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회사는 문학과 인문서를 주로 내는 오래된 출판사였는데, 그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들 어딘가 조금씩 독특한 구석을 가진 동료들과 함께했다. 글 쓰는 사람들의 유별난 개성이란 이미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홍보하는 출판 종사자들도 나름의 불(火)을 가지고 있다. 저마다 자기가 이해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며 고유의 세계 속에 몰두해 있는데, 회사 문화에 따라 발현되는 크기는 다른 것도 같다. 유행하는 식으로 말하자면 ‘미친(P)’ 기운 같기도 한데, (가끔) 지긋지긋하기도 했지만, (대체로) 내가 이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큰 기쁨과 안도를 누렸다는 사실을 그 회사를 떠나고서 깨닫게 되기도 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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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출판사 계정을 즐겨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저자 정기현 소설가를 M사의 문학 편집자로 알고 있을 것도 같다. 나도 몇 번 그가 나오는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귀엽고 엉뚱한 매력이 이전 회사의 동료들을 떠올리게 해서 일면식이 없는데도 친근한 인상이었다. 3년 전쯤 편집자 정기현이 소설가로 데뷔했다는 소식을 듣고 작품을 찾아본 적이 있다. 웹진 <림>에 발표한 <농부의 피>라는 작품이었는데, 어딘가 본인과 닮은 이야기를 쓴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다 읽고도 간단히 요약할 수 없는 이야기였는데, 어릴 때 문구점에서 산 씨앗으로도 알이 굵은 토마토를 수확하곤 했던, 자칭 ‘농부의 피가 흐르는’ 인물이 산책 중에 고가 뒤 숨은 황금 땅을 발견하고 텃밭을 일구었다가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땅의 원주인을 만나 그에게 과일을 주는 대가로 농사를 계속할 수 있게 되고, 그러다 백골을 발견…… 이 예측할 수 없는 전개는 신선하고도 낯설었다는 말로 충분치 않은 개성이 있었다.
정기현 소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스위밍꿀, 2025)
정기현 소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스위밍꿀, 2025)
분명 나도 잘 알고 있는 곳을 찍은 듯한데 사진 속 공간은 전혀 모르겠는 어떤 묘함. 그가 처음으로 묶어낸 소설집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의 전체적인 인상이기도 했다. 기은, 새미, 승주가 교차하는 작은 동네의 길과 집, 방 안에서의 일들은 도무지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작가는 마치 다른 세계의 무언가를 발굴해내는 안경을 쓴 사람처럼, 보통의 동네 어귀에서 갑자기 난쟁이나 멧돼지, 화재경보기를 능청스럽게 꺼내 들어 보여주는 것이다.

김병철 낙서 찾기는 오늘 하루 안에 끝나야 했다. 기은에게는 내일 또다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집을 나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루쯤은 괜찮지만 이틀이 된다면……. 마침내 자신이 이상해졌다는 울적한 예감에 빠지게 될지 몰랐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102쪽)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던 이 단편에서는 특별히 깊은 신앙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으나 평일 낮 교회에서 만화나 소설을 읽으며 소소하게 시간을 보내곤 하는 기은이 그곳에서 준영과 만나 나누는 어떤 마음, 혹은 그 미끄러짐에서 오는 거리감을 다룬다. 이 흐름이 길가의 오래된 낙서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는 점이 정기현만의 탁월함으로 이해되었다.
눈알 돌멩이 / 사진. © 최지인
눈알 돌멩이 / 사진. © 최지인
2년 전 웹진에 발표된 <농부의 피> ‘작가의 말’을 읽고는 그와 내가 같은 동네를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본 것도 같다고도 생각한 적이 있다. 농활에 가서 “너는 피에 흙이 흐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서인지,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혼자 전국 기차 여행을 떠났다가 그립던 사람과 헤어지고 돌아온 기억 때문인지, 그의 경로가 익숙하고도 나와 너무나 달라서 오히려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단지 세대의 격차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인류와 만난 것 같은 기분 때문이었는데, 그래서 좋았고, 그 남다름이 정기현의 소설을 계속 읽게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최지인 문학 편집자•래빗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