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전쟁의 경영학 : '트럼프 리스크'와 생존 방정식
조원경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먼저 효율 중심의 공급망을 버리고 회복탄력성을 재설계하는 결단이 시급하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영학의 금과옥조는 도요타식 ‘적기 생산’을 통한 재고 제로화와 비용 절감이었다. 하지만 중동발 포화가 물류망을 마비시키는 상황에서 재고가 없다는 것은 곧 생산 라인의 셧다운을 뜻한다. 이제는 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적정 재고 확보’ 전략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실제로 글로벌 제조 기업은 특정 지역에 편중된 생산 기지를 분산하는 ‘멀티 쇼어링’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 기업 역시 원자재 수입선 다변화를 넘어, 핵심 부품에 대한 ‘공급망 지도’를 완전히 새로 그려야 한다.
세 번째로는 지정학적 정보력을 기업의 핵심 경영 자산으로 내재화해야 한다. 이제 기업의 전략기획실은 단순한 시장 조사를 넘어 정보기관 수준의 리스크 분석 역량을 갖추고 있다. 중동의 군사적 움직임이 국제 금리와 원자재 가격에 미치는 인과관계를 실시간으로 시나리오화하고, 이에 따른 단계별 대응 매뉴얼을 가동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필수가 됐다. 예를 들어 선진 기업은 이미 지정학 전문가를 전략 파트에 배치해 현지 정세의 미묘한 변화를 경영진의 의사결정에 즉각 반영한다. “사태가 진정되길 기다려보자“는 식의 관망은 현대판 전쟁 경영에서 패배로 직결된다. 기업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하고 그에 따른 유동성 확보와 물류 경로 변경을 선제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민첩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글로벌 분절화에 대비해 재무적 방어막을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방법도 있다. 지정학적 충돌은 자본시장의 변동성을 상시화하며 기존 금융 공식을 무력화한다. 특히 에너지 패권 갈등은 불규칙한 환율 요동을 동반하며 기업의 현금 흐름을 위협한다. 수출입 비중이 높은 우리 기업은 단일 통화 결제에 의존하는 관성에서 벗어나 결제 수단을 입체화하고, 통화별 자산과 부채의 균형을 맞추는 정교한 환헤지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글로벌 질서가 파편화하는 과정에서는 자본의 흐름이 급격히 왜곡될 수 있다. 이때 유동성을 선제적으로 확보하고 재무적 건전성을 유지하는 것은 재무부서의 실무를 넘어 전사적인 생존 전략의 핵심이다. 변화하는 금융 지형을 읽지 못하는 기업은 제품 경쟁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외부의 거센 파도에 금융적 기초가 무너질 수 있다.
트럼프식 거래적 외교와 중동의 고질적인 분쟁이 결합하며 앞으로 세계 시장은 더욱 짙은 안갯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거대한 풍랑을 멈출 수는 없어도 우리 내부엔 배의 균형을 잡고 키를 조종하는 힘이 있다. 가장 위험한 리스크는 외부의 포화가 아니라, 위기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경영자의 안일함과 오만함이다. 우리는 이제 안정적인 국제 질서라는 과거의 상수가 사라졌음을 인정해야 한다. 낡은 경영 방식을 고집하며 어제의 영광에 취해 있는 것은 난파를 자초할 뿐이다. 강대국의 거친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 기업이 갖춰야 할 태도는 철저한 자기 객관화와 겸손한 대비다. 지정학의 칼날이 경제를 위협하는 지금, 우리 기업이 실리에 기반한 유연한 키잡이 능력을 발휘한다면 이 위기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