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복제된 도시, 사라진 풍경

도시는 멈추지 않고 건설된다. 공급의 시계는 단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도시는 늘어나는데 우리가 마주하는 풍경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처음 가보는 신도시인데도 기시감이 든다. 건물의 높이, 단지의 배치, 심지어 상가의 구성까지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의 산물이다. 현대의 신도시는 철저히 표준화된 방식으로 찍어낸다. 부지를 평탄화하고, 도로를 격자로 긋고, 검증된 도면을 반복해서 복제한다. 속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한 최적의 선택, 즉 효율이 모든 결정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현장은 달라도 자본의 계산법은 같다. 효율이 극대화될수록 도시의 다양성은 그만큼 빠르게 거세당한다.

상업지구의 공실, 예고된 구조적 실패

이러한 효율 중심의 구조가 가장 처참하게 무너지는 곳이 상업지구다. 신도시 상가를 걸어보면 1층조차 임대 문의 전단지가 도배된 풍경을 쉽게 본다. 이를 단순한 경기 불황이나 온라인 쇼핑의 확산으로만 치부한다면 오산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의 구조에 있다. 상업시설은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쏟아진다. 토지 가격은 미래의 기대 가치를 반영해 높게 책정되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고임대료로 전가된다. 신규 상권이 자생력을 갖추기도 전에 임대료의 벽이 먼저 세워지는 셈이다. 결국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만 남거나, 그들조차 외면한 자리는 거대한 공동(空洞)이 된다. 겉으로는 완성된 도시처럼 보이지만 속은 비어 있는 구조, 이것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설계 단계부터 내재된 예정된 결과다.

대체 가능한 공간은 기억을 남기지 않는다

도시는 단순히 물리적인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다. 그 공간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과 동선을 결정한다. 비슷한 평면, 비슷한 상가, 비슷한 조경 속에서 사람들의 생활 방식 역시 획일화된다. 어디에 있어도 차별점이 없으니 이동은 편리해졌을지 몰라도 공간에 대한 기억은 축적되지 않는다. 도시의 숫자는 늘었지만, 정작 도시의 표정은 지워지고 있다.

문제는 획일성이 도시의 경제적 생명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이다. 특징 없는 공간은 대체하기가 너무 쉽다. 조금 더 새롭거나 조금 더 저렴한 신도시가 생기면 수요는 미련 없이 옮겨간다. 자산 가치를 지탱하는 힘이 공간의 매력이 아닌 가격 경쟁으로 전락하는 순간, 도시는 쇠퇴의 길로 접어든다. 반면 오래 살아남는 도시는 기준이 다르다. 숫자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고유한 기억이 있는 곳에 비로소 사람이 모인다.

이제 질문의 방향을 틀어야 할 때

지난 수십 년간 우리의 질문은 단순하고 명쾌했다. 얼마나 빠르게 만들 것인가. 그리고 얼마나 많이 공급할 것인가. 이 양적 팽창의 질문이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하지만 이제는 질문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그리고 왜 이 도시에 머물러야 하는가?

도시는 계획가와 자본에 의해 시작되지만, 결국 그곳을 선택한 사람들에 의해 완성된다. 사람이 머물지 않는 공간은 유지될 수 없다. 흐름이 끊기면 상권도, 부동산 가치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수익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더 이상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그 공간이 선택받아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에 있다.

지금의 방식은 분명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그러나 이 복제의 굴레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도시를 얻는 대신 더 넓게 비어있는 유령도시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결과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한경닷컴 The Lifeist> 명재환 칼럼니스트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