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 내 사랑’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다이 마이 러브>는 제목이 담고 있는 패륜(?)적인 의미 때문에 단번에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게 영어 원제를 소리 나는 대로 발음하게끔 표기되어 있다. 아르헨티나 작가 아리아나 하르비츠의 소설 <Die, My Love>를 원작으로 하는 <다이 마이 러브>는 파격적인 제목만큼 극 중 그레이스(제니퍼 로렌스)의 행동 또한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파괴적이다.
이유가 있다. 산후 우울증을 겪어서다. 아기를 낳기 전까지 그레이스는 자기표현에 능했다. 글 쓰는 작가로 활동했고 남편 잭슨(로버트 패틴슨)을 향한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축복이 되어야 할 출산이 저주가 되었다. 아기가 족쇄가 된 건지, 주변 환경이 변한 건지, 아니면 자기가 문제인 건지 잘 모르겠는데 어쨌든, 모든 게 예전 같지 않았다. 다정한 남편은 그대로인데 육체관계가 전만큼 뜨겁지 않다. 글도 써보려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다이 마이 러브>에서 그레이스는 전혀 글을 쓰지 않는다. 심지어 필기구를 손에 쥐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지도 않는다. 남편을 두고 자위를 하거나 주변 인물들 앞에서 자학하거나, 도대체 왜 그러나 싶다. 작가라면 혼란한 상황을 글로 쓰면 될 텐데 그러지 못하는 걸 보면 지금의 자기를 표현할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해서다. 그것이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자위나 자학은 답답한 심정을 최후의 수단으로 드러내는 몸부림에 가깝다.
그럼에도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은, ‘산후 우울증은 나도 겪어봐서 아는데’로 운을 떼는 친구가, 이웃이 걱정하는 척한다는 위로가, ‘곧 나아질 테니 기다려 봐’와 같은 하나 마나 한 소리로 답답한 마음에 더 불을 지펴서다.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반려견처럼 네발로 기며 관심을 끌어도 잭슨은 그레이스의 뜻밖의 행동에 이해 불가한 표정으로 일관한다. 시어머니만이 그레이스가 왜 그러는 줄 알면서도 해결책이 없어 전전긍긍할 뿐이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다이 마이 러브>의 린 램지 감독은 유무형의 폭력을 유발하는 환경을 탐구해 왔다. 대표적으로 <케빈에 대하여>(2011)는 청소년 총기 사건과 관련해 미국의 무엇이 이들을 폭력으로 내모는지 모성의 시점에서 풀어냈다.
<다이 마이 러브>의 첫 장면은 인상적이다. 집 내부에 카메라를 고정해 두고 앞으로 이 공간에서 지내게 될 잭슨과 그레이스가 기대와 희망을 품고 안으로 들어와 이곳저곳을 살피며 몸을 섞는 광경에 시간을 할애한다.
아무 정보 없이 첫 장면만 보면 뜨거운 로맨스를 예상할 텐데 그 기대를 깨듯이 영화는 이 집이 잭슨의 작은아버지 소유였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잭슨에게 넘겨졌다는 정보를 강조하지 않고 넌지시 암시한다. 죽음이 아무렇지 않은 듯 내재한 구조, 그와 같은 폭력의 환경이 단기간이 아니라 대를 이어 지속한다는 비극의 역사는 집이 미끼가 되고, 카메라가 창살이 되어 그레이스를 스크린 안에 가둬 실험실 쥐의 신세로 만들어 버린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 상황에서 관객은 잭슨의 위치라고 할까, 객석과 스크린 사이의 거리감을 알리바이 삼아 그레이스에 감정 이입하지 못하고 도대체 왜 자기를 극한 조건으로 내모는지 방관하는 자리에서 안타까워할 뿐 개입하지 못한다.
그레이스의 산후 우울증은 ‘함께’ 대처해 극복해야 할 조건이 아니라 ‘혼자’ 감내해야 할 의무 같은 것이 된다. 옆에 사랑하는 남편이, 걱정하는 시어머니가 있다고 해도 ‘죽어라, 내 사랑’이라며 그냥 사지로 내모는 결과와 다름없다.
해결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레이스와 같은 이들이 겪고 있는 말 못 할, 주변에 호소할 마땅한 언어를 찾지 못해 자기를 파괴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례를 반복해서 문제 제기하는 수밖에 없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린 램지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다이 마이 러브>는 자극적인 장면이 이어지는 청불 등급의 영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린 램지가 이 영화의 제작에 관심을 보인 제니퍼 로렌스의 부름에 응답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은 그레이스가 불길에 휩싸인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장면이다. 그게 엔딩이다. 영화로는 끝이지만, 현실에서는 그레이스와 같은 경우를 만들면 안 된다. <다이 마이 러브>의 끝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화재로 재가 된 땅 위에 싹을 틔워 새로운 터전을 만들어야 하듯 린 램지는 산후 우울증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여성의 피해를 막고자 하는 바람을 행간에 드러낸다. ‘다이’를 떼어내고 ‘마이 러브’만이 존재하는 제목의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