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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합창이 흐르는 성당, 가우디의 숲
[arte] 유승준의 내 인생의 가우디
가우디 서거 100주년
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②
-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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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
[이전 칼럼] ▶▶▶ 가우디 전 생애를 바쳤다...신을 향한 마음 품은 대성당
처음 성당 안으로 발을 내디디면 누구라도 얼음이 된 듯 우두커니 서서 목덜미에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쳐든 고개를 떨구지 못할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신비감과 경외감이 온몸을 감싸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 부인하기 어려운 어떤 초월적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황홀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돌을 깎아 쌓아 올린 아름다운 숲속, 다른 문장을 찾기 힘들 만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바르셀로나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들이 다른 외피를 입은 채 가지런히 솟아 있고, 옹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계속해서 갈라지며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지중해의 태양이 따사로이 쏟아져 내린다. 동이 트면 탄생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푸르른 생명의 빛이 성당 안을 밝히고, 해 질 녘이면 수난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붉디붉은 낙조의 기운이 성당 안을 수놓는다. 대자연의 숨결이 가우디의 의도대로 성당 안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다 같은 나무인 듯하지만, 기둥과 줄기와 이파리 어느 하나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다.
성당 내부는 돌을 깎아 만든 거대한 숲이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있고 갈라진 줄기는 지붕을 받치고 있다. 지붕 위에서 햇살과 바람이 끊임없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온다. / 사진. © 김혜경
[좌] 동쪽 탄생의 파사드 창문에는 푸른색과 초록색 스테인드글라스가 만들어져 있다. 탄생과 희망의 의미를 담은 색깔이다. 해가 뜨면 푸르른 햇살이 춤추듯 내려와 실내를 물들인다. [우] 수난의 파사드가 있는 서쪽 창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붉은색과 노란색이다. 죽음과 순교를 상징한다. 하루 일을 끝마친 태양은 핏빛 같은 노을을 남긴 채 서쪽으로 자취를 감춘다. / 사진. © 김혜경
기둥들은 교회의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라틴십자가 모양으로 배치되었다. 제단을 향해 가운데 쪽으로 가다 보면 다른 기둥과 달리 연보라색 기둥이 나타난다. 모두 네 개다. 옹이 부분을 보면 램프 장식에 이름이 쓰여 있다.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복음사가들이다. 기독교 미술에서 이들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묘사하는 건 구약성경 에제키엘서(개신교에서는 에스겔) 1장 10절에 따른 것이다. “그들의 얼굴 형상은 사람의 얼굴인데, 넷이 저마다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고 왼쪽은 황소의 얼굴이었으며 독수리의 얼굴도 있었다.” 에제키엘은 B.C. 6세기 바빌론 2차 침공 때 포로로 끌려갔으나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절망과 불신에 빠진 유다 백성을 향해 본토 회복의 소망을 선포하며 위로와 용기를 북돋운 선지자다.
커다란 창 때문에 벽이 받는 하중을 최소화해야 했기에 나무 같은 기둥과 줄기로 천장을 지탱하도록 했다. 이는 높이와 빛을 활용해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려는 가우디의 의도였다. / 사진. © 김혜경
마태오 사도는 날개 달린 사람으로 표현되었다. 그가 예수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구세주의 인간성을 강조한 데 착안한 것이다. 아브라함부터 예수까지 42대에 걸친 가문의 역사를 그가 일일이 조사하고 확인해서 기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이를 천사가 알려줬을 것으로 추정해 천사로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성 마태오는 예수의 제자로 부름을 받기 전 악명 높은 세리로 일한 경력이 있다. 그래서 그는 은행원, 회계사, 세무 직원들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흔히 장부를 펼쳐 들고 있는 모습으로 많이 그려지는 건 이 때문이다.
