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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지구의 미아 쿠르드족

쿠르드족 출신으로 십자군전쟁 당시 이슬람 세계의 영웅이던 살라딘(살라웃딘 유수프 이븐 아유브)은 자신을 ‘승리자 왕’(알말리크 안 나시르)이라고 불렀다. 살라딘뿐 아니라 쿠르드족 출신 중에는 전장의 승리를 좇는 용맹한 전사가 많았다. ‘쿠르드’라는 이름부터 고대 아카드어에서 ‘전사’ ‘영웅’을 뜻하고, 바빌로니아어에서 ‘용맹한’ ‘호전적인’을 의미하는 ‘카르두’에서 나왔다는 설도 있다.

쿠르드족은 ‘국가가 없는 세계 최대 인종 집단’으로 불린다. 아르메니아와 이라크, 이란, 시리아, 튀르키예 국경의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3000만~4000만 명이 거주한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오스만튀르크제국이 붕괴하고 서구 열강 세력이 분할되는 혼란 속에서 민족국가 수립 기회를 놓쳤다.

중동과 근동, 중앙아시아에 걸친 ‘쿠르디스탄’(쿠르드족의 땅)에 자리 잡은 권위주의 정부들은 문화와 언어가 이질적인 소수민족 쿠르드족을 잔혹하게 탄압했다. 강제 이주나 학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튀르키예에선 1984년 이후 각종 분쟁으로 4만 명이 넘는 쿠르드족이 죽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화학무기 사용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페슈메르가로 불리는 자생 민병대에 의존하던 쿠르드족은 “험준한 산 이외에는 믿을 친구가 없다”고 되뇔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이란과의 지상전 개시를 염두에 두고 이라크 내 쿠르드족 전투부대를 참전시키는 방안이 급속하게 가시화하고 있다. ‘수천 명의 쿠르드족이 이란 국경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온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쿠르드족의 이란 진입을 전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대규모 인명 피해 우려 탓에 지상군 투입을 주저하는 미국이 남의 힘을 빌려 적을 제거하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이 주를 이룬다.

과거 이라크 내 이슬람국가(IS) 소탕에 쿠르드족의 도움을 받은 미국은 또다시 살라딘의 후예에게 손을 벌렸다. ‘용맹한’ 쿠르드족이 크고 작은 ‘남의 전쟁’에 빠짐없이 휘말리는 모습은 씁쓸하다.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떠올려 본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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