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민연금, 벤처펀드 '인력 족쇄' 푼다…출자 규모도 역대급
GP 운용인력 겸업 기준 완화
국내 VC '멀티펀드' 특성 고려
5~6곳에 총 4000억 규모 예상
조만간 제안서 접수받을 듯
국내 VC '멀티펀드' 특성 고려
5~6곳에 총 4000억 규모 예상
조만간 제안서 접수받을 듯
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국내 벤처펀드 위탁운용사(GP) 선정 과정에서 핵심 운용인력의 겸업 기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국민연금이 벤처투자 시장의 현실을 반영해 운용 기준을 손질한 것으로, 새 기준은 이달 공고되는 출자사업부터 적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벤처펀드 출자사업에서 핵심 운용인력의 전담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 왔다. 특정 펀드에 이름을 올린 핵심 인력은 사실상 해당 펀드 운용에 집중해야 했고, 다른 펀드나 업무를 병행하는 데 제약이 컸다. 기관투자가(LP) 입장에서는 책임 운용을 강화하고 이해 상충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장치였지만, 벤처캐피털 업계에서는 시장 현실과 괴리가 큰 규제로 받아들여졌다.
국내 VC 시장은 한 운용사가 초기·성장·세컨더리 등 여러 전략의 펀드를 동시에 운용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다. 핵심 인력이 여러 프로젝트를 병행하며 딜을 발굴하고 후속 투자까지 관리하는 방식도 흔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의 기준이 우수 운용인력 활용을 가로막고 신규 펀드 결성의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일부 운용사는 국민연금 출자사업 참여를 주저하거나, 가장 경쟁력 있는 인력을 제안서 전면에 배치하지 못하는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형식상 전담 인력을 맞추는 데 초점이 쏠리면서 정작 중요한 운용역의 실질적 역량과 딜 수행 능력은 제대로 평가받기 어렵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멀티 펀드 운용이 일반적인 벤처 시장에선 핵심 인력을 특정 펀드에 사실상 묶어두는 구조가 부담이 컸다”며 “업계가 계속 문제를 제기해온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번 완화 조치는 이런 시장의 불만을 반영해 국민연금이 한발 물러선 것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규제를 푼 데 그치지 않고, 벤처투자 부문에선 형식적 전속 여부보다 실제 운용 역량과 성과를 더 중시하겠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업계에선 그동안 국민연금 출자사업에 소극적이던 중견 VC와 전략 특화 운용사까지 참여할 수 있는 저변이 넓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도 기대 효과가 상당하다. 더욱 많은 운용사가 출자사업에 참여하면 경쟁이 한층 치열해진다. 우수 운용역의 네트워크와 집행 경험이 수익률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인력 운영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오히려 기금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책 환경 변화도 이번 조치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최근 정부가 국민성장펀드 출범 등을 통해 모험자본 공급 확대에 나선 가운데, 국민연금도 벤처투자 부문에서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요구받고 있어서다. 대체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 필요성이 커진 상황에서 벤처 자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시장 친화적인 기준으로 GP 선정을 유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평가다.
아울러 국민연금은 올해 국내 벤처펀드 위탁운용사 5~6곳을 선정해 총 4000억원을 출자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 연간 1500억~2000억원 수준이던 최근 5개년 출자 규모와 비교하면 두 배 안팎으로 늘어난 수준이다. 이달 중 제안서를 접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