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를 마치고 나면 가끔 내가 쓴 책에 사인을 부탁하시는 독자분들이 있다. 무거운 책을 들고 오신 게 감사해서 기쁜 마음으로 사인을 해드리지만, 그 책이 네다섯 권을 넘어서면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글자가 잘 써지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 다이어리며 취재 수첩을 늘 쓰던 기억,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리포트 서너 장을 척척 써 내려가던 대학 시절도 분명 있었는데, 어쩌다 내 손가락은 몇 글자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수준으로 퇴화했나 모르겠다. 이러다 몇 세대가 지나고 나면 손글씨 자체가 희귀한 재능으로 평가받게 되지나 않을지.

리포트며 노트 필기 등도 있지만 손글씨의 ‘꽃’은 역시 편지, 그중에서도 사랑의 마음을 담은 연애편지 아닐까? 눈앞에 있는 상대에게 차마 하지 못 하는 말을 편지지에 꼭꼭 써 내려간 기억이 있다면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 편지를 받은 상대가 내 마음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거절했는지는 사실 큰 문제가 아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어떻게든 전달하고 싶은 열망을 안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시절은 찬란한 빛깔의 추억으로 간직되기 마련이다.

떨림과 설렘을 담은 채 상대의 손에서 바스락거리며 펼쳐질 종이, ‘편지’는 예술의 세계에서도 인기 있는 주제였다. 특히 17세기 네덜란드의 풍속화에서 우리는 남녀 사이의 연정이 편지로 오가는 장면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알프스 이북의 유일한 공화국이었고, 유럽 물동량의 3/4을 책임지는 항구였다. 무역을 통해 부유해진 시민 계급이 이 나라를 이끌어갔다. 군주나 강력한 교회가 없는 상황에서 네덜란드 화가들은 시민 계급이 좋아할 만한 그림을 그렸다. 바니타스 정물화, 식탁 정물화, 집단 초상화 등 독특한 그림들이 그려지던 이 시기에 풍속화라는 장르도 인기를 끌었다. 풍속화는 연인의 사랑, 부지런한 주부, 사치와 방탕을 경계하기 위해 그려진 술집 등 400여 년 전 네덜란드 시민 사회의 가치관을 들여다볼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다.

연애는 이 풍속화 전문 화가들이 선호했던 주제 중 하나였지만, 17세기 네덜란드 사회가 믿었던 칼뱅파가 문제였다. 연애 중인 남녀를 그리는 것은 개신교 교파 중에서 가장 엄격했던 칼뱅파의 가치관으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결혼 기념 초상도 신랑 신부를 각기 다른 화폭에 그릴 정도였다. 이런 제약이 거꾸로 화가들의 상상력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많은 풍속화들이 그림으로 직접 보여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간접적인 방식으로 들려준다.

