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은 국제적 예술가들의 실험 무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의 우경화, 치솟는 스튜디오 임대료, 그리고 일부 예술계 대표 인사들의 전쟁 윤리성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이 도시가 개방적 실험을 수용하는 장소인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그럼에도 어떤 예술가에게 베를린은 여전히 탐색해야 할 구조로 남아있다. 스웨덴 출신으로 베를린에 20여 년을 거주한 클라라 리덴(Klara Lidén, b. 1979)은 거리와 지하철, 공사장 가림막, 광고판, 가로등 같은 도시 인프라를 작업의 재료로 삼아 왔다. 배경이 아니라 탐색의 대상으로서 도시와의 관계를 조망하는 그의 개인전 《Kunstwerk》가 KW 현대미술관(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에서 열리고 있다.
Klara Lidén, 2005. Courtesy the artist.
‘예술작품’이란 제목의 전시는 리덴이 거주해온 베를린, 뉴욕, 스톡홀름의 공공 공간에서 채집한 골판지, 철제, 콘크리트, 거리 광고판부터 쓰레기통까지 다양한 도시의 사물을 전시장으로 가져와 작품으로 변모시킨다. 마치 무엇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듯한 이 과정을 리덴은 ‘unbuilding(의도적 해체와 재구성)’이라 부른다. 이를 통해 도시와 그 안의 장치들이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머무는지를 조용히 규정함을 드러내고, 자신의 신체로 그 규칙을 미세하게 교란한다.
Klara Lidén, Unheimlich Manöver, 2007. Courtesy Moderna Museet, Stockholm. Donation from Lena and Per Josefsson, 2011 (Nordic Collection).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Klara Lidén – Kunstwerke at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2026. Photo: Frank Sperling.
전시는 2000년대 초의 작업부터 최근 작품까지 아우르며 세 개 층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 작품은 2007년 설치작 <Unheimlich Manöver(낯선 작전)>으로 작가가 살던 스톡홀름의 30m² 아파트의 모든 물건을 전시장으로 옮겨온 작업이다. 가방과 신발, 오래된 전자기기와 상자가 선반에 빼곡하게 쌓여 있고, 냉장고와 가구, 책과 도구들이 뒤섞여 있는 이 작품은 리덴이 베를린으로 이주하며 남겨둔 생활의 흔적을 ‘unbuilding’하며 그의 예술적 실천의 본질을 전시 시작점에서 재현한다.
쌓인 사물들 사이에서 상영되는 초기 비디오는 리덴 작업의 다른 축인 보다 적극적인 신체 개입 – 퍼포먼스 – 의 기원을 보여준다. 좁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 갑자기 자신을 때리며 질책하거나, 방 안에서 자전거를 쇠막대로 두드려 천천히 구부러뜨리는 장면 등은 사적 공간인 집까지 침투한 사회적 압력과 자기 검열의 긴장을 드러내며 이후 이어질 퍼포먼스의 특징을 예고한다.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Klara Lidén – Kunstwerke at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2026. Courtesy the artist. Photo: Frank Sperling.
입구를 지나 1층 전시홀에는 도시에서 가져온 거대한 조각 및 벽 작품이 펼쳐진다. 베를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사 현장의 임시 보행 통로 모듈을 활용한 <Rosie Rosie>(2026)가 중앙에 설치되어 있고, 움직이는 광고판을 차용한 일련의 작품들이 본래 광고를 이미지를 지운 채 도시의 시각적 풍경을 추상적으로 그려낸다. 더불어 다양한 장소에서 수집된 쓰레기통은 도시 맥락에서 분리되어 그 기능과 일상성을 넘어서는 조형적 형태로 제시된다.
Klara Lidén, Untitled (Trashcan), 2013. Courtesy Boros Collection, Berlin.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Klara Lidén – Kunstwerke at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2026. Photo: Frank Sperling.
