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속
저물어가는 세계를 품위로 지킨 구스타브,
그리고 그를 기억하는 제로
2022년 12월 31일. 남산의 힐튼 호텔은 결국 문을 닫았다.
<힐튼서울 자서전>의 아트리움. /사진=임정의, 피크닉 제공
대칭을 이루는 아름다운 계단과 고풍스러운 브론즈 기둥.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천창에서 떨어지는 우아한 빛이 방문객을 조용히 감싼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의 제자인 건축가 '김종성'이 설계한 호텔이다. 그는 스승의 건축사무실에서 12년을 함께 일하며 배운 것들을 서울의 땅 위에 새겨 넣었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내고, 오직 비례와 빛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 힐튼 호텔은 그의 대표작이다.
그러나 이 호텔은 사라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충분한 매출을 내지 못하는 지금의 호텔을 유지하느니, 허물고 더 크게 다시 짓는 편이 훨씬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1983년 당시 허용 용적률은 600%였고, 힐튼 호텔은 이를 다 채우지 않고 350%로 지어졌다. 그리고 현재의 허용 용적률은 800%이다. 현재의 힐튼 호텔보다 2배 이상 크게 지을 수 있는, 이른바 사업성이 있는 것이다. *용적률은 건물을 지을 '대지 면적'에 대한 '지상층 면적 합계'의 비율이다.)
우리가 힐튼 호텔을 기억하는 이유가 천창의 빛이나 아름다운 계단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공간만이 가진 고요함과 품위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조금씩 사라져가는 힐튼 호텔을 바라보며, 웨스 앤더슨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떠올렸다. 이 영화 역시, 한 호텔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자신의 작품(일리노이 공과대학 크라운홀) 앞에 선 미스 반 데어 로에와 동대학에서 수학한 김종성 건축가. / 사진. 필자 제공
영화는 네 겹의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 ①소녀가 묘지에서 ②작가를 추모하고, 그 작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 방문한 한 호텔의 ③노인(제로)을 추억하고, 그 노인은 ④구스타브와의 일화를 회고하며 그리움을 드러낸다. 소녀에서 작가로, 작가에서 제로로, 제로에서 구스타브로 기억이 기억을 이끌어내는 구조다. 이 구조로 영화는 첫 장면부터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이야기임을 선언한다.
산 위에 당당히 선 분홍빛 호텔. 누구나 한 번쯤 묵고 싶은 그곳,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다. 그러나 곧바로 36년 뒤의 모습으로 장면이 전환된다. 이제는 몇몇 단골만 방문할 뿐인 쇠락한 호텔을 방문한 작가는, 손님 하나 없는 로비에 홀로 앉은 노인 제로에게 말을 건다. 제로는 젊은 작가의 관심이 반가웠는지 오래된 이야기를 시작한다.
로비로 들어서면 공간은 더욱 풍성해진다. 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수많은 직원이 손님을 맞이하고, 황금빛 조명 아래 우아한 장식이 벽면을 채우며, 붉은 카펫이 자연스레 동선을 이끈다. 이 호텔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은 컨시어지 구스타브다. 신입 로비 보이인 '제로'가 그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호텔의 이것저것을 배워나간다. 호텔 전체는 구스타브의 손짓 아래에 하나의 시스템처럼 정밀하고 우아하게 작동한다.
구스타브는 기품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동시에 확실히 좀 괴짜이기도 했다. 그는 호텔을 찾는 돈 많고 나이도 많은, 외로운 여성 손님들과 늘 선을 넘는 관계를 이어왔다. 수많은 내연녀 중 한 명의 부고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곧장 그녀의 저택으로 달려간다.
시신 앞에서도 손톱과 피부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그녀의 죽음에 대한 누명을 쓰고 수감된 감옥에서 탈출 지도를 건네받은 순간에도, 지도에 그려진 그림의 아름다움에 먼저 감탄한다. 도망치는 와중에도 향수를 챙긴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를 품위 있게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레 전쟁이 시작된다. 분홍빛의 화사한 호텔은 회색 군복을 입은 군인들로 채워졌다. 새로운 세계가 구스타브의 세계를 부수기 시작한 것이다. 기존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군인들에게 구스타브의 품위 있는 이야기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열차에서 군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구스타브가 살아생전 약속한 대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포함해 그의 모든 재산은 제로에게 돌아갔다. 이제는 그가 호텔을 이어가게 되었다.
