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원·하청 노조 단일화 필요 없어"…양대 노총 입김 더 세진다
15년 만에 대변혁 맞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무제한 쪼개기 교섭' 우려
법조계 "노조법 1대1 원칙 무력화
위헌 시비 제기될 가능성 크다"
원청 노조도 쪼개질 판
'무제한 쪼개기 교섭' 우려
법조계 "노조법 1대1 원칙 무력화
위헌 시비 제기될 가능성 크다"
원청 노조도 쪼개질 판
◇노동계 힘 실은 정부
정부는 이번 매뉴얼에서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 간 교섭 단위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교섭창구 단일화 자체가 필요 없다고 봤다. 같은 원청 기업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는데도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 단위가 ‘다르다’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1사 1교섭체계인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를 중심으로 한 노사 협상 틀이 15년 만에 깨진 셈이다.
하청 노조끼리의 교섭 단위 분리도 자유로워졌다. 정부는 지난 24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시행령에서 ‘하청 간 교섭 단위’ 분리 요건으로 이익대표 적절성, 노동조합 간 갈등을 제시했다. 하청 노조가 “(다른 노조와) 상급 단체가 다르거나 갈등이 있어서 단일 대오 형성에 부적절하다”는 주장만 해도 독자적 교섭권을 확보할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법조계에선 이런 정부의 해석 방침이 노조법에 명시된 교섭창구 단일화 원칙을 무력화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주열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현행법은 근로조건 차이나 교섭 관행 등을 분리 요건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시행령이 법에도 없는 ‘노조 간 갈등’ 등을 교섭단위 요건으로 내세운 것은 의문스럽다”고 지적했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동위원회 판단과 법원 판례에 따라 제도 충돌과 법적 분쟁이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광선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도 “시행령과 매뉴얼이 노조법의 위임 한계를 넘어선 것으로 위헌 시비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 “교섭창구 단일화 폐지해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기자간담회에서 “원청 노조 중심의 단일화 원칙은 지키되 하청 노조의 교섭권을 보완하겠다”고 밝혀 창구 단일화 유지 기조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번 시행령 확정 과정에서 해석 방향이 크게 수정됐다.이는 노동계 교섭권 확대에 무게를 둔 정책 전환으로 현 정부의 노동정책 기조와도 맞물린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타운홀 미팅에서 하청 노동자 처우 개선과 관련해 “민간 영역은 정부가 직접 강제하기 어렵고, 실질적 방법은 노동운동 활성화”라고 언급했다. 공공부문 하청에는 ‘적정임금’ 정책, 민간부문에는 노란봉투법을 통한 교섭력 강화로 임금 격차를 줄이겠다는 투트랙 전략으로 분석된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원청이 교섭 의무가 없다고 회피하면서 하청 근로자들이 불법 투쟁으로 내몰린 게 노동 현장 악순환의 원인”이라며 “사업주도 (교섭에서) 노력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기 때문에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입장문을 통해 “정부가 원청 노조와 창구 단일화는 할 필요가 없다고 한 점은 나아지긴 했다”면서도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자체의 완전한 폐기를 주장했다.
◇산별 교섭 확산할 듯
원청 노조의 교섭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시행령에서 교섭 단위 분리 요건을 대폭 확대하는 바람에 원청 노조들 사이에서도 교섭창구 단일화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원청의 사무직 노조와 생산직 노조는 하나의 교섭단위였지만,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면 분리된 교섭단위에서 교섭을 요구할 여지가 생길 수 있다.업종별 사용자 집단을 상대로 한 ‘산별(산업별) 교섭’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청 노조끼리 ‘직무’ ‘고용형태’ 등 다양한 단위로 교섭집단을 형성해 원청을 압박하는 구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산별 교섭은 노동계의 숙원이다. 다만 일부 중소기업엔 원·하청 교섭 분리가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중소기업 하청업체 대표는 “원·하청이 묶여 교섭 기준이 정해지면 하청 독자적으로 임금 정책을 펴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곽용희/박진우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