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손등 키스, 만찬 BGM으로…K팝이 만든 외교 명장면 [이슈+]
국빈 방문 행사·정상 만찬 무대에 등장
K팝, 문화 외교의 새로운 언어
K팝, 문화 외교의 새로운 언어
필리핀을 국빈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의 일정에서도 K팝은 주요 문화 코드로 등장했다. 김혜경 여사는 지난 4일 현지에서 열린 K팝 커버댄스 경연 행사 '모두의 K팝 축제'를 찾아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필리핀 마닐라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열린 행사에는 현지 학생과 K팝 팬들이 몰려 1000석 규모 공연장이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K팝 안무를 선보이며 실력을 겨뤘다. 우승팀에게만 한국 왕복 항공권과 원밀리언 스튜디오 교습권이 주어질 예정이었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는 이날 행사에 참여한 팀 전원에게 한국행 항공권을 즉석으로 선물했다. 김 여사는 "어떻게 딱 한 팀에게만 한국에 갈 기회를 줄 수 있을까"라며 김명진 주필리핀 한국문화원장에게 "원장님, 모두 한국에 갈 기회 주시는 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에 참가팀은 다 함께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
김 여사는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바로 이 필리핀이라는 자료를 봤는데, 현장의 열기를 느껴보니 그 말이 정말 맞는 말 같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오늘 오신 분 중에는 한국어를 외국어로 배우시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이 한국어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저로서는 참 뿌듯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안귀령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번 일정은 양국 수교 77주년을 기념해 필리핀 내 K팝 문화를 이끌어온 현지 청년들을 격려하고, K팝을 매개로 양국 간 상호 이해와 문화 교류의 가치를 더욱 확장하기 위해 마련됐다"며 "에릭 제루도 필리핀 문화예술위원장이 참석해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의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외교 행사에서 K팝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은 이제 낯설지 않다. 지난달 방한한 브라질 대통령의 국빈 방한 환영 만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청와대에서 열린 만찬에는 걸그룹 블랙스완의 브라질 출신 멤버 가비가 초청됐다. 행사장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가비와 인사를 나누며 손등에 키스를 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이 장면이 담긴 영상은 브라질 대통령 공식 인스타그램에 게시돼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영상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도 담겼다.
룰라 대통령은 이후 블랙스완의 곡 'Cat & Mouse'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영상도 게시했다.
가비가 국빈 만찬에 초청된 배경에는 브라질 영부인의 K팝에 대한 관심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부인은 방한 전부터 한국 대중음악에 큰 관심을 보여왔고, 브라질 출신 K팝 아이돌인 가비와 서울 강남에서 식사를 하며 교류하기도 했다.
APEC 홍보대사로 활동한 지드래곤이 정상 만찬 공연을 맡아 21개 회원국 정상과 고위 관계자들 앞에서 공연을 펼쳤다. 지드래곤은 패션과 예술, 음악을 넘나드는 문화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APEC 홍보 영상에도 출연해 화제를 모았고, 해당 영상은 조회수 1700만회를 넘겼다.
K팝이 외교 무대에서 활용되는 배경에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확산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보고서에 따르면 K팝과 드라마 등 한국 콘텐츠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과거에는 한 지역의 문화가 다른 나라로 전해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디지털 플랫폼 시대에는 콘텐츠가 동시에 세계로 확산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이다.
또 이런 확산은 정부나 기업의 일방적 홍보가 아니라 해외 팬들이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이뤄진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K팝을 중심으로 콘텐츠 산업 전반이 연결되는 흐름도 나타난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K팝 음악과 애니메이션, 캐릭터 IP를 결합한 콘텐츠로 글로벌 흥행을 기록했다. 이 작품은 음악·애니메이션·캐릭터 상품·게임 등 다양한 산업이 하나의 콘텐츠 세계관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사례로 평가된다.
정상외교 무대에서 울려 퍼진 BTS 음악, 국빈 만찬에서 등장한 블랙스완 가비,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으로 확장되는 콘텐츠 IP까지. K팝은 이제 음악 산업을 넘어 한국 문화와 산업을 연결하는 글로벌 콘텐츠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