공공주택' 모델을 통해 주택의 본질적인 목적(텔로스)을 재정의하고, 마이클 샌델 교수의 공동선 철학을 구현하는 가능성을 짚어보았다. 주거가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을 넘어 공동체의 활력과 정의를 심는 주춧돌이 되어야 한다는 건축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제 시선을 확장하여, 도시를 구성하는 광범위한 공공 건축과 장소들이 어떻게 '정의로운 사회'를 향한 진정한 주춧돌이 될 수 있는지 깊이 있게 들여다볼 때다. 이 질문은 건축가인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며, 우리의 손끝에서 빚어질 공간들이 어떤 가치를 담아낼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을 던진다.'공공'이라는 단어는 흔히 '모두를 위한 것'이라는 통념 속에서 벤담의 공리주의,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개념과 쉽게 연결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샌델 교수는 공리주의가 갖는 정량적 측정의 한계와 소수의 희생을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은 우리가 공공 건축과 장소를 설계하고 조성할 때 특히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최대 행복' 뒤에 숨겨진 역설: 북촌과 감천마을의 그림자한국에는 공공의 장소로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동시에 샌델의 비판적 시각을 떠올리게 하는 흥미로운 사례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문화마을이 그러하다. 이곳들은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매력으로 수많은 국내외 방문객을 끌어모으며, '공공'에 즐거움과 행복을 선사한다. 이는 표면적으로 공리주의적 가치, 즉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것처럼 보인다.하지만 그 이면에는 역설적인 그림자가 드리워져
전남 해남 솔라시도 기업도시가 2조 5천억 원 규모의 국가 AI 컴퓨팅센터 유력 대상지로 사실상 확정됐다. 이 소식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중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RE100 국가산단 지정 추진, 오픈AI 및 SK그룹 데이터센터 유치 등의 연이은 쾌거와 맞물려, 해남 솔라시도는 에너지-디지털 융합 허브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다지며 '대한민국 AI 허브'로의 비상을 예고하고 있다. 이는 곧 'AI 수도는 해남'이라는 강력한 비전의 시작을 의미한다.하지만 기술적 진보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우리는 "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기술 발전의 속도가 인간의 삶과 사회 구조를 빠른 속도로 변화시키는 시점에서, 변치 않는 인간 본연의 가치와 지속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는 필자가 기고했던 '[김성훈의 지속 가능한 공간] AI 시대, 변하지 않는 가치를 묻는다'라는 칼럼에서 강조한 바와 일맥상통한다.이 질문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는 바로 '정원 도시 솔라시도'의 비전과 철학에 있다. 솔라시도는 간척지 위에 건물을 세우는 단순한 물리적인 개발을 넘어, '친환경 도시 조성'이라는 큰 그림 아래 자연과의 조화를 통해 지속할 수 있는 미래 도시의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는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공존을 통해 미래 세대가 꿈꾸고 살아갈 소중한 '미래환경'을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담고 있다.그리고 그 정원 도시 솔라시도의 핵심이자 정신적 구심점이 바로 '산이정원'이다. '산이 정원이 된다’라는 뜻을 가진
오늘날 대한민국은 급변하는 시대 속, 사회의 근간을 바로 세우려는 깊은 열망과 함께 '정의'라는 가치의 갈증을 경험한다. 시대적 요구 속에서 우리 건축가들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을 넘어, '공간에 사랑을 짓는 철학자'로서 지속할 수 있으며 정의로운 도시를 만들어갈 책임을 느낀다.한국은 이제 한류의 중심지이자 세계인의 이목을 끄는 문화 강국으로 우뚝 섰다. 국제적인 호재와 함께,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혁신적 모색은 대한민국을 '지속할 수 있으며 정의로운 도시'로 만들 절호의 기회다. 특히, 현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하는 '기본 주택' 개념은 일반적인 주택 공급에서 나아가 공공선 구현을 위한 도시 기반 시설로서 정의로운 사회 건설의 중요한 주춧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주거 모델이 경제적 효율성을 넘어, 진정으로 정의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려면 마이클 샌델 교수가 역설한 '공동선 정치'의 시각에서 그 철학적 기반을 다질 필요가 있다.샌델 교수는 그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현대 자유주의적 정의론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 이론은 "국가는 '좋은 삶'에 대한 특정한 가치관에 대해 중립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오직 개인의 권리와 공정한 절차만을 강조한다. 주택 문제에 대입하면, 시장의 자유로운 거래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사회 공동체가 최소한의 복지 안전망만 제공하는 정도에 그쳐야 한다는 접근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한 관점은 주택을 단순히 개인의 소유물이자 경제적 교환 가치를 지닌 '상품'으로 여기게 만들며, 그 이면에 깔린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지속가능성
