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전설적인 붉은 말, 적토마(赤兎馬)가 등장한다. 여포와 조조의 싸움에서 조조가 승리하며 적토마는 그의 손에 들어왔고, 조조는 관우를 정치적으로 포섭하고 싶어서 이 귀한 말을 선물한다. 관우는 기뻐했다. 하지만 그 기쁨의 이유가 적토마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적토마를 타고 유비에게 달려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적토마는 빠른 말, 최고의 말이라는 의미를 넘어서서 관우의 충심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실체이며, 관우의 심장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정확히 드러낸 상징이자 화살표이다. 2026년, 붉은색과 불의 기운을 가진 ‘병(丙)’과 말을 뜻하는 ‘오(午)’가 만났다. 그래서 우리는 2026년을 병오년(丙午年), ‘붉은 말의 해’라고 부른다. 우리 각자가 마음에 품고 있는 붉은 말, 나의 적토마는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관우가 유비를 향해, 유비와 맺은 의(義)를 지키기 위해 적토마를 타고 하늘을 날 듯 천 리 길을 달려갔다면, 나는 무엇을 향해 자신의 적토마를 재촉하고 있는가.
발레에서도 관우가 적토마를 통해 영웅적 결단을 드러낸 것처럼 자신이 믿고 지켜야 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의지와 결단을 보여주는 작품과 장면이 있다. 아람 하차투리안(Aram Khachaturian, 1903~1978)이 1954년 작곡한 음악을 바탕으로 레오니드 야콥슨(Leonid Jakobson, 1904~1975)의 안무로 탄생한 <스파르타쿠스>다. 현재 1968년 유리 그리고로비치(Yury Grigorovich, 1927~2025)의 재안무작이 주로 공연되고 있는 이 작품은 제3차 노예전쟁 혹은 또는 검투사 전쟁으로 불리는, 로마 공화정에서 일어난 노예반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원전 73년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에서 스파르타쿠스와 검투사들이 집단 탈출해서 로마군에 맞선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발레 작품인 것이다. 남성 무용수들을 중심으로 강렬하고 역동적인 장면, 혁명과 반란을 주제로 한 접근은 주로 남녀의 연애담을 다루던 19세기 고전발레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
고대 로마에서 로마인들은 “노예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자”라고 생각했다고 하니 그들의 삶이 어땠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스파르타쿠스와 함께 반란을 결심한 검투사들은 그런 상황과 운명을 향해 칼날을 겨누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을 향해 달려갔다. 1막에서 반란을 결심한 그들의 그랑 제테와 3막에서 스파르타쿠스의 양손에 칼을 들고 선보이는 그랑 제테와 높게 뛰어오르는 동작들은 그 결심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폭발적으로 보여준다. 그 모습은 마치 신념의 적토마를 타고 그들이 믿는 이상의 세계를 향해 날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랑 제테는 몸을 공중으로 띄우며 두 다리를 180도나 그 이상으로 찢어서 뻗어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는 동작이다. 때로는 한 다리의 무릎을 살짝 구부려서 애티튜드 포즈로 그랑 제테를 하기도 한다. 제테는 프랑스어로 ‘던지다’의 뜻을 갖고 있는만큼 이 동작이 볼 때 종종 자신이 믿거나 사랑하는 그것을 향해 온 몸을 던지는 열정을 느끼게 된다. 발레에서 말의 움직임을 동작으로 만든 ‘파드슈발(pas de cheval)’이 있지만 파드슈발이 말의 다리 관절 움직임에 주안을 둔 발레 언어라면, 말의 날아가듯 달리는 기개와 닮은 것은 그랑 제테 쪽이 더 가깝다.
병오년 새해, 흰 말과 검은 말이 균형을 이루면 한 마리의 붉고 정열적인 말이 되어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국지연의』에서도 붉은 말, 적토마는 여포의 손에 있을 때는 공포였지만 관우의 손에서는 신의였다. 그 적토마가 명마로 불린 이유는 결국 속도가 아니라 상징 때문이었다. 우리 안의 붉은 말은 어떤 의미를 태우고 달려가고 있는가. 그 붉은 말이 그랑 제테하며 달려가는 방향은 어디인지, 착지하고자 하는 지점은 어디인지, 왜 그곳이고 싶은지 돌아보는 1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