2층의 조각들 역시 이러한 태도를 이어 간다. 버려진 가로등이나 광고 포스터가 겹겹이 붙은 판넬처럼 도시의 잔여물들이 전시장 안에서 새로운 구조로 재배치된다. 기존 도시 구조를 해체해 다른 맥락에서 재조립된 이 설치들은 우리를 둘러싼 도시 환경을 다시 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다. 우리는 왜 어떤 것은 보고, 어떤 것은 보지 않는지, 그리고 도시는 왜 특정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질문하게 한다.
Left: Klara Lidén, Untitled (Poster Painting), 2026. Courtesy the artist, Galerie Neu, Berlin, Sadie Coles HQ, London and Reena Spaulings Fine Art, New York. Right: Klara Lidén, SPUR1, 2026.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Klara Lidén – Kunstwerke at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2026. Photo: Frank Sperling.
“사유화된 도시 공간을 재해석하는 질문은 항상 신체에서 시작된다”고 언급했듯이 리덴은 또한 여러 퍼포먼스 개입을 통해 자신의 신체를 도시 건축이나 사물 등 주변 세계와 직접 대화하게 만든다. 이는 비디오로 기록되는데, 그 속에서 그는 걷거나 뛰고 매달리고 넘어지며 도시 공간을 가로지른다. 정교하게 연출된 안무라기보다 일상의 동선을 미세하게 어긋나게 하는 행위에 가깝다. 그 결과 관객으로 하여금 공공 공간의 질서와 그곳에서 기대되는 규칙을 재고하게 한다.
예컨대 뉴욕 금융지구를 배경으로 한 2018년 영상 <Grounding(접지)>에서 리덴은 거리를 걷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넘어지고, 곧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일어난다. 반복되는 낙상은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지만 웃음보다는 불편함을 남긴다. 반듯한 보행로와 유리 외벽 건물 사이에서 몸이 무너지는 순간, 도시가 요구하는 매끄러운 움직임의 규칙이 드러난다.
Klara Lidén, Grounding, video still, 2018. Courtesy the artist, Galerie Neu, Berlin, Sadie Coles HQ, London and Reena Spaulings Fine Art, New York. Installation view of the exhibition Klara Lidén – Kunstwerke at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Berlin 2026. Photo: Frank Sperling.
리덴은 스스로를 “건축을 다루는 가난한 건축가이자 리듬을 건축에 되돌리고 싶은 아마추어 무용수”라 소개한다. 실제로 퍼포먼스를 기록한 비디오 작업에서 도시 구조와 신체 움직임은 일종의 안무 관계를 형성한다. 거리 난간과 철로, 광고판과 공사장 구조물은 몸이 기대고 매달리고 미끄러지는 표면이 된다. 건축은 단단한 구조물이 아니라 몸이 반응하는 리듬의 장치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이번 전시는 묘한 아쉬움을 남긴다. 리덴의 초기 작업이 지녔던 역동적 에너지와 즉흥성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2026년의 전시장에서 다시 제시될 때 다소 익숙한 제스처처럼 보이기도 한다. 도시 인프라를 전시장으로 옮기거나 신체로 공간의 규칙을 교란하는 전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아, 때로는 낡은 미술 문법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들이 완전히 힘을 잃은 것은 아니다. 리덴의 비디오에서 반복되는 낙상이나 무의미한 동작은 거대한 도시 구조 속에서 개인의 몸이 할 수 있는 일이 결국 잠시의 교란이나 작은 오류를 만들어내는 것뿐임을 드러낸다. 이는 동시대에서 예술의 무력함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어쩌면 이 전시는 과거의 급진성을 재현하기보다 오늘의 도시 환경에서 예술가가 처한 조건을 조용히 드러내는 것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모인 도시는 여전히 거대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개인의 신체는 그 안에서 제한된 방식으로만 움직인다. 리덴의 작업은 그 구조를 뒤집기보다 잠시 삐끗하게 만든다. 쉬이 지나치는 도시 속 사물을 전시장에서 마주하거나 누군가가 지하철 좌석 위를 넘어 다니고 거리 한복판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익숙한 도시 공간을 다시 인식한다. 그 짧은 균열 속에서 우리가 속한 공간과의 관계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