필자는 '건축가에게 AI란?…'위협'이 아닌 '기회'’라는 글을 기고한 바 있다. AI 시대를 맞아 건축가가 차가운 기술을 넘어 따뜻한 감성으로 공간을 지어야 함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는 후속으로, 급변하는 AI 시대에 우리가 진정으로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최근 고등학교 3학년인 필자의 아이와 대학교 면접을 논의하면서, 아이에게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본인의 생각'이며, '질문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끊임없이 질문하며 본질을 파고드는 힘이야말로 미래를 살아갈 주체적 역량이기 때문이다.프랑스 유학 시절, 프랑스인들의 철학적 사고에 기반한 문제 제기 및 해결 능력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때로는 그들의 날카로운 통찰력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치열한 훈련과 사유의 과정은 나를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건축가로 만들었다. 끊임없이 '왜?'라고 묻고, '무엇이 본질인가?'를 고민하는 자세가 건축가의 핵심 역량임을 깨닫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이러한 프랑스인들의 사유 능력 뒤에는 그들의 독특한 교육 제도인 '바칼로레아(Baccalauréat)'가 있다. 바칼로레아는 대학 입학시험을 넘어,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7시간에 걸쳐 철학 논술 시험을 치르는 등 깊이 있는 사유와 논리적 사고를 요구하는 국가적 시험이다. '왜?'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복잡한 문제에 대해 자신만의 철학적인 관점을 정립하는 훈련은 이들의 사고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무엇이 진짜인지조차
매일 태블릿이나 노트북 대신 익숙한 공책과 펜을 고집한다. 손끝으로 꾹꾹 눌러 담은 생각과 감성이 비로소 나의 일부가 되는 아날로그적 행위이다. 나는 이러한 사유와 교감의 과정에서 진정한 가치를 발견한다. 이는 비단 글쓰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이라는 위대한 창조 행위 또한 인간의 감성과 따뜻한 사랑이 스며들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고 굳게 믿는다.최근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AI가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는데, 건축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제 AI가 모든 걸 다 처리하는 시대가 오는 것 아닌가?"건축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삶의 지혜까지 가르치려는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철학', 그중에서도 '사랑'이라는 본질적 가치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철학(Philosophy)'이 '사랑(Philia)'과 '지혜(Sophia)'의 결합인 것처럼, 건축 역시 단순히 건물을 짓는 행위를 넘어 삶과 문화를 담아내고 감정을 어루만지는 '사랑의 언어'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AI가 도래한 이 시대에 건축가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1. AI, 효율을 극대화하는 '지혜로운 도구'이다우리는 AI의 놀라운 능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한다. AI는 복잡한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의 디자인 대안을 눈 깜짝할 새에 제시하고, 구조 계산과 에너지 효율 분석 등 설계 과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이미 AI는 건축 설계의 초기 단계부터 시공,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는 건축가를 반복적이고 계산적인 업무에서 해방해, 창의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AI
