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좀 그만해.” 게임을 즐기는 누군가가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다. 게임은 종종 시간 낭비로, 현실을 미루는 핑계로 보이기 쉽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화 <그란 투리스모>는 그 익숙한 잔소리에 대차게 반박한다. 주인공 ‘잔 마든보로’는 방 안에서 주야장천 레이싱 게임만 하는 청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실제 핸들을 잡아본 적도 없던 그가 실제 레이싱카에 오른다. 모두가 의심하고 걱정한다. 게임과 실제 운전은 다르니까.

레이싱 게임을 잘하는 게이머를 데려다가 실제 프로 레이서를 만들어보겠다는 영화의 기발한 발상은 실화에 근거한다.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에 푹 빠져 살던 마든보로는 모두가 비웃는 루저 인생, 방구석 폐인에 머물지 않고 세상에 자신을 증명해 보인다. 실제 레이서는 트랙 위에서 고도의 밀도 높은 경험을 쌓는다. 반면 게이머는 온종일, 수년간 다양한 트랙과 차량으로 반복 연습을 한다. 인지적·전략적 반복 경험은 게이머가 훨씬 많이 축적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이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한 코너링, 브레이크 타이밍을 몸이 기억하는 감각, 트랙을 외우듯 축적된 데이터. 수없이 이어진 실패와 재도전은 그의 판단 속도와 반사 신경을 단련했다. 우리는 흔히 게임을 그저 소비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축적’이라고 말한다. 게임 플레이가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비생산적인 시간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주인공에겐 감각과 판단력이 쌓여가는 생산의 시간이었다. 레이서로서는 처음 서는 길이지만, 정교하게 구현된 리얼 드라이빙 시뮬레이션에서 이미 수없이 달려본 길이라는 그의 확신은 통쾌하게 설득력이 있다.

영화가 외친다. 게임 속 경험이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일종의 ‘훈련’이었다고. 물론 게임은 현실이 아니다. 중력과 위험, 충돌의 공포는 모니터 밖의 세계에 속한다. 그러나 조종사도, 군인도, 의사도, 실제 상황 이전에 시뮬레이션으로 수없이 훈련한다. 그런 점에서 레이싱 역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주로 게임의 순기능에 주목했지만, 게임에는 분명 부작용도 존재한다. 과몰입, 생활 리듬 붕괴, 현실 회피나 모방 논란 같은 여러 문제가 지적되어 왔다. 게임을 한다고 해서 모두 프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설계된 게임이냐 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게임을 대하는 게이머의 태도와 일상을 붕괴시키지 않는 균형 잡힌 현실 감각이다.

영화 속 마든보로는 방구석이나 방 안에서의 시간이 헛되지 않을 순간을 맞이했다. 그간의 몰입은 재능이 되었고, 반복은 기술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개인의 집념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험이 풍부하고 현장 감각 뛰어난 멘토 ‘잭 솔터’의 지도, 기업의 프로그램, 잘 만들어진 시스템이라는 구조가 결합했기에 가능했다. 게임의 순기능은 무조건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일정한 조건 속에서 비로소 현실의 가능성으로 변환된다. 영화의 설득력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나온다. 게임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고 어떻게 다루고 마주해야 하는지, 현실로의 전환을 묻기 때문이다.
덕후의 시대, 몰입은 어떻게 역량이 되는가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게임은 누군가에겐 세상 쓸모없는 것일 수도, 누군가에겐 가장 유용한 학습 방식일 수도 있다. 이전 세대에게 게임은 위험하거나 비생산적인 활동이었다. 땀 흘리지 않고, 세상과 부딪히지도 않고, 방 안에서 보내는 고립된 시간의 위험이라는 이유로 비생산적인 것으로 치부되던 게임 플레이를, 영화는 ‘생산의 시간’으로 바꿔놓았다. 현대 플랫폼 시대에 성장한 세대에게 게임은 또 다른 학습 방식이자 역량 축적의 공간이 되었다. 시뮬레이션, 몰입 기반 학습, 반복 훈련과 즉각적 피드백 시스템은 감각과 전략적 사고를 정교하게 만든다. 취미가 직업으로 이어지고, 몰입이 전문성이 되는 시대다. <그란 투리스모>는 방 안에서의 시간을 다시 묻는다. 그 시간은 낭비였는가, 준비였는가.

방안에서의 몰입이 트랙 위의 현실 준비였던 한 청년의 질주처럼, 이 순간도 누군가는 자신의 방에 갇혀 자신만이 아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꼭 게임이 아니어도 남들 눈에 한심해 보이기만 하는 그런 시간, 한 번쯤은 겪어봤을 수 있지 않은가. 게임을 넘어, 과연 그 시간을 어떻게 축적하고 어디로 연결하여 현실로 건강하게 잘 전환하느냐가 관건이다. 게임 플레이로 얻은 기발한 상상력과 실력이 현실에 발을 붙여 자신을 증명해 낸 것처럼, 영화는 ‘세상에 나를 증명할 기회’를 선사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게 한다.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그란 투리스모> 스틸컷 /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이언정 칼럼니스트

[영화 <그란 투리스모> 메인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