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이었다. 나는 영국 남부 도시의 미술관에서 사무라이 갑옷과 일본 미술품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사무라이 갑옷은 이국적이었다. 갑옷이 낯설어서가 아니었다. 19세기 빅토리아 시대풍으로 꾸민 미술관이 주는 분위기 탓이었다. 다른 아시아 박물관에서 그 갑옷을 보았다면 큰 감흥 없이 지나치지 않았을까? 빅토리아 시대 인테리어 안에서 마주친 중세 일본 갑옷은 유독 이국적으로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빅토리아 시대 영국인이 가진 시선으로 갑옷과 일본 미술품을 관람하게 되었다.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외관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외관 / 사진. © 김선경
사무라이 갑옷을 마주한 곳은 영국 본머스에 위치한 러셀 코츠 미술관(Russell-Cotes Art Gallery and Museum)이다. 이 미술관은 한 남자의 병에서 비롯되었다. 100여 년 전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던 영국 신사는 색다른 처방을 받았다. 더 따뜻한 도시로 이사 가라는 처방이었다. 약만으로는 병을 떨쳐내기 어려울 정도였던 모양이다. 이미 중년이던 사내는 의사가 내린 처방에 따라 영국 남부 해안 도시 본머스(Bournemouth)로 이사했다. 그리고 남은 생을 그곳에서 보낸 뒤 이 미술관을 남겼다. 이 이야기 속 주인공은 머튼 러셀 코츠(Merton Russell-Cotes, 1835~1921)이다.

본머스는 영국인이 사랑하는 휴양 도시이다. 머튼은 본머스에서 로열 배스 호텔(Royal Bath Hotel)을 운영했다. 호텔 경영은 성공적이었다. 많은 유명인이 그의 호텔에 머물렀다. 훗날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웨일스 공(Edward VII, 1841~1910)과 유미주의의 대표주자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1900) 그리고 배우 헨리 어빙(Sir Henry Irving, 1838~1905) 같은 인사가 호텔을 찾았다. 호텔을 경영해 상당한 부를 쌓은 머튼은 언덕을 조금 더 올라간 곳에 집을 지었다. 66번째 생일을 맞은 아내 애니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는 1901년에 그 집을 완공했다. 빅토리아 여왕이 생을 마감한 해였다. 이 집은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마지막 건축물인 것이다. 1922년에 머튼이 세상을 떠난 뒤 이 집은 부부의 컬렉션을 품은 러셀 코츠 미술관이 되었다.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에서 보이는 바다 경관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에서 보이는 바다 경관 / 사진. © 김선경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자 이 집의 진가를 알 수 있었다. 집은 본머스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원하게 낸 큰 창문 너머로 하늘과 바다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탁 트인 전망에 가슴이 시원해질 정도였다. 전망만 따지면 여태 방문한 미술관 가운데 으뜸이었다. 미술관 건물은 세 개의 커다란 입방체가 맞붙은 형태였다. 두 개의 원뿔형 지붕 사이에 각뿔대 지붕 놓여있었다. 들쑥날쑥 지붕은 오히려 리듬을 만들어내며 휴양지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러셀 코츠 부부는 다른 동시대 수집가와 비슷하게 클래식한 미술 취향을 가졌다. 역사와 신화를 바탕으로 한 아카데믹한 대형 회화에서부터 풍경화와 초상화 그리고 이상적 신체를 다룬 조각이 컬렉션의 주를 이뤘다. 또한 당대에 유행한 아르누보(Art Nouveau) 양식인 장식미술품들도 많았다. 미술관은 상설 전시 외에 6개월마다 특별전을 연다. 내가 미술관을 찾은 2025년 여름에는 자화상 공모전을 열고 있었다. 고전적 공간 안에서 동시대 작가의 실험적 자화상을 보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컬렉션 전시 전경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컬렉션 전시 전경 / 사진. © 김선경
미술관 안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일본 관련 소장품을 모은 방이었다. ‘미카도의 방’이라는 전시실이었다. 눈길을 끈 사무라이 갑옷도 이곳에 있었다. 그 방에서는 러셀 코츠 부부의 취향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전시실에서 만난 클래식한 회화와 조각이 당대 영국 상류층의 전형적 취향인 것과 대조적으로 말이다. 러셀 코츠 부부는 1885년에 일본을 방문했다. 이사를 하라고 조언한 의사가 여행을 처방으로 내린 것이다. 따뜻한 본머스에서도 머튼의 병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부부는 처방에 따라 세계 곳곳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일본에 들리게 되었다.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미카도의 방'에 전시된 사무라이 갑옷 / 사진. © Russell-Cotes Art Gallery&Museum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미카도의 방'에 전시된 사무라이 갑옷 / 사진. © Russell-Cotes Art Gallery&Museum
부부가 일본에 한눈에 반했다는 것은 일본에서 가져온 물품을 담아온 상자가 100개도 넘었다는 이야기로 짐작할 수 있었다. 미술관을 짓기 전에도 머튼이 경영하던 호텔 안에 일본에서 수집한 물건을 전시할 방을 따로 마련했다고 한다. ‘미카도’는 일본에서 천황을 직접 부르지 않기 위해 사용한 표현이다. 이 단어가 서양에 전해질 때는 천황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미카도의 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전시실 천장에는 일본 메이지 천황의 초상도 그려 놓았다.