지속가능성과 명품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오늘날 명품은 단순한 고가의 상품을 넘어, 디자인과 품질은 물론 브랜드 가치,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특별한 의미까지 담아내는 탁월한 작품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함은 말 그대로 시간의 연속성 속에 존재한다. 진정한 시간의 흔적은 그 시대의 철학이 현재의 감성과 깊이 교감할 때 비로소 시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오랜 시간을 품은 공간이나 사물을 마주할 때, 우리는 형언하기 어려운 깊은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본 칼럼에서는 필자가 총괄한 ‘광주요 이천 생산본부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 가능함과 명품의 철학을 건축적으로 어떻게 구현했는지 심도 있게 다룬다.광주요 이천센터점에 위치한 생산본부(공장)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일반적인 공장 리모델링에서 나아가 광주요가 추구하는 ‘생활 속 명품’과 ‘시간’의 가치를 건축적으로 승화시킨 복합문화공간을 목표로 진행됐다. 이번 리모델링은 80주년 광복절을 맞이해 높아진 한국 문화의 위상과 자연스럽게 궤를 같이한다. 필자는 “광주요는 한국 문화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이라는 철학 아래, 이 공간을 일반적인 생산시설이 아니라 ‘생활 속 명품’을 빚어내는 장인의 공방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광주요의 도자기 하나하나는 장인의 혼과 시간이 깃든 예술이며, 이 공간 자체가 바로 그 명품의 가치를 건축으로 증명하는 무대가 되도록 의도했다.기능과 가치의 조화, 그리고 '시간의 지속성'의 미학이번 리모델링은 ‘경제성 확보’와 ‘문화적·건축적 가치 확보’라는 두 가지 목표 아래 진행됐다. 공장
한때 오염의 상징이었던 파리 센강이, 약 100년 만에 시민을 위한 수영장으로 되살아났다. 1923년 공식적으로 수영이 금지된 이후, 수질 개선 노력을 거쳐 시민들에게 친수 공간을 되돌려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과 함께 파리가 녹색도시이자 생태도시,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센강 수영장 개장은 단순한 여가 공간 조성을 넘어, 도시의 생태적 건강을 회복하고 시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지속 가능한 도시 정책의 핵심적인 성과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센 강 정화는 단지 2024년 올림픽을 위한 것이 아니라,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시민의 삶과 도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속 가능한 도시로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파리는 예로부터 ‘혁명의 도시’로 불려왔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이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전 세계에 확산시켰듯, 오늘날의 파리는 ‘지속가능성 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전환점을 돌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누려온 풍요와 편리함은 지구 환경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탄소는 끝없이 배출되고, 도시는 끊임없이 확장됐으며, 그 대가는 기후 위기라는 형태로 우리에게 되돌아왔다. 이제 우리는 지속 불가능한 방식으로는 미래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마주하고 있다. 바로 이 전환의 시대에, 파리는 다시 한번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파리의 지속가능성 혁명은 지구와 환경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부터 바꾸려는 시도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며, 미래 세대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방식을 도시 차원에서 새롭게 만들어가고자 한다. 이는 단순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도
■ 파리의 인구 밀도가 서울보다 높다고?놀라운 사실 하나. 파리의 인구 밀도가 서울보다 훨씬 높다.면적으로 따지면 서울이 파리의 약 6배나 넓지만, 파리 시내만 놓고 보면 인구 밀도가 서울보다 1.5배 이상 높다. 그런데도 파리는 서울보다 훨씬 여유롭고 쾌적하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은 공간의 구성에 있다. 파리는 그 역사적인 건축물만큼이나 잘 가꾸어진 공원과 정원이 풍부한 도시다. 파리는 도시 전역에 공원과 정원을 촘촘히 배치하고, 골목과 거리의 흐름을 사람 중심으로 설계했다. 복잡한 듯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결된 거리와 골목길, 건물 1층의 상점과 카페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공공 공간이 도시 전체를 활기차고 편안하게 만든다. 특히 파리의 카페 문화는 인상적이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곳을 넘어, 사람들이 길을 바라보며 앉아 대화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눈을 마주치며 도시의 일원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는 소중한 공공 공간이다. 