제로는 구스타브와 같은 사명을 공유한 사람이었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그 사명의 결정체였다. 제로는 호텔의 품위를 놓지 않으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 그러나 호텔은 시대를 이겨내지 못했다. 아치형 창문들과 아름다웠던 파란 지붕은 무심히 잘려 나갔고, 로비의 황금빛 조명은 어떤 온기도 없는 창백한 형광등으로 교체되었다. 기품을 드러내는 양식은 사라지고 최소한의 기능만 남았다.
그러면서도 제로는 상속받은 모든 재산 중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하나만큼은 끝까지 손에 쥐고 있었다. 전후에 들어선 새로운 권력이 부유층의 재산을 하나씩 강탈해가는 와중에도, 다른 모든 재산을 헌납하며 적자투성이의 낡은 호텔만은 끝까지 지켜냈다.
장면은 다시 작가와 제로의 대화로 돌아온다. 제로는 작가에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자신의 작고 초라한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내 생각엔, 구스타브의 세상은 그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사라졌네. 그가 멋진 품위로 그 환상을 분명히 지켜내고 있었던 거지."
④구스타브는 이미 저물어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품위를 끝까지 지키려 했고 제로도 그 신념을 이어갔다. ③제로를 통해 구스타브의 이야기를 들은 ②작가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소설로 만들어 출간했다. 수십 년이 지나 한 ①소녀가 그 소설을 추억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영화는 처음과 반대의 순서로 마무리된다.
영화와 현실의 인물 매칭. / 필자 제공
사실 나는 힐튼 호텔에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이 호텔을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영화 속 작가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에서의 작가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전성기를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제로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그 호텔의 기억을 남겼다. 아마 나의 마음도 그와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의 건축가지만, 그가 남긴 원칙들은 여전히 유효하고 기품있다. 건축가 김종성은 그의 제자이다. 스승의 건축을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방식으로 서울에 힐튼 호텔을 지었다. 그러나 결국 그 건물은 사라졌다. 구스타브와 제로의 이야기를 남긴 작가처럼 나도 힐튼 호텔을 이 글로 전한다.
첫 장편소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전 세계 100만 독자를 사로잡은 황보름 작가가 또 한 번 한국 출판계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두 번째 장편소설 <윗집 부부>가 책이 나오기도 전에 전 세계 15개국에 판권 선판매를 확정하며, 총 선인세 5억 원 이상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켰다.출판사 클레이하우스에 따르면 오는 24일 정식 출간되는 <윗집 부부>는 현재 스페인, 영국, 미국, 브라질, 일본 등 대륙과 언어권을 넘나들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총 선인세 규모 5억 원은 한국에서 출간되기 전 원고 상태로 이뤄진 계약으로는 역대 최대 수준으로 평가된다.해외 판권 수출을 담당한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는 “수십 년간 출판업계에 몸담았지만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며 “보통은 국내 출간 이후 반응을 확인한 뒤 해외 수출이 이뤄지는데, 이번 작품은 출간 전부터 세계 각국 출판사들이 앞다퉈 계약 의사를 밝힌 매우 이례적인 사례”라고 말했다.이번 성과의 배경에는 황 작가의 전작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의 글로벌 흥행이 자리하고 있다. 2022년 출간된 이 작품은 현재까지 전 세계 50개국에 번역 출간됐으며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다. 영문판은 30만 부 이상 판매됐고, 브라질과 튀르키예 판본은 각각 15만 부 이상 팔렸다. 일본과 스페인에서도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또 일본 서점대상 번역소설 부문 1위, 굿리즈 초이스 어워드 소설 부문 3위, 더블린 문학상 롱리스트 선정 등 해외 문학상에서도 주목받았다.신작 <윗집 부부>는 그동안 한국 문학이 해외 시장을 공략해 온 이른바 ‘힐링 소설’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했다는 점에