마태오 사도를 기념하는 기둥. 성 마태오는 예수의 족보로 복음서를 시작하고 있기에 날개 달린 사람 혹은 천사로 표현되며, 세리로 일했으므로 장부를 보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 사진. © 김혜경
마르코는 날개 달린 사자 모습을 하고 있다.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백성을 향해 회개하라며 설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표현했다.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포효하는 사자 같다고 해서 성 마르코의 상징은 날개 달린 사자가 되었다. 사자를 옆에 두고 복음서를 저술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 전날 밤, 사도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진 장소가 바로 그의 집이었다.
마르코는 복음서를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서 회개를 촉구하며 설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모습이 포효하는 사자 같다고 해서 성 마르코의 상징은 날개 달린 사자가 되었다. / 사진. © 김혜경
루카의 상징은 황소다. 그는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위대한 희생을 구약시대 때 제사에 사용된 황소처럼 하느님께 바쳐진 산 제물로 표현했다. 그의 성품 역시 황소처럼 침착하고 강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사도가 아니었음에도 예수 그리스도와 성 바오로를 위해 변함없는 희생과 충직함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그는 의사로서도 활발히 활동했으며 바오로와 함께 전교 여행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과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수많은 자료와 증언을 토대로 사건들을 추적해 연대기적으로 복음서를 기록하는 등 누구보다 열렬하게 하느님께 봉헌된 제물로서의 삶을 살았다.
루카를 기념하는 기둥에 날개 달린 황소가 보인다. 이는 성 루카가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제사에 사용된 황소처럼 하느님께 바쳐진 산 제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 사진. © 김혜경
사도 요한은 독수리로 그려졌다. 다른 복음서와 달리 그는 예수의 행적만을 기술한 게 아니라 예수가 보여준 신성을 주로 기록했다. 성 요한은 사도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고 스승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운명하기 전 요한을 보고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다. 이때부터 요한은 평생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처럼 모셨다. 사도 모두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지만, 요한 사도는 90세가 넘도록 천수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그러는 동안 요한 복음서를 비롯해 요한 서신과 요한 묵시록을 저술했다. 훗날 사람들은 복음사가로서 그가 가졌던 신학적 깊이와 영적 통찰력을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에 빗대었다.
사도 요한의 상징은 독수리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의 신성에 관해 주로 기록했다. 타 복음서와 다른 신학적 깊이와 영적 통찰력은 하늘 높이 나는 독수리를 떠올리게 한다.
/ 사진. © 김혜경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는 제단 양옆에는 유난히 짙은 회색빛 기둥 두 개가 눈에 띈다. 사도 중 으뜸으로 여겨지는 베드로와 바오로를 상징하는 기둥이다. 제단 위쪽에는 지름 5m의 발다키노가 매달려 있다. 발다키노(Baldacchino), 즉 천개(天蓋)는 제단이나 설교단 등의 주위에 세워진 기둥 윗부분에 설치되는 덮개를 가리킨다. 대부분 조각이나 공예로 풍부하게 장식한다. 칠각형의 발다키노에는 이사야서 11장 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가 카탈루냐어로 새겨져 있다. 지혜, 슬기, 경륜, 용기, 지식, 공경, 경외다. 발다키노 위에는 나무로 만든 밀이삭이, 아래에는 유리로 만든 포도와 구리로 만든 포도 줄기와 잎이 장식되어 있다. 밀이삭은 빵을, 포도는 포도주를 상징한다. 성체 성사의 의미를 담았다. 발다키노 맨 아래쪽에는 50개의 전등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이는 오순절을 기념하는 것이다. 오순절(五旬節)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50일째 되는 날에 성령이 강림한 것에서 유래했다.
50개의 전등 불빛 밑에는 나무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달려 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힌 예수는 무릎을 구부린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한없이 처연한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이 십자고상은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 기도실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카를레스 마니에게 만들게 했던 청동 예수상과 흡사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위치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뜨린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제단에도 이와 같은 십자고상을 제작하고자 했다.
출입문에서 후진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길 끝에 세워진 제단. 발다키노(Baldacchino), 즉 천개(天蓋)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상, 포도송이, 밀알 그리고 50개의 전등이 달려 있다.
