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원망도 한탄도 미움도 그리움도
다 잊어라
(‘혼자 밥 먹기’ 中)

한국 문학의 거목 박경리(1926~2008)의 유고 시집 <산다는 슬픔>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미발표 시 47편이 담겼다.
현대소설계 거목'토지' 박경리
현대소설계 거목'토지' 박경리
박경리는 1955년 단편 <계산>으로 등단해 대하소설 <토지>로 한국 문학사의 큰 이정표를 세운 작가다. 동시에 약 200편의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하다. 소설 등단 1년 전인 1954년, 상업은행 행우회 사보에 발표한 ‘바다와 하늘’이 그의 첫 작품이었다. 이후 <못 떠나는 배>, <도시의 고양이들> 등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다.

이번에 출간된 <산다는 슬픔>은 생전에 발표되지 않았던 시편을 처음으로 공개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수록된 작품들은 강원 원주에서 <토지> 5부를 집필하던 시기에 주로 쓰였다. 박경리는 당시 노트와 원고지에 하루하루의 감정과 사유를 시로 옮겨 적었다. 문단의 평가나 독자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 사적이고 내밀한 기록이 대부분이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개인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시집에 실린 작품들에서 박경리는 시대와 역사, 가족과 고통, 자연과 생명에 대한 사유를 담담하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언어로 풀어낸다. ‘속살’에서는 “세상천지의 뭇 생명은 모두 연약하다/악이든 선이든 숨 쉬며 경련하는 속살/먹고 먹혀야 하는 속살”이라는 구절을 통해 자연과 사회를 관통하는 냉정한 질서를 응시한다.

‘너무나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에선 “사방에서 칼날이 희번덕이고/지폐들은 핏빛으로 물들어 간다”며 시대를 향한 비판적 시선을 드러낸다. “이 가엾은 족속들의 텅텅 빈 머리통/쥐어짠다고 기름이 나오나”('꼴불견' 中)라는 문장에서는 박경리의 솔직한 언어를 볼 수 있다.

시집에는 제목이 없는 작품도 적지 않다. 이들에는 작가의 외손자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가제를 붙였다. 이번 시집에는 박경리의 육필 원고 11편도 함께 실렸다. 창작 당시의 숨결을 생생하게 전한다.
지나치게 솔직해 서랍에 넣어뒀던 박경리의 詩 47편 출간
김 이사장은 “할머니가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써 내려간 조각 조각난 글들을 바라보니, 가족으로서 할머니가 감당하며 살아왔을 슬픔과 고통의 무게와 깊이가 심장을 찔러왔다”고 적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