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무심한 듯 편견에 도전하는 그림 한 점이 있다. 유화, 즉 기름으로 그린 얼음이다. 얼음과 물, 수증기는 그야말로 물이니까 수채물감으로 그려야 잘 표현될 거라 넘겨짚기 쉽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철석같이 믿어왔건만, 이 작품 덕분에 조금 과장을 보태 일생의 선입견이 사르르 녹아버렸다. 발랐다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싶을 정도로 두툼하고 한편 거친 재질감의 유화물감이 얼음, 물, 유리의 결이 같다고 할 수 있는 투명함을 너무나도 잘 포착하고 있다.
아모르보비스쿰, Amorvobiscum, piece of ice, 2026. / 필자 제공
기름에 개어 바른 물감의 재질감 덕분에 재현되는 물과 얼음의 투명함이라니. 작품의 주인이 누군가 찾아보았더니 또한 분명한 듯 모호하다. ‘Amorvobiscum(아모르보비스쿰, ‘사랑이 당신과 함께’라는 라틴어 문구의 조어)’이라는 닉네임을 내세우는데, 홈페이지의 자기소개에 의하면 현직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한다. 규율이 또렷하고 확실한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에서 느끼는 답답함을 이처럼 모순적인 세계를 창조함으로써 해소하는 걸까? 어째 작품에서도 그래픽 디자인의 엄격함이 묻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일견 삐딱함이 엿보인다. 다시 한번, 기름으로 그리는 얼음이라는 발상 자체부터 그렇다.
물론 이처럼 흥미로운 작품 또한 쉽게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얼마든지 고칠 수도 있겠지만 일단 오브제인 얼음 자체가 투명해야 그릴 맛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투명한 얼음은 다짜고짜 물을 얼리기만 하면 일궈낼 수 있는 게 아니다. 맑고 깨끗한 듯 보이는 물도 미네랄이나 불순물을 품고 있어 그냥 얼리면 가운데가 뿌예진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은 바깥에서 안으로 얼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미네랄과 불순물 또한 차츰 안으로 밀려 들어와 몰린다. 얼음 틀에 수돗물을 담아 냉동실에서 얼린 얼음이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얼린 건 ‘아마추어의 얼음’인데 급할 때는 그럭저럭 제 몫을 해낸다. 인스턴트 냉면이랄지 아이스 커피 같은, 차게 먹어야 제맛인 음식과 음료의 온도를 금방 낮춰주는 상황 말이다. 한마디로 집의 테두리 안에서는 나쁘지 않은데 밖으로 눈을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이나 입, 혀로 느끼는 차가움도 중요하지만, 눈으로 보는 투명함 또한 갖춰줘야 청량감이 배가된다. 작품의 배경일 가능성이 높은 바 같은 곳이라면 불투명한 얼음은 발을 들여놓을 여지가 없다.
'아마추어의 얼음'은 이렇게 가운데가 뿌옇다. / 사진 출처. unsplash
그렇다면 프로의 공간에서는 어떤 얼음을 쓰는가? 너무 뻔한 대답 같지만 역시 프로가 얼린 얼음을 쓴다. 24~72시간 동안 천천히 얼려 기포나 불순물이 없는 얼음을 맥락에 맞게 절단 가공한다. 온더록스잔이라면 작품과 같은 정육면체로, 소위 하이볼 글라스처럼 긴 잔에는 직육면체, 즉 기둥 모양으로 자르거나 깎아 가공한다.
집에서도 이처럼 투명한 얼음을 얼릴 수 있다. 가정용 칵테일 제빙기도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고, 작은 아이스박스를 활용하는 요령도 있다. 물을 담아 냉동고에 얼리면 아이스박스가 일종의 완충 작용을 해줘 천천히 투명하게 얼려 준다. 유튜브에도 넘쳐날 정도로 많은 바텐더가 앞다투어 그럴싸한 얼음 얼리는 요령을 가르쳐준다.
그래서 따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데, 막상 행동에 옮길라치면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번거롭다는 걸 단박에 깨닫게 된다. 따라서 좀 시시하지만, 편의점 돌얼음을 사서 쓰는 게 좋다. ‘돌’얼음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단단하면서도 투명해 아마추어의 얼음 따위 다시 쓰고 싶지 않게 만들어 준다. 요즘은 천천히 녹는 게 미덕인, 온더록스용 둥근 얼음마저도 편의점에서 살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처럼 단단하고 맑고 투명한 얼음을 썼다고 해서 바에서 칵테일을 마냥 눈으로만 마시면 곤란하다는 말을 덧붙인다. 충분히 서서히 녹기는 하지만 온도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칵테일에는 얼음을 많이 쓴다. 따라서 전성 시기(시간?)는 고작 5~10분, 미적거리기보다 빨리 잔을 비우는 게 우리 자신은 물론 칵테일을 들어 준 바텐더에게도 예의다. ‘원샷’까지는 아니더라도 주저 없이 들이키는 정도를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