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름다움은 무엇으로 가늠할 수 있을까? 하늘 위로 솟아오른 첨탑의 높이일까? 아니면 그 꼭짓점에서 밤하늘을 밝히는 화려한 불빛들일까? 도시를 이루는 공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정도를 아름다움의 척도로 생각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한다면 런던은 꽤 높은 순위에 자리할 것이다.

수백 년을 이어져 온 구부러진 좁은 골목, 사선으로 뻗어있어 어디로 연결되는지 예측할 수 없는 비효율적인 구획, 그런 길을 헤매다 뒤를 돌아보면 뾰족한 모퉁이에 고전 문학을 읽을 때마다 상상이 잘 안되어서 괴롭혔던 빅토리아 양식의 현관과 그보다 그리 넓지 않은 폭의 건물 입면이 그 뒤에 꽤 깊숙한 공간을 감추고 있다. 또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듯한 창문과 벽 아래에 그 어느 도시보다 새롭게 보이는 디자인의 쇼윈도가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다. 그런가 하면 길을 걷다가 야성적 근육질의 건물과 마주치기도 하고, 그 바로 옆에는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투명하게 비추는 모더니즘 빌딩이 자연스럽게 대조가 아닌 조화를 이루고 있기도 하다. 심지어 마천루 모양도 서로 경쟁하듯 솟아오르는 미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비스듬히 깎인 빗면이 많은 이 빌딩들도 서로 관계를 맺으려는 것 같다.

양식과 시대는 제각각인데 묘하게 그것들이 한 번에 그은 듯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이 도시는 마치 하나의 콜라주 같다. 그 모든 걸 하나로 잇는 건 천천히 도시의 구석구석을 누비는 여행자의 발걸음이다. 벽돌 사이로 삐져나온 덩굴식물처럼 도시의 틈새로 비집고 들어간 발걸음이 여러 공간을 하나의 유관한 움직임으로 잇는다.

물론 오버 투어리즘으로 시달리는 대도시에선 언제나 적대심도 마주하게 된다. ‘여기는 너희를 위한 곳이 아니야.’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미묘한 방식으로 거절의 태도를 드러내는 얼굴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몇 걸음이나 남아있는 나를 위해 문을 잡아주고 있는 매너에 놀라기도 한다. 그렇다. 이 도시의 공간들이 이처럼 서로 연결되고 유기적 관계를 맺은 듯 느껴지는 건, 이처럼 여전히 남아있는 신사의 매너처럼 혼자서 화려한 외양을 드러내려 하기보다 주변 공간과 관계를 맺는 것을 더 중시하는, 자신을 낮추고 웅크리고서 그 핵심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위해 내어주는 그런 공간들이 사이사이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 뉴 체인지에서 본 세인트 폴. / 사진. © 박정민
원 뉴 체인지에서 본 세인트 폴. / 사진. © 박정민
원 뉴 체인지

원 뉴 체인지는 런던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소인 세인트 폴 성당 바로 옆에 위치한 쇼핑몰이다. 세인트 폴 성당 주변은 사람들이 정말 많다. 많은 사람이 경쟁하듯 사진을 촬영한다. 전문 사진가를 대동한 커플들도 간혹 보인다. 하지만 원 뉴 체인지에서 바라보는 세인트 폴 성당의 모습 또한 꽤 포토제닉하다. 연이어진 흐리고 서늘한 날씨 끝에 모습을 드러낸, 햇살을 받은 바로크 양식 성당의 둥그런 돔이 기울어진 양쪽의 유리 월에 의해 세 개로 나누어진다. 하지만 이곳에는 생각보다 관광객이 많지 않다. 양쪽으로 갈라진 이 틈은 이곳을 가로지르는 주요 동선이다. 이 공간의 동선은 중심부를 정확히 십자로 가로지르며 주변 동선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 원 뉴 체인지의 외관을 처음 보았을 때는 무작위로 깎인 듯한 반짝이는 외벽을 세공된 보석처럼 보이려는 의도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해였다. 근처 골목을 돌아다니며 자꾸 보다 보니 그 형태와 질감이 주변과 연결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사율이 높은 유리는 하늘과 주변의 건물, 사람들의 움직임을 투영하고, 또 어느 쪽에서 보던 옆에 있는 건물의 높이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깎여있다.
원 뉴 체인지. / 사진. © 박정민
원 뉴 체인지. / 사진. © 박정민
위 사진은 성당 반대편의 골목에서 원 뉴 체인지를 바라본 모습인데 성당 부속 학교 건물의 옥상으로 그 선이 이어진다. 반대편에서 보아도 마찬가지다. 한번은 강 반대편에서 이 건물의 지붕을 찾아보려 했었는데 마치 숨은그림찾기처럼 숨어있어 찾기 힘들기도 했었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은 한국에서 공간 디자인을 공부했던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리움미술관을 구성하는 세 공간 중 한 곳을 설계한 프랑스의 건축가 장 누벨이다. 리움미술관 중에서도 인증샷으로 인기가 많은 다른 두 건물과 달리 그가 설계한 건물은 어둡게 갈무리되어있다. 하지만 전시 공간에서의 경험은 내게는 가장 좋았었다. 외부에서 보았던 투박한 검은 상자들의 안쪽 면이 각 작품에 대한 집중도를 높이고 그 사이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전시실을 은은하게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원 뉴 체인지. / 사진. © 박정민
원 뉴 체인지. / 사진. © 박정민
원 뉴 체인지는 얼핏 보면 화려한 쇼윈도의 쇼핑몰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그 예측할 수 없는 형태는 주변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몸짓이다. 이 공간의 의도를 설명하며 장 누벨은 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How do we build next to St Paul’s Cathedral in a way that pays homage and is in dialogue?” 1)