일본은 19세기 중반 이후 더 활발하게 서양과 교류했다. 그 덕에 일본 도자기와 칠기 그리고 직물 같은 공예품이 유럽으로 많이 건너왔다. 일본 문물이 얼마나 유럽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일까? 자포니즘(Japonism)이라는 문화적 유행까지 낳았으니. 일본은 유럽인에게 단순한 교역 상대가 아니었다. ‘먼 동쪽’에 있는 신비롭고 아름다운 문화를 가진 나라로 비쳤다.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러셀 코츠 부부 역시 일본 문화에 깊게 빠져들지 않았을까? 이해하려고 애를 쓰면서도 내 감정은 조금 복잡했다. 러셀 코츠 부부가 일본을 찾은 시기는 1880년대 중반이다. 메이지 유신 이후 10여년이 지나서이다. 사무라이의 시대가 끝나고 일본이 근대 국가로 빠르게 재편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은 조선을 식민 지배하게 된다. 이 사실을 떠올리자 서양이 일본에 열광했다는 사실을 낭만적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 일본에서 영감 받은 장식 연못을 설치해두었다. / 사진. © 김선경
영국의 러셀 코츠 미술관 내부. 일본에서 영감 받은 장식 연못을 설치해두었다. / 사진. © 김선경
‘미카도의 방’에서는 유럽이 열렬하게 사랑한 일본의 수출품인 도자기와 같은 화려한 공예품과 함께 도시락통이나 젓가락 같은 생활용품들도 함께 볼 수 있었다. 일본 문화에 빠졌던 러셀 코츠 부부는 막상 일본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현지 음식 대신 가져간 소고기 통조림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보고 웃음이 나왔다. 기껏 먼 나라에 여행 가서 통조림을 먹었다니.

미술관에서는 일본 관련 소장품 외에도 부부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모은 수집품을 볼 수 있다. 부부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포함한 남반구의 섬 지역은 물론 북미와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를 여행했다. 여행에서 돌아올 때마다 상자 가득 물건을 채워왔다고 한다. 그 수집품은 집안을 가득 채웠다. 미술관은 부부가 세계 곳곳을 직접 여행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바다 너머의 아름다움을 집으로 가져왔다고 설명한다. 이 설명은 러셀 코츠 부부를 따뜻한 마음과 호기심을 지닌 여행자로 보이게 만든다.

다른 나라를 방문할 때 낯선 물건을 모으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여행을 기억 속에 오래 붙잡아 놓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으니까. 그 수집이 미술관을 열어 다른 이와 함께 나눌 수 있을 만큼 많아졌을 때에 느끼는 만족감이란 말로 할 수 없이 클 것이다. 그 마음은 이해하면서도 미술관이 부부의 수집을 묘사하는 방식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어려웠다. 러셀 코츠 부부는 영국인이었고 그들은 제국 시대에 살았다. 그 시절에 그들이 방문한 나라는 대부분 영국 식민지이거나 영국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 그들의 수집을 낭만과 호기심만으로 바라보는 게 불편했던 것은 내가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를 배경으로 살아온 한국인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김선경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