작은 테이블에 앉아 길거리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도시의 활기를 느끼고 사람들과 연결되는 기분이 든다.서울에 살면서 가장 아쉽게 느낀 점이 있다면, 바로 부족한 ‘푸른 공간’이다. 건물과 건물 사이,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작은 화단이나 놀이터는 있지만, 파리의 공원처럼 온전히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은 드물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가고, 각자의 '방'에 갇혀 지내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매일 수많은 사람과 스쳐 지나가지만, 서로의 얼굴을 알아보거나 가벼운 말 한마디 나누기 어려운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공공 공간의 부족은 물리적 불편함을 넘
나에게 사랑은 가족을 생각할 때 가슴 가득 차오르는 따뜻한 감정이다. 기분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감정. 사랑은 결국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우리말 '사랑'은 '생각하고 헤아린다', '배려한다'라는 어원에서 왔다. 상대를 깊이 생각하고, 그 마음을 헤아려 보살피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뜻이다. 영어 'LOVE'는 라틴어 'Lube re'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기뻐한다', '즐겁게 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어 'AIMER'는 라틴어 'amāre'에서 왔으며, '감정적인 애착'이나 '깊은 감정'을 나타내는 동사였다가 중세 프랑스어에서 '좋아한다'는 의미가 강해졌다.이 모든 언어의 '사랑'이라는 단어 속에는 공통으로 '기분 좋음', '행복함', '즐거움'이라는 감정이 녹아 있다. 상대를 생각하고 배려할 때, 상대가 기뻐하고 즐거워야 할 때, 그리고 그로 인해 나 자신도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라고 믿는다.이러한 관점에서 파리를 바라보면, 파리야말로 진정 '사랑이 넘치는 도시'라고 느껴진다. 파리에서 13년간 건축가로 도시를 바라보며 느낀 파리의 진정한 매력은, 이 도시의 공간들이 사람들을 배려하고 행복을 선사하는 '사랑의 언어'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파리의 거리, 광장, 공원, 그리고 카페테라스 하나하나에는 사람들을 향한 깊은 '생각하고 헤아림'이 담겨 있다. 빽빽한 도시 속에서도 사람들이 숨 쉴 수 있는 푸른 공간을 마련하고, 걷고 싶은 거리와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 쉴 수 있는 벤치를 곳곳에 배치하여,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교류
■ 파리에서 배우는 우리 도시의 지속가능성파리. 그 이름만으로 낭만과 예술, 사랑이 떠오르는 도시다.2024년 여름, 전 세계의 시선이 파리로 쏠렸다. 역사와 예술의 도시, 낭만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축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파리 올림픽은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파리 2024 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은 바로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였다. 이 슬로건은 단순히 모두에게 열린 축제라는 의미를 넘어, 도시의 물리적인 공간, 특히 파리가 자랑하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유산을 올림픽의 무대로 '활짝 개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센 강, 에펠탑 앞 샹 드 마르스 공원, 베르사유 궁전, 그랑 팔레 같은 파리의 상징적인 장소들이 경기장으로 탈바꿈되었다. 새로 짓기보단 기존의 공간을 활용하는 것, 그 선택에는 파리가 지향하는 도시 철학이 담겨있다. 도시의 오랜 유산을 파괴하거나 외면하는 대신, 그것을 현대적인 삶과 미래 비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는 파리의 방식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화려한 우리 도시의 이면우리는 숨 가쁘게 변화하는 시대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진화했고, 한국은 그 최전선에 서 있다. 디지털 기술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었고, 세계는 ‘K’로 시작하는 문화에 열광한다.하지만 그런데도 문득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지금 우리는 행복한가?’‘우리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정말 행복하게 사는 걸까?’대한민국은 빠르게, 많은 걸 이뤄냈지만, 동시에 불안과 피로도 함께 커져 왔다. 기후 위기는 현실로 다가왔고, 사회는 점점 더 양극화되고 있다. 출산율은 0.6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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