하브리엘 메추(1629~1667)가 그린 ‘편지 쓰는 남자’와 ‘편지 읽는 여자’는 두 장의 그림이 하나로 묶인 작품이다. ‘편지 쓰는 남자’부터 보자. 햇살 환한 방에서 잘생긴 젊은이가 편지를 써 내려가고 있다. 수입품으로 보이는 탁자 위 카펫, 은제 잉크병, 금빛 세공이 돋보이는 그림의 액자 등으로 보아 젊은이는 여유로운 집안의 자제인 듯싶다. 이어지는 그림인 ‘편지 읽는 여자’에서는 아가씨가 막 편지를 펼쳐보는 참이다. 담비 털을 덧댄 노란 상의와 금실로 수가 놓인 오렌지빛 스커트를 보면 아가씨 역시 넉넉한 집안의 규수로 보인다. 아가씨는 무릎 위 방석에 바느질감을 놓고 편지가 더 잘 보이도록 왼편 창 쪽으로 편지지를 기울이고 있다.
편지 쓰는 남자. 하브리엘 메추, 1665년, 패널에 유채, 52.5 x 40.2 c m,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편지 쓰는 남자. 하브리엘 메추, 1665년, 패널에 유채, 52.5 x 40.2 c m,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편지 읽는 여자. 하브리엘 메추, 1665년, 패널에 유채, 52.5 x 40.2 c m,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편지 읽는 여자. 하브리엘 메추, 1665년, 패널에 유채, 52.5 x 40.2 c m, 아일랜드 국립미술관, 더블린.
앞서 말한 것처럼 풍속화의 재미있는 점은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보는 데에 있다. 편지를 쓰는 젊은이의 얼굴은 차분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연인에 대한 정열이 한창 끓어오르는 중이다. 젊은이 등 뒤편, 벽에 걸린 ‘그림 속 그림’에 힌트가 숨어있다. 그림의 주제는 염소떼이고, 화려한 금색 액자는 비둘기 모양으로 세공되어 있다. 염소와 비둘기는 모두 번식력이 왕성한 동물들이다. 젊은이의 마음속에서 들끓는 정념의 불꽃을 화가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가씨는 어떨까? 순진한 표정으로 보아 이 아가씨는 세상 물정을 영 모르는 규중처녀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가씨 옆에 선 하녀가 특이한 행동을 하고 있다. 손에 봉투를 든 걸로 보아 하녀는 젊은이와 아가씨 사이 사랑의 전령인 듯하다. 그녀는 그림 위에 쳐진 녹색 커튼을 걷고 있다. 이 당시 네덜란드 시민들은 그림을 되팔 경우를 대비해서 비싼 그림 위에는 커튼을 쳤다. 커튼 뒤 그림의 주제는 폭풍우 치는 바다, 즉 ‘고난’이다. 하녀는 아가씨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 그 남자와 만나면 아가씨에게 닥칠 건 고난뿐이라고. 순진한 아가씨는 하녀의 충고를 알아차릴 수 있을까?

‘우유를 따르는 하녀’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1632~1675)가 그린 ‘연애편지’도 엇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처녀는 악기를 연주하다 하녀가 건넨 편지를 막 받아들었다. 하녀를 올려다보는 아가씨의 눈동자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서려 있다. 혹시 나를 거절하는 편지면 어쩌지? 하녀의 선선한 표정으로 보면, 아가씨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하녀의 머리 뒤에 걸린 그림은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를 담고 있다. 메추의 그림 속 그림과는 달리, 페르메이르의 그림 속 그림은 연애의 결말이 해피엔딩임을 암시한다.

이 그림에서 또 하나 재미있는 장치는 우리가 열린 방문을 통해 방 안의 두 여성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극적인 느낌을 강화하기 위해 페르메이르는 그림의 전면에 두툼한 커튼을 쳤다. 커튼이 걷히면 문 너머 작은 무대에서 ‘연애편지’라는 짧은 극이 시작되는 셈이다. 이런 방식으로 화가는 400여년 전, 네덜란드 여염집의 일상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그 시절에도 연인들은 편지로 그리움과 추억의 집을 쌓아 올리고 있었다.
연애편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669-70년, 캔버스에 유채, 44.0 x 38.5 c m, 레이크스뮤지엄, 암스테르담.
연애편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1669-70년, 캔버스에 유채, 44.0 x 38.5 c m, 레이크스뮤지엄, 암스테르담.
슬픈 엔딩으로 끝난 타티아나의 편지

모든 연애편지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페라 ‘오네긴’에서 타티아나는 오네긴에게, 오네긴은 타티아나에게 각각 연애편지를 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편지는 모두 거절당한다. 소위 ‘타이밍’이 맞지 않았던 게 문제였다. 타티아나의 열정 가득한 편지를 받았을 때 오네긴은 매사를 삐딱하게 보는 건방진 젊은이였다. 오네긴은 뒤늦게 타티아나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만, 타티아나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후였다.