/ 사진. © 김혜경
천국에서 우리는 모두 성가대원일 것이다
관광객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아스라이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기도 하고 성가대의 합창 같기도 했다. 천상의 소리였다. 눈을 떴다. 주변에는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만 보였지 오케스트라나 성가대는 없었다. 보이는 건 제단 뒤편에 놓인 빛나는 파이프 오르간뿐이었다. 간절한 바람이 환청이 된 것인가. 고개를 들었다. 보통 2층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제단과 기둥을 둘러싸고 계단 형태의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었다. 성가대석이었다.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천장이 높으니 울림 또한 기가 막힐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성가대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바흐의 ‘b 단조 미사’나 하이든의 ‘천지창조’ 혹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가 발코니에서 울려 퍼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가우디는 성가대원이었던 적이 있을까? 그는 음악을 좋아했을까?’ 가우디가 성가대원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미사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성당 기둥을 배치하고 천장 높이를 조절하고 2층 성가대석을 대규모로 편성한 것은 건축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사 때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가대의 합창이 그야말로 천사들의 노래처럼 들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탄생의 파사드에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과 카탈루냐 민속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목소리 높여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을 조각해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우디는 그만큼 음악을 사랑했고 조예가 있었다.
“천국에서 우리는 모두 성가대원일 것이다.” 가우디는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오르페오 카탈라 합창단의 공연을 본 뒤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긴 적 있다. 여간해서 글을 쓰지 않던 그의 기질을 생각한다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가 음악에 어느 정도 심취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콘서트홀, 가우디의 스승이자 카탈루냐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도메네크의 역작 등 다채로운 수식어를 가진 카탈루냐 음악당은 오르페오 카탈라(Orfeó Català) 합창단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카탈루냐 최고의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이 합창단은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를 즈음해 활동을 시작해 1891년 공식 창단되어 카탈루냐와 세계 각국의 합창 레퍼토리를 소개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전용 연습실과 공연장이 없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신세였다. 그러다 드디어 여러 사람의 노력과 후원으로 1908년 카탈루냐 음악당을 완공해 입주함으로써 안정적인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도메네크 때문만이 아니라 가우디 역시 음악을 사랑하고 오르페오 카탈라 합창단을 좋아했기에 카탈루냐 음악당을 자주 찾았고 이런 글까지 적어둔 것이다.
제단을 등지고 정면을 응시하면 발코니에 앉아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수비라치가 만든 성 조르디 조각상이다. 성가대석이 있는 8.5m 높이에 놓인 3m 크기의 이 거대한 작품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첫 주춧돌이 놓인 지 125년이 되던 해인 2007년에 설치되었다. 성 조르디는 제단 위 십자고상에 매달린 예수를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리다가 나갈 때는 성 조르디를 바라보며 돌아간다. 신앙인의 정체성과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장의자에 앉아 쉬거나 제단을 바라보며 스마트폰 앱으로 해설을 듣는 사람들. 뒤쪽 발코니 위에서 물끄러미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수비라치의 성 조르디 조각상이 보인다. / 사진. © 김혜경
성 조르디 조각상이 있는 쪽이 영광의 파사드(Glory Façade)가 세워지는 곳이다. 조각상 아래 창문에는 십자가와 제병과 성배가 그려져 있고, 밑에 ‘EUCARISTIA’라는 글자가 쓰여 있다. 스페인어로 성체 성사라는 뜻이다. 바로 아래가 청동으로 된 출입문이다. 바탕에는 주님의 기도(개신교에서는 주기도문)가 세계 각국어로 조각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한글 기도문을 찾을 수 있다. 가운데 있는 문의 손잡이는 ‘A’와 ‘G’ 글자 모양이다. 카탈루냐어로 된 주님의 기도 “I NO PERMETERU QUE CAIGUEM A LA TEMPTACIO(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중에서 가우디에게 존경심을 표하기 위해 안토니 가우디의 머리글자인 ‘A’와 ‘G’를 도드라지게 해 손잡이로 만들었다. 수비라치가 가우디를 얼마나 공경했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영광의 파사드에 만들어지는 다른 여섯 개의 출입문에도 주님의 기도 중 다른 구절들이 새겨지게 된다.
