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눈꽃 요정'처럼 빛난다…패션아트 40년 여정을 꿰다
'Dancing, Dreaming, Enlightening'
패션아트 1세대 금기숙 기증특별전
서울공예박물관에 58개 작품 기증
60년대 美 '아트 투 웨어' 재해석
철사에 비즈·산호·구슬 엮어 제작
한 벌의 옷에서 조형·공간 예술로 확장
패션과 예술, 전통과 현대 경계 허물어
패션아트 1세대 금기숙 기증특별전
서울공예박물관에 58개 작품 기증
60년대 美 '아트 투 웨어' 재해석
철사에 비즈·산호·구슬 엮어 제작
한 벌의 옷에서 조형·공간 예술로 확장
패션과 예술, 전통과 현대 경계 허물어
감꽃으로 목걸이를 만들던 소녀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작품만큼이나 해사한 미소의 금 작가를 아르떼가 만났다. 그는 평창올림픽 당시 안내요원 옷 30벌을 디자인한 때를 회고하며 “기한이 있는 일을 혼자 작업해야 해 무척 힘들었지만 어쩌면 지금과 연결된 아주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불현듯 떠오른 이 기억은 이번 전시에서 관람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공간에서 작가 세계를 이해하는 이야기가 됐다.
“서너 살이나 됐을까. 초여름에 비가 오면 담황색 감나무에 열린 감꽃이 후두두 떨어져요. 울퉁불퉁한 뒷마당 웅덩이에 빗물이 고이고, 바람이 불면 물결을 따라서 꽃이 한쪽으로 모이기도 하고요…. 엄마가 무명실을 손에 쥐여주면 감꽃을 하나하나 꿰면서 뜯어 먹기도 했죠. 실에 잔뜩 꿰어 자랑하면 엄마가 양 끝을 묶어 목에 걸어줬어요.”
“젊었을 땐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명 하나하나 모두가 귀하고 예쁘게 보여요. 어린 친구들이 ‘누구는 예쁘고 누구는 밉다’ 하는데 사실 한 명 한 명 다 예쁜 거지요. 모두 달라서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답니다.”
그는 자연에서 삶을 본다. 진흙 속에서 꽃을 피우는 연꽃에서 인생을 발견했다. 퍽퍽한 흙에 뿌리를 두고 자라는 연꽃은 더러운 물을 헤치고 나와 비로소 꽃을 피운다.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었지만 꽃봉오리만큼은 우아하고 순수하다. 1990년대 연화를 모티브로 작업한 건 최초의 드레스 작품이 됐다. 진흙 빛이 연상되는 철사를 꼬아 엮은 후 물과 이파리 색, 그러데이션을 뽐내는 연꽃 색상까지 한 드레스에 담았다.
그림자까지도 작품이다
오랜 시간 작품을 만들면서 작업 방식도 변화해왔다. 초창기에는 철사를 동그랗게 엮었다. 하지만 작품과 천장을 연결해 공중에 매달아 전시해야 하는 작품 특성상 동그란 형태의 철사에는 힘이 분산되지 않아 이내 느슨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고. 우연히 본 거미줄이 작가의 영감을 자극했다. 거미줄 형태의 꼬임으로 여러 개 유닛을 제작해 드레스를 만들기도 했다. ‘Spider Lady: Web Dress’가 그 주인공이다.작가의 작품은 공중에 전시된다. 벽에 걸 수 있는 평면이 아니라 입체 작업이기 때문이다. 천장과 이어진 낚싯줄을 통해 허공에 떠 있는 작품은 위치, 조명에 따라 다양한 분위기를 낸다.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때 꼭 바닥도 살펴야 하는 이유다. 그림자까지가 하나의 작품이다. 관람객이 맨 처음 마주하는 작품 ‘백매’ 역시 마찬가지다. 검은색 바닥과 벽을 배경으로 중앙에 자리 잡은 이 작품은 눈부신 은빛 와이어와 서리꽃이 내려앉은 듯 새하얀 자태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작가의 정원에서 매년 봄 하얀 꽃을 피우던 매화나무가 모티브가 됐다. 투명 비즈를 사용한 이 작품은 빛에 따라 미세하게 반짝이며 숨을 쉬고, 그 아래로는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한 구름 모양 그림자가 일렁인다.
입기 위한 옷 너머의 것
한복 작품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설명하는 중요한 축이다. 금 작가의 예술 세계는 조선 시대 복식 미학 연구에서 시작했다. 저고리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남성 겉옷인 ‘직령’과 학(鶴)의 깃털로 만든 옷이라는 의미가 담겨 조선시대 사대부, 선비가 입던 ‘학창의’ 등을 재해석한 작품도 인상적이다.
작가의 패션아트는 신체를 벗어나 공간 전체로 확장된다. 박물관 1층 천장의 설치 작업과 평면 벽에 부조 형태로 완성된 작품은 벽면 너머를 상상하게 하고, 앞으로 작가가 선보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작가는 언젠가 커다란 공간에 흘러 떠내려가는 사람들을 주제로 작업해보고 싶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저 흘러가는 사람들인데 너무 집착하며 사는 것 같아요. 무언가에 매달려서 꼭 그걸 안 하면 죽는 것처럼. 엉뚱한 것에 에너지를 소비하느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정작 소중한 주변 사람이나 환경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두루두루 순응하며 살다 보면 또 다른 좋은 기회가 분명히 와요. 저도 그걸 이제야 깨달았네요.” 전시는 3월 15일까지.
강은영 기자 qboom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