‘예브게니 오네긴’은 러시아 작곡가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의 인생을 담아낸 자전적 오페라이다. 교향곡, 협주곡, 발레 음악, 성악, 독주곡 등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서 걸작을 남긴 차이콥스키지만 오페라에서는 ‘타율’이 그리 좋지 않았다. 차이콥스키가 남긴 열한 편의 오페라 중에서 현재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오네긴’과 ‘스페이드의 여왕’뿐이다. 차이콥스키는 천부적인 멜로디 작곡 능력에 더해 서정성과 드라마를 조화시키는 데에 능했다. 극음악인 오페라는 발레 못지않게 그에게 어울리는 장르였다. 다만 차이콥스키가 ‘오를레앙의 처녀’나 ‘마제파’처럼 장대한 영웅의 생애를 다룬 대본을 선택한 것이 문제였다. 차이콥스키는 영웅보다는 예민한 영혼이 겪는 갈등과 좌절을 그리는 데에 맞는 작곡가였다. ‘오네긴’은 그런 의미에서 차이콥스키에게 적절한 작품이었다.

시골에 사는 타티아나는 책 읽기를 좋아하는 얌전한 처녀다. 동생 올가의 약혼자 렌스키가 타티아나의 집으로 친구 오네긴을 데리고 온다. 오네긴에게 한눈에 반한 타티아나는 격정적인 충동에 휩싸여 마음을 고백하는 편지를 쓴다. 하지만 오네긴은 냉담하게 타티아나를 거절한다. 한편, 무도회에서 올가를 유혹하는 오네긴을 보고 렌스키는 이성을 잃는다. 렌스키는 오네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이 결투의 결과로 렌스키는 목숨을 잃는다. 친구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쫓긴 오네긴은 러시아를 떠나게 된다.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오네긴은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다. 그레민 공작의 저택에서 열린 무도회에 참석한 오네긴은 몰라보게 아름다워진 타티아나와 대면한다. 타티아나는 그사이 그레민 공작과 결혼해 공작부인이 되어 있다. 오네긴은 비로소 타티아나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녀에게 고백의 내용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지만, 타티아나는 그의 구애를 거절한다.

타티아나의 편지의 아리아, 결투를 앞둔 렌스키가 절망적으로 부르는 ‘젊은 날들은 어디로 갔는가’ 3막에서 그레민 대공이 부르는 아리아 등 차이콥스키 특유의 감상적인 아리아와 선율들이 넘치는 이 오페라는 차이콥스키의 실제 상황과 여러 부분에서 오버랩된다. ‘오네긴’을 작곡할 즈음, 차이콥스키는 모스크바 음악원 제자인 안토니나 밀류코바의 열렬한 구애 편지를 받고 있었다. 자신을 받아주지 않으면 죽어버리겠다는 편지 내용에 놀란 작곡가는 안토니나와 떠밀리듯 결혼했다. 그러나 동성애자였던 차이콥스키에게 결혼은 악몽이었다. 차이콥스키는 석 달 만에 집을 뛰쳐나와 네바 강에 몸을 던졌다. 요행 목숨은 구했지만 결혼은 그대로 끝나고 말았다. 극 중의 오네긴과는 달리 차이콥스키는 밀류코바의 편지를 거절하지 못한다. 우유부단하고 심약했던 작곡가의 성정이 인생 자체를 위기에 몰아넣은 셈이다.

[‘오네긴’ 중 편지의 아리아 (안나 넵트렙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차이콥스키는 푸슈킨의 운문 소설을 참고해가며 3막으로 이루어진 ‘오네긴’의 리브레토를 직접 썼다. 주요 인물들 중 타티아나와 렌스키는 소심하고 예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격정적인 성격이다. 이 두 인물을 합친 모습이 차이콥스키와 가장 가까울 듯싶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갈 점, 오페라 영상에서 알 수 있듯이 타티아나는 고백의 편지를 잠 못 이루는 밤에 충동적으로 쓴다. 밤에 쓴 글은 편지든 메일이든 문자든 간에 절대 보내지 말도록 하자. 눈 딱 감고 보냈다면, 그 다음날 아침 분명히 땅을 치며 후회할 테니 말이다.

전원경 예술 전문 작가•세종사이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