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업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주가와 함께 움직인다. 국내 증권사의 첫 전성기이던 1980년대 3저 호황 때가 그랬다. 저유가·저금리·저달러에 힘입어 풍부한 유동성이 증시에 유입되자 대우증권, 동서증권 등이 급성장했다. 두 번째 전성기인 2000년대 초반 ‘닷컴버블’ 당시엔 코스닥 열풍과 ‘바이 코리아’ 펀드 붐을 타고 현대증권, 미래에셋증권 등이 도약했다.

코스피지수 6000 시대가 열린 지금, 국내 증권업은 세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과거 호황과는 결이 다르다. 증권사들이 중개 수수료에 의존하던 ‘천수답식 사업구조’를 넘어 신용공여, 기업금융(IB) 등 ‘직접 자본 공급자’로 탈바꿈해서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키우기 위해 증권사에 자산운용, IB 영업 등을 열어준 2006년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이후 20년 만에 국내 증권업이 금융·자본시장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70兆 '머니무브 마법'…은행 순익 5% 늘때 증권사는 43% 껑충

◇ 은행 위협하는 증권사 성장세

지난해 업계 최초로 순이익 2조원 시대를 연 한국투자증권이 대표적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지난해 이익 구조를 보면, 순수수료손익(위탁매매·자산관리·상장주관 등)과 순이자손익(신용공여·기업대출 등)이 각각 1조4197억원, 1조1460억원이었다. 전년 대비 각각 28.7%, 43.7% 급증했다. 전통적인 수수료 기반 사업은 물론, 은행의 영역이던 이자 사업까지 동반 성장했다. 여기에서 판매관리비, 법인세 등을 뺀 한국투자증권의 순이익(2조134억원)은 지난해 처음으로 농협은행(1조8139억원)을 앞질렀다. 이 같은 성장세라면 올해 우리은행마저 제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0대 증권사로 범위를 넓혀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이들 증권사의 순이자손익은 6조8135억원으로 1년 새 19.8% 증가했다. 순수수료손익도 9조2885억원으로 26.7% 늘었다. 수수료와 이자 사업이 고르게 성장하면서 지난해 10대 증권사의 순이익 총액은 전년 대비 42.5% 급증한 8조9730억원을 기록했다. 5대 시중은행의 순이익 증가세(15조7597억원·4.6%)를 압도하며 격차를 좁혔다.

증권사의 약진 뒤에는 증시로 자금이 쏠리는 ‘머니무브’ 현상이 있다. 그동안 증권사는 원금 보장과 연이율이 확실한 은행에 비해 수신 능력이 저조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코스피지수가 4000선을 돌파한 이후 은행 예금이나 가상자산 대신 주식시장에 돈을 넣는 투자자가 많아졌다. 곳간(고객예탁금)이 불어날수록 증권사는 한국증권금융을 통해 자금을 저렴하게 조달할 수 있다. 이렇게 확보한 자금은 개인 신용공여와 기업 대출 재원으로 활용하거나, 보수적인 은행권은 하기 어려운 회사채 인수, 모험자본 투자 등에 투입한다. 증시 활황이 기업 성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자본 선순환’인 셈이다.

◇ 올해도 역대 최대 실적 전망

경영효율성을 의미하는 자기자본이익률(ROE)에서도 증권사들은 은행을 압도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의 ROE는 17.9%로, 농협은행(6.8%)의 두 배를 웃돌았다. 농협은행이 26조원대 자본으로 1조8000억원을 벌어들일 때 한국투자증권은 11조원대 자본으로 2조원이 넘는 수익을 낸 것이다. 키움증권(16.6%), 삼성증권(12.5%), 미래에셋증권(11.7%) 등도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올해도 증권사들의 ‘실적 잔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중동전쟁으로 코스피지수 변동성이 커졌지만, 여전히 증시 상승에 베팅하는 투자자가 많다.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내 증시에 순유입된 자금은 지난 8일 기준 70조3100억원에 달했다. ‘동학개미운동’ 절정기이던 2021년 연간 순유입액(75조원)을 뛰어넘어 사상 최대치를 나타낼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발행어음과 종합투자계좌(IMA) 등을 통해 조달 창구를 넓히고 있다. 에픽AI에 따르면 올해 미래에셋증권 당기순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전망치 평균)는 전년 대비 44.9% 급증한 2조3284억원으로 집계됐다. 키움증권(1조3990억원·48.5%), NH투자증권(1조2786억원·40.7%) 등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선아/안상미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