성 조르디 조각상이 있는 영광의 파사드 출입문 동판에는 주님의 기도가 세계 각국어로 새겨져 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옵소서.” 한글로 쓰인 기도문이 또렷하다. / 사진. © 김혜경
성당 내부와 지하 경당은 완전히 다른 형태다. 가우디는 전임자인 비야르의 네오고딕 양식을 그대로 존중했다. 대신 어두운 느낌이 드는 공간에 햇빛이 들고 환기가 잘되도록 조치했다. 지하에는 크고 작은 경당이 열두 개나 된다. 후진에 일곱 개, 반대쪽에 다섯 개다. 이 중 중앙 제단 역할을 하는 경당에 주셉 리모나가 제작한 성가정 제단 장식품과 가우디가 제작한 ‘JMJ’ 모노그램이 걸려 있다. 카르멜산의 성모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바치는 양쪽 끝 경당에는 가우디와 보카벨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순교자들을 위해 마련된 지하 봉안당에 사제도 순교자도 아닌 두 사람이 잠들어 있는 것이다. 회랑 쪽에 있는 창을 통해 지하 경당을 내려다볼 수 있다.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드릴 때는 엄숙미와 경건미가 충만하다.
성당 내부 회랑 안쪽에는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벽에 카사 바트요 기도실에 있던 제단 장식품이 걸려 있다. 성가정, 즉 예수, 마리아, 요셉을 묘사한 작품이다. / 사진. © 김혜경
[좌] 회랑 쪽에 있는 창을 통해 내려다본 지하 경당의 모습. 제단 위에 성가정을 의미하는 ‘JMJ’ 모노그램이 보인다. 가우디는 지하에 이 같은 작은 경당을 열두 개나 만들어두었다. [우] 지하 경당에 모인 신자들 표정에 엄숙미와 경건미가 충만해 보인다. 사제도 순교자도 아니었지만, 이곳 지하 묘지에는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가우디와 보카벨라가 잠들어 있다. / 사진. © 김혜경
지하에는 박물관도 있다. 가우디의 일생을 담은 사진과 영상물과 건축의 모형, 각종 장식물에 담긴 의미와 상징에 관한 설명, 가우디가 영감을 받은 카탈루냐의 동식물들, 가우디의 작업 공간 등이 재현되어 있다. 지금도 지하 작업실에서는 여러 전문가가 성당 건축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첫 삽을 뜬 지 140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러나 이들의 감독이자 교과서는 여전히 가우디다. 모든 작업 과정에는 늘 같은 질문이 제기된다.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도 지하 작업실에서는 여러 전문가가 성당 건축을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이들의 감독이자 교과서는 여전히 가우디다. 오른쪽에 마지막 과제인 그리스도의 탑 모형이 보인다. / 사진. © 김혜경
유승준 작가
처음 성당 안으로 발을 내디디면 누구라도 얼음이 된 듯 우두커니 서서 목덜미에 통증이 느껴질 때까지 쳐든 고개를 떨구지 못할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신비감과 경외감이 온몸을 감싸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조차 부인하기 어려운 어떤 초월적 세계에 들어온 것 같은 황홀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돌을 깎아 쌓아 올린 아름다운 숲속, 다른 문장을 찾기 힘들 만큼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바르셀로나 거리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플라타너스들이 다른 외피를 입은 채 가지런히 솟아 있고, 옹이에서 뻗어 나온 가지들은 계속해서 갈라지며 하늘을 향해 자라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지중해의 태양이 따사로이 쏟아져 내린다. 동이 트면 탄생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글라스에서는 푸르른 생명의 빛이 성당 안을 밝히고, 해 질 녘이면 수난의 파사드 쪽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붉디붉은 낙조의 기운이 성당 안을 수놓는다. 대자연의 숨결이 가우디의 의도대로 성당 안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다. 다 같은 나무인 듯하지만, 기둥과 줄기와 이파리 어느 하나도 똑같이 생긴 것이 없다.
