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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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들의 협연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수년 치의 빽빽한 스케줄을 가진 거장들의 만남은 우주를 돌아다니는 두 별의 충돌과 같은 성대한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8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이뤄진 정명훈과 임윤찬의 만남이 바로 그러했다. 이 둘은 유럽과 한국의 무대에서 베토벤과 슈만의 협주곡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여럿 있는데, 특히 이번 공연은 독일 최고의 악단 중 하나이자 정명훈 지휘자가 수석객원지휘자를 맡고 있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함께하여 올해 클래식 무대 최고의 이벤트 중 하나로 기대를 모았다.

음악회의 시작을 알린 곡은 드레스덴에서 전성기를 보냈던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 서곡이었다. 지휘자가 청중에게 인사하고 관현악을 향해 돌아섰을 때, 콘서트홀은 순간 적막에 휩싸였다. 오직 기대로 가득했던 경이의 순간, 이미 음악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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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dal niente’(무로부터)를 연주하듯 고요 속에서 조용히 소리가 들려오고, 마침내 따뜻한 음색을 가진 호른이 여유 있는 템포로 주선율을 연주하면서 소리의 꽃을 피운다. 이후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섬세한 제스처로 터치하는 극적 표현, 모두가 어우러지는 조화롭고 유연한 소리, 그리고 마디 선과 박자표에 구속된 인위적 통제가 아닌 자연적 흐름에 가까운 음들의 연속은 지휘자와 관현악단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어느덧 ‘al niente’(무의 상태로)로 조용해지는 과정은 완결된 삶의 노래였다.

이어서 임윤찬의 협연으로 슈만의 피아노 협주곡이 연주되었다. 임윤찬은 밴 클라이번 콩쿠르부터 독창적인 해석과 과감한 시도를 선보였고, 이후 여러 연주에서 독특한 분석 능력과 개성적 해석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다. 고음과 저음이 선명히 드러나는 역할 분담이나 오랜 시간 서서히 이루어지는 빌드업, 클라이맥스에서 템포를 더욱 당기면서 유지하는 긴장감, 자유로운 루바토로 표현하는 자유로운 서정성, 그 가운데 보여주는 뜻밖의 감정적 절제, 관현악의 연주를 살피며 만들어가는 하나의 연결된 앙상블 등. 이러한 특징들은 그가 악보를 정확히 구현해내는 콩쿠르 스타가 아닌, 음악을 충분히 체화하여 자신의 이야기로 만드는 소리의 예술가임을 증명한다. 우리가 말할 때 음정, 박자, 리듬을 생각하지 않고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맞게 자연스럽게 억양을 넣어 말하듯, 그의 음악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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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서도 이러한 특징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저음 선율은 명징한 고음 선율에 대비되며 옛 거장의 진중한 발걸음 소리와 같이 울렸고, 그사이에 흐르는 내성부는 소용돌이와 같이 맴돌며 생동감을 더했다. 특히 슈만은 피아노가 기교적으로 드러나는 것을 피하고자 관현악과 연결되어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특징은 임윤찬의 연주가 더욱 빛을 발하게 한다. 관현악 없이 홀로 연주할 때는 음마다 길이와 다이내믹이 다를 정도로 자유롭다가도 관현악과 함께 할 때는 자신의 흐름을 관현악의 호흡에 실으며 음악을 이끄는 유연한 전환은 은근한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다.

그 가운데 피아노는 레가토보다는 각 음이 명료하게 들리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따뜻한 음색과 소리의 조화를 추구하는 관현악과 대비되면서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이중주처럼 보이게도 한다. 이렇게 복합적이고 변화하며 대비되는 구성은 음악을 입체로 느끼게 하며 가상의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특히 2악장에서 음의 여운이 사라지는 순간의 짧은 정적은 이러한 공간감을 영적 희열로까지 이끌었고, 3악장에서는 빠른 속도에도 한 음 한 음의 생명력과 저음의 풍부한 울림이 공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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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익숙한 작품에서 들리는 익숙지 않은 경험은 슈만의 영혼이 임윤찬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하는 새로운 목소리 같기도 하다. 사랑의 에피소드나 음악은 시적이어야 한다는 슈만의 말에 이끌려 서정적으로만 접근했던 여러 과거의 해석들은 어쩌면 슈만이 아닌 시와 사랑에 대한 연주자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윤찬은 시를 넘어 시를 말한 슈만에게 다가갔다. 앙코르는 쇼팽의 왈츠 Op.34 중 2번을 연주하며 절제의 감성으로 또 하나의 시를 읊어주었다.

후반부는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로 채웠다. 세상을 창조하는 순간과 같은 깊은 고요 속에서 시작하여 빛나는 소리의 향연을 펼쳤다. 이 곡에서도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감정의 폭발이나 표면적인 시나리오를 드러내기보다는 조화로운 소리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다. 이것이 다르게 들리게 한 핵심이다. 1악장은 특징적인 부분에서 템포를 늦추며 감성을 끌어올렸고, 혹은 크레셴도를 부각하여 극적 표현을 강조했다. 이러한 표현은 특히 금관에서 효과적이었으며, 불필요하게 감정이 들뜨기보다는 중후한 멋을 만들었다. 도돌이표에 의한 제시부 반복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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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악장은 충분히 느리게 연주하면서 음향을 조화롭게 이끌었다. 그리고 곡의 진행에 따라 다이나믹과 음색, 템포의 대비를 드러내고, 또한 현악 앙상블은 잘 듣지 못했던 내성부를 강조하면서 이 곡 또한 입체적 공간으로 만들었다. 감상자들은 그 공간에 영혼을 띄워 각자의 황홀경을 경험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음향이 풍부한 부분에서는 절제하고, 음향이 부족한 부분은 음량을 키워 조화를 이루게 한 전략도 있다.

잘 들리지 않는 마지막 더블베이스의 화음을 명료하게 연주함으로써 ‘al niente’를 부각하여 적막 속에 정신적 침묵을 경험하게 한 것은 그 한 예다. 3악장은 경쾌한 리듬감에도 조화로운 소리를 지향하면서 무게감을 놓지 않는 적절한 지점에 있었고, 4악장은 역동적이면서도 품위를 지키는 노련미를 보여주었다. 마지막 화음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앙코르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7번의 3악장 스케르초를 연주하며 음악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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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명훈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익숙한 작품에서 늘 기대하게 되는 표현을 재현하기보다는 그들의 소리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고, 특히 음 하나하나에 깃든 생성부터 소멸까지의 흐름으로 입체적인 소리를 듣게 함으로써 드레스덴의 남다른 기품을 전달했다. 바그너가 보낸 찬사 ‘기적의 하프’는 빛바랜 과거의 추억이 아닌 여전히 빛나는 오늘의 모습이다.

송주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