코오롱스포츠는 오는 10월 국내 첫 백패킹 장거리 숲길인 '동서트레일'을 걷는 '코오롱 트레일 캠프-동서트레일' 참가자를 모집한다고 22일 밝혔다.이번 행사는 산림청이 조성 중인 동서트레일과 연계한 첫 민간 행사다. 코오롱스포츠가 주최·주관하고 산림청과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가 후원한다. 코오롱스포츠는 이번 행사를 통해 국내 장거리 하이킹 문화를 알리고 참여 기반을 넓힌다는 계획이다.동서트레일은 충남 태안부터 경북 울진까지 한반도를 동서로 잇는 약 849km 규모의 장거리 백패킹 트레일이다. 전체 55개 구간으로 구성되며, 5개 시·도와 21개 시·군·구를 연결한다. 현재 17개 구간, 244km가 시범 운영 중이다. 전 구간 개통 목표 시점은 2027년 10월이다.코오롱스포츠는 지난해 10월 산림청,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와 동서트레일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후 민간 협력과 트레일 문화 확산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참가 신청은 코오롱스포츠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진행된다. 1차 얼리버드 접수는 오는 24일 오후 2시부터 선착순으로 받는다. 2차 정규 접수는 7월 말 예정이다.이번 행사의 특징은 참가자가 여정을 직접 설계하는 자율형 트레일 방식이다. 출발지와 코스, 동행 인원, 일정, 속도, 숙영지를 참가자가 스스로 정한다. 다만 모든 참가자는 10월 10일 오후 3시부터 5시 사이 최종 목적지인 경북 봉화군 사과밭에 도착해야 한다.코오롱스포츠는 참가자 선택을 돕기 위해 세 가지 제안 코스를 마련했다. 울진 55구간에서 봉화 47구간까지 동해와 백두대간을 가로지르는 120km 코스, 단양 43구간에서 봉화 47구간까지 소백산 자락과 마을길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서도 한 번쯤 마주쳤을 신발이 있다. 번화가를 5분만 걸어도 신은 사람 여럿을 볼 수 있는, 이제는 유행을 넘어 클래식이 된 운동화. 바로 나이키 에어포스 1이다. 이 신발은 누군가에게는 첫 나이키였고, 누군가에게는 신발장에 하나쯤 넣어두는 가장 만만한 선택지였다.1982년에 태어나 40살을 훌쩍 넘긴, 이제는 중년이 된 에어포스 1은 원래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운명의 신발이 아니었다. 지금에서야 나이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신발 중 하나로 불리지만, 한때는 본사에서 직접 생산을 중단했던 모델이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이 신발을 부활시킨 것이 나이키 본사의 사람들이 아니라 미국 볼티모어의 동네 신발 가게들이었고, 그 위에 왕관을 씌운 것이 뉴욕 할렘의 거리였다는 점이다. 출시 2년 만에 버려진 신발미국 대통령 전용기에서 이름을 딴 이 신발은 브루스 킬고어가 디자인한 농구화로, 나이키 역사상 처음으로 농구화에 에어 기술을 넣은 혁신적인 모델이었다. 요즘처럼 혁신적인 기술의 쿠셔닝이 더해진 신발이 넘쳐나는 시대가 아니었기에, 발바닥에 공기가 들어간 농구화라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히 미래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는 신발이었다.당시 나이키는 모지스 말론, 마이클 쿠퍼 등 NBA 선수들을 앞세워 에어포스 1을 알렸다. 광고 속 선수들은 우주 비행사나 파일럿처럼 연출됐고, 에어포스 1은 단순한 운동화가 아니라 새로운 시대의 장비처럼 보였다. 반응은 좋았다.그런데 1984년, 나이키는 출시 2년 된 에어포스 1의 생산을 멈춘다. 당시 스포츠 브랜드들은 과거 모델을 계속 판매하거나 예전 컬러를 복각하는 요즘 같은 방식 자체를 쉽게 상상하지 못했다. 새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