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언어로 비시각적 경험을 이끌어낸 예술가, 데이비드 린치

삶의 길목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 뜻하지 않은 영향력을 끼치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었던 사람. 영화감독이자 화가, 작가, 음악가로서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고, 작년 1월 16일에 하늘나라로 향한 예술가 데이비드 린치(David Keith Lynch)가 그런 존재였다.
사진. ⓒAfifestpublicity, 출처. IMDb
사진. ⓒAfifestpublicity, 출처. IMDb
그가 세상에 남긴 영화 <이레이저헤드(Eraserhead, 1977)>, <엘리펀트 맨(The Elephant Man, 1980)>, <듄(Dune, 1984)>, <블루 벨벳(Blue Velvet, 1986)>, <로스트 하이웨이(Lost Highway, 1997)>,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ive, 2001)> 등을 보면, 누구도 본 적 없었던 이미지들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에 놀라고 꿈과 현실, 폭력과 일탈, 밝음과 어둠, 순수와 타락이 섞인 이야기가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흘러가는 것에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 그대로 “그는 모든 것을 이상하고 기괴하며, 계시적이며, 새롭게 만들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타협하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의 작품들은 이제 영화사적으로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데이비드 린치가 각본, 연출, 제작까지 맡았던 TV 시리즈 <트윈 픽스(Twin Peaks, 1990~91, 2017)> 역시 드라마를 예술적 지평으로 끌어올린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평단에서 회자된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포스터 / 사진출처. IMDb
데이비드 린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 포스터 / 사진출처. IMDb
화가로서도 명성을 날린 그는 마치 라디오헤드의 <KID A> 앨범 자켓으로 쓰일 법한 초현실주의 회화를 많이 남겼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프랜시스 베이컨의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그의 회화는 몽상의 축소판이었다.

인간의 심연을 깊게 파고들어 몽환적인 상황을 자신의 문법으로 표현했던 그는 (영화, 회화 같은) '시각 언어'로 (꿈, 환상, 공포 같은) '비시각적 경험'을 이끌어 낸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들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고, 강렬한 시청각적 자극들로 항상 논란을 일으켰지만, 자신이 어떤 의미'부여도 설명도 하지 않았다. 관객의 경험을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데이비드 린치는 오직 보는 이의 '자유연상'만이 자신의 작품들을 살아 숨 쉬게 한다고 믿었다.

데이비드 린치의 흔적을 따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출장 일정 막바지에 문득 데이비드 린치가 생각났다. 지난 15일 무작정 차로 그가 살았던 집을 찾기 위해 그의 영화 제목과 같은 '멀홀랜드 드라이브'로 향했다. 할리우드의 야경을 가장 아름답게 조망할 수 있는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역설적으로 LA에서 추락과 자살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다. 굽이굽이 아슬한 도로를 소재로 데이비드 린치는 할리우드 신화의 장송곡을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 담아냈다. 그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은 죽음과도 맞닿아 있을 정도로 치명적이다. <로스트 하이웨이> OST ‘I’m Deranged’, ‘The Perfect Drug’와 ‘Eye’ 등을 듣다 보니, 35년 넘게 그가 살았던 집에 도착했다.
LA 멀홀랜드 드라이브 / 사진. © 이진섭
LA 멀홀랜드 드라이브 / 사진. © 이진섭
그가 살았던 집은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레지던스 건물(핑크색)과 프로덕션 본부로 사용한 건물(그레이하우스), 그리고 <로스트 하이웨이> 영화에 나왔던 건물 등을 포함해 총 다섯 채의 건물이 이어진 대저택이었다.
데이비드 린치가 살던 저택 中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레지던스 건물 내부 / 사진출처. 인스타그램(@hellomarcsilver)
데이비드 린치가 살던 저택 中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레지던스 건물 내부 / 사진출처. 인스타그램(@hellomarcsilver)
데이비드 린치가 살던 저택 中 프로덕션 본부로 사용한 건물 / 사진. © 이진섭
데이비드 린치가 살던 저택 中 프로덕션 본부로 사용한 건물 / 사진. © 이진섭
10개의 침실과 11개의 욕실, 그리고 부지를 포함해 약 2,800평 정도의 규모인 린치의 저택은 그의 회화와 영화처럼 복잡하면서도 정밀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세계관 같았다. 특히, 햇빛 찬란한 LA에서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어둡고 으슥한 터에 자신의 레지던스를 지은 것은 아이러니했다. 최근 그의 저택은 1,500만 달러에 매물로 나와 화제가 되었다. 에이전시 담당자의 허락을 구하고, 집 외곽을 촬영한 후 영화 OST 곡들을 잠시 감상했다.
데이비드 린치 영화 <트윈픽스> OST / 사진. © 이진섭
데이비드 린치 영화 <트윈픽스> OST / 사진. © 이진섭
코카콜라, 담배, 커피가 놓인 소박했던 린치의 묘지

“꿈을 꾸는 사람마다… 고마워요. 꿈 속에서 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눠요.
(From one dreamer to another, thank you. in dreams, i talk with you)”
-데이비드 린치 묘비에 놓인 편지 中

린치의 마지막 숨결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어, 그의 무덤이 있는 할리우드 포에버 묘지로 향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감독이었으니, 무덤이 얼마나 화려할까 상상했던 찰나에 소박한 흑색의 묘비석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의 영화 같은 전개에 당황했다.

David Keith Lynch (1946~2025) “Night Blooming Jasmine”

비록 그의 작품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기괴한 표현이 난무하지만, 실제 그는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고, 유머 또한 넘치는 사람이었다. 일상에서도 항상 차분하고, 배우들에게도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했다. 또한 1970년대부터 하루에 두 번씩 초월명상(Transcendental Meditation)을 꾸준히 실천해 온 수행자이기도 했다.
데이비드 린치 묘비 앞에서 / 사진. © 이진섭
데이비드 린치 묘비 앞에서 / 사진. © 이진섭
반면, 린치는 담배를 하루에 두 갑 이상 피울 정도로 대단한 애연가였고, 작업실에 항상 코카콜라와 커피를 놓아둘 정도로 중독적으로 좋아했다. 그 때문인지 그를 추모하기 위해 묘지를 방문한 팬들이 묘비 주변에 코카콜라, 담배, 커피 컵 그리고 장미와 편지를 놓아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아무도 없던 묘지에 영화 <트윈픽스> 테마곡을 낮게 깔아 놓고, 챙겨간 코카콜라 캔 하나를 묘비 옆에 둔 채 눈을 감고 잠시 추모의 시간을 잠시 가졌다.

1월 15일 LA의 햇살은 따사롭고, 온화했다. 해질녘 나지막이 뜬 태양이 야자수 잎사귀의 틈새로 새어 들어와 찬란한 빛의 세례가 되어 ‘밤에 피는 자스민(데이빗 핀처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의 주변을 아름답게 해줬다. 고개를 들어보니, 멀홀랜드 드라이브 뒤편에 놓인 HOLLYWOOD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를 추모했던 모든 장면이 '린치적(linchian)'이었다.

▶[부고] 세상에서 가장 기괴한 자, 데이비드 린치 감독 별세
데이비드 린치 묘비 앞에서 HOLLYWOOD 사인 / 사진. © 이진섭
데이비드 린치 묘비 앞에서 HOLLYWOOD 사인 / 사진. © 이진섭
이진섭 칼럼니스트•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