원 뉴 체인지에서 시작한 발걸음은 세인트 폴 주변을 한 바퀴 돌며 과거 축산 산업의 핵심이었던 파터노스터 광장에 잠시 머문다. 커다란 아치문을 통과하면 수많은 사람이 성당 앞 계단에서 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이 보인다. 계속 나아가서 성당 남쪽으로 가면 저 멀리 수많은 사람이 하나의 점이 되어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사람들이 붐비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마저도 이끄는 묘한 풍경이다. 바로 밀레니엄 브리지다.

밀레니엄 브리지

밀레니엄 브리지는 런던의 템스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보행자 전용 다리다. 이곳을 설계한 이의 이름도 화려하다. 영국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노먼 포스터가 운영하는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가 설계를 담당했고, 조각가와 엔지니어링 회사도 참여했다.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의 공식 소개에는 기술적 측면이 강조된다. 하지만 내 생각에 이 다리의 핵심은 보행로에서 수평하게 이어져서는 은은하게 높아졌다가 낮아지며 그리는 호를 통해 형성되는 시각적 효과다. 다른 유명한 다리들이 색채와 형태, 구조적 패턴의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뽐내는 것과 달리 이 다리는 오히려 멀리서 바라보면 평범하다. 색도 평범하고 그냥 다리다.

하지만 이 다리를 향해 서서히 걸어가는 순간에 눈앞에서 거리와 공간에 대한 감각에 변화가 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초망원렌즈로 시각의 깊이를 압축하는 영화의 장면들처럼 이 다리에도 그런 망원렌즈 효과 같은 것이 있다.
밀레니엄 브리지의 시각효과. / 사진. © 박정민
밀레니엄 브리지의 시각효과. / 사진. © 박정민
사진으로 담아보아도 그 효과가 유지된다. 위 사진은 광각(27mm)에 속하는 화각으로 촬영되었는데 이 은은한 호가 다리 위를 걷는 사람들을 평면적으로 겹쳐 보이게 만들면서 마치 망원렌즈로 촬영한 듯한 효과를 보인다.

그리고 테이트 모던 미술관이 있는 강의 남쪽에서 다리를 내려갈 때 그냥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좌우로 갈라졌다가 다시 한가운데로 합쳐지며 수변 보행로로 연결되는 데 이 경사로에 설치된 유리 레일이 또 한 번 시각적 효과를 일으킨다. 저 멀리 세인트 폴 성당, 그 위를 걷는 사람들, 또 달리는 사람들이 한 번에 겹쳐 보이고 또 그 반영들도 뒤섞이며 그 모든 공간을 하나의 평면으로 압축한 듯 느껴진다.
밀레니엄 브리지의 시각효과. / 사진. © 박정민
밀레니엄 브리지의 시각효과. / 사진. © 박정민
다리에서 빠져나와 남쪽 강변을 걸으며 다리를 다시 한번 돌아보면 다리 위로는 뱅크 지구의 빛나는 실루엣이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도시처럼 보이고 그 아래로는 오랜 세월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강변의 낮은 건물들이 양분되어 보인다.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본 뱅크 지구. / 사진. © 박정민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본 뱅크 지구. / 사진. © 박정민
이 시각적 효과 때문에 자꾸만 걷고 싶어진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이 다리를 여섯 번 정도를 건넜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이름이 단지 새천년을 상징한다기보다 시간과 시대를 잇는 의미로 느껴진다.

한때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녔던 국가인 만큼 이 도시에는 많은 것들의 원조가 있는데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세먼지의 원조인 스모그라는 단어는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게다가 이 밀레니엄 브리지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유는 강으로 양분된 강북과 강남의 격차를 잇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그 의도를 생각해 보면 이 평범한 다리는 정말 평범한 다리가 아니다.

관광지에선 사람들의 파도에 떠밀리며 한낱 포말이 되어버리는 기분을 느끼기 쉽다. 하지만 이 주변을 거닐다 보면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음에도 떠밀린다기보단 어느 방향으로든 연결되고 이어지는 이 공간 속에서 함께 관객인 동시에 배우가 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 근간에는 도시의 중심이 되기보다 낮은 곳에서 그 도시의 움직임을 지지하는 역할을 자처하는 이 원 뉴 체인지와 밀레니엄 브리지와 같은 공간들이 몸짓을 웅크리고 주변과의 조화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발걸음은 모두에게 열려있다며 대문짝만한 메시지를 외벽에 적어둔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추천한 디지털 지도 위의 스팟이 아닌 스스로 예측하지 못한 즐거움을 중시하는 도시 여행자라면 아마도 이 1킬로미터가량의 단순한 경로를 3킬로미터, 혹은 5킬로미터까지도 늘어뜨리며 여행 가이드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수많은 즐거움의 공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밀레니엄 브리지. / 사진. © 박정민
밀레니엄 브리지. / 사진. © 박정민
박정민 칼럼니스트


1) The Ateliers Jean Nouvel (https://www.jeannouvel.com/en/projects/one-new-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