50개의 전등 불빛 밑에는 나무 십자가 위에 그리스도의 테라코타 조각상이 달려 있다. 양손과 양발에 대못이 박힌 예수는 무릎을 구부린 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와 한없이 처연한 눈망울이 인상적이다. 이 십자고상은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 기도실 제단을 장식하기 위해 카를레스 마니에게 만들게 했던 청동 예수상과 흡사하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위치에 대한 기존 관념을 깨뜨린 그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가우디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제단에도 이와 같은 십자고상을 제작하고자 했다.
관광객들의 웅성거림 사이로 아스라이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 같기도 하고 성가대의 합창 같기도 했다. 천상의 소리였다. 눈을 떴다. 주변에는 사진 찍기에 바쁜 사람들만 보였지 오케스트라나 성가대는 없었다. 보이는 건 제단 뒤편에 놓인 빛나는 파이프 오르간뿐이었다. 간절한 바람이 환청이 된 것인가. 고개를 들었다. 보통 2층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제단과 기둥을 둘러싸고 계단 형태의 발코니가 마련되어 있었다. 성가대석이었다. 1,000명이 넘는 인원이 자리할 수 있다고 한다. 천장이 높으니 울림 또한 기가 막힐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성가대가 나란히 서 있는 광경을 상상해 보았다. 바흐의 ‘b 단조 미사’나 하이든의 ‘천지창조’ 혹은 베토벤의 ‘장엄 미사’가 발코니에서 울려 퍼진다면 어떨까. 아마도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가우디는 성가대원이었던 적이 있을까? 그는 음악을 좋아했을까?’ 가우디가 성가대원이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그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미사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가우디가 성당 기둥을 배치하고 천장 높이를 조절하고 2층 성가대석을 대규모로 편성한 것은 건축적 측면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지만, 미사 때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성가대의 합창이 그야말로 천사들의 노래처럼 들릴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기도 하다. 탄생의 파사드에 클래식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과 카탈루냐 민속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들 그리고 목소리 높여 아기 예수 탄생을 축하하는 천사들을 조각해 넣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가우디는 그만큼 음악을 사랑했고 조예가 있었다.
“천국에서 우리는 모두 성가대원일 것이다.” 가우디는 카탈루냐 음악당에서 오르페오 카탈라 합창단의 공연을 본 뒤 방명록에 이런 글을 남긴 적 있다. 여간해서 글을 쓰지 않던 그의 기질을 생각한다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연주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그가 음악에 어느 정도 심취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연장,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콘서트홀, 가우디의 스승이자 카탈루냐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도메네크의 역작 등 다채로운 수식어를 가진 카탈루냐 음악당은 오르페오 카탈라(Orfeó Català) 합창단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 카탈루냐 최고의 역사와 실력을 겸비한 이 합창단은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를 즈음해 활동을 시작해 1891년 공식 창단되어 카탈루냐와 세계 각국의 합창 레퍼토리를 소개하며 명성을 얻었으나 전용 연습실과 공연장이 없어서 여기저기 옮겨 다니는 신세였다. 그러다 드디어 여러 사람의 노력과 후원으로 1908년 카탈루냐 음악당을 완공해 입주함으로써 안정적인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도메네크 때문만이 아니라 가우디 역시 음악을 사랑하고 오르페오 카탈라 합창단을 좋아했기에 카탈루냐 음악당을 자주 찾았고 이런 글까지 적어둔 것이다.
제단을 등지고 정면을 응시하면 발코니에 앉아 사람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상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수비라치가 만든 성 조르디 조각상이다. 성가대석이 있는 8.5m 높이에 놓인 3m 크기의 이 거대한 작품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첫 주춧돌이 놓인 지 125년이 되던 해인 2007년에 설치되었다. 성 조르디는 제단 위 십자고상에 매달린 예수를 마주하고 있다. 사람들은 예수를 바라보며 미사를 드리다가 나갈 때는 성 조르디를 바라보며 돌아간다. 신앙인의 정체성과 카탈루냐인의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가우디라면 어떻게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