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독일 작곡가 카를 마리아 폰 베버(1786~1826)의 탄생 240주년이자 서거 200주년이 되는 해다. 그는 ‘오베론’, ‘오이리안테’ 등의 오페라를 썼고 클라리넷 협주곡 두 곡을 비롯해 관악기를 위한 명작들도 남겼지만 가장 사랑받는 작품을 꼽자면 단연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다.

베버는 런던 연주 여행 중 사망했고 이곳에 묻혔다가 자신이 카펠마이스터(악장)로 활약했던 드레스덴으로 1844년 돌아왔다. 이장식을 주도한 인물은 당시 드레스덴의 카펠마이스터였던 리하르트 바그너였다. 안장식에서 바그너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독일인의 것이며, 독일인의 삶 속의 밝은 날이며 그 피 한 방울이고 심장의 파편입니다. 당신보다 더 독일적인 작곡가는 없었습니다.”

그 말대로 오늘날 ‘독일 정신의 정수’로 꼽히는 바그너의 음악극들은 베버 없이, 특히 ‘마탄의 사수’ 없이는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오페라 3막에서 여주인공 아가테는 명상적인 아리아 ‘구름이 하늘 가려도(Und ob die Wolke sie verhülle)’를 부른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태양은 그 위의 천궁(天宮)에 있다.
그곳은 거룩한 의지가 지배하나니
세상은 맹목의 우연을 받들지 않노라(…).”

[베버 ‘마탄의 사수’ 중 ‘구름이 하늘 가려도’]

여기서 아가테는, 대본작가는 ‘거룩한 의지’와 ‘맹목의 우연’을 대립시킨다. 이 둘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오페라에서 아가테의 연인 막스는 사격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할 경우 아가테를 경쟁자에게 빼앗기게 된다. 최근 사격 성적이 좋지 못했던 막스는 불안한 나머지 꼬임에 넘어가 악마 자미엘과 거래를 한다. 자미엘이 주는 총알 일곱 발을 받으면 첫 여섯 발은 막스가 원하는 곳에 적중하지만, 마지막 일곱 번째 발은 자미엘이 원하는 곳에 맞게 된다는 것이다. 거래의 결과로 막스는 여섯 발을 맞춰 사격대회에 우승하고, 영주는 우승 기념으로 나무 위의 비둘기를 겨냥해 맞춰 떨어뜨리라고 명한다. 그 결과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다르게 나타난다.

국립오페라단은 2005년 독일의 유명 연출가 볼프람 메링을 초청해 ‘마탄의 사수’를 공연했다. 다음은 당시에 내가 쓴 리뷰 일부다.

“오페라 ‘마탄의 사수’는 3막 아가테의 노래에도 나오듯 ‘거룩한 의지(Heiliger Wille)’와 ‘맹목의 우연(Blinder Zufall)’의 대립을 다룬 드라마다. 연출가 메링은 이 작품의 대립구도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그는 원래 극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신의 대리인 ‘은자(Eremit)’가 첫 막부터 무대를 내려다보도록 했다. 무대 위의 장치를 이리저리 옮기는 일은 검은 옷을 입은 악마 자미엘의 부하들이 맡도록 했다. ‘우연’이 지상의 자잘한 사건들을 만들어내지만, ‘의지’는 이 모두를 통찰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상징 연출이었다.”

3년 뒤 메링은 국립오페라단의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연출하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국립오페라단 관계자는 “3년 전 ‘마탄의 사수’ 리뷰를 쓴 기자”라고 나를 소개했다. 메링은 “당시의 아름다운 글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의도를 잘 파악했었다는 증거로 여겨져 나름 뿌듯했다.

다시 긴 시간이 흐른 뒤 2024년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은 2년 동안 공연할 작품으로 필리프 슈퇼츨 연출의 ‘마탄의 사수’를 선택했다. 다음은 이곳의 공연을 보고 쓴 리뷰 일부다.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마탄의 사수’는 거룩한 의지의 승리를 노래한 원작을 뒤집었다. 원작에서 2막의 마술 탄환 제조 장면에만 등장하는 악마 자미엘은 이번 무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누비며 주인공들의 행위를 조종했다. ‘이 지상은 마성과 맹목의 우연이 지배하는 곳’임을 선언하는 것 같았다.(…) 이후 극은 일종의 ‘플래시백’이 되고, 끝부분에서 연출가는 또는 악마 자미엘은 처음에 제시한 결말을 스스로 철회한다. 그 모든 과정이 악마의 계획과 지배 아래 이뤄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그랬다. 브레겐츠의 ‘마탄의 사수’는 마치 메링의 연출을 의식해 반대로 뒤집은 듯했다. 온갖 사건이 극 속에서 진행되는 가운데, 메링은 신의 대리인인 ‘은자’가 극 전체를 내려다보도록 했다. ‘맹목의 우연’에 대한 ‘거룩한 의지’의 승리다. 반대로 슈퇼츨은 극 전체를 악마 자미엘이 개입하도록 한다. ‘거룩한 의지’에 대한 ‘맹목의 우연’의 승리다. 이 점에서 이 연출은 그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악마적’이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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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의 리뷰에서 나는 “의지와 우연의 대립은 독일 전통사회에 유입된 기독교 신앙과 기존 게르만 민속신앙의 대립이기도 하다”라고 썼다. 돌아보면 과잉 해석이었던 듯하다. 민속신앙에서도 ‘우연’이 모든 것을 지배하도록 버려두지는 않는다. 확고하며 예상 가능한 원리가 자신들의 앞날에 놓여있기를 바라는 것은, ‘악’의 지배를 받기 원하지 않는 것은 기독교 유입 이전의 사람들도 같다.

분명한 것은,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작곡가와 대본작가인 프리드리히 킨트가 ‘거룩한 의지’와 ‘눈먼 우연’의 대립을 선택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과거에나 오늘날에나 사람들은 ‘설계된 세계’와 ‘우연이 선택하는 세계’의 대립에 매혹된다. 유일신의 지배를 확고히 믿던 시대에는 세상이 의지에 의해 흘러간다고 생각했지만,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결정론을 벗어난 세계관에 더 이끌리는지도 모른다.

특히 현대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과학의 결정론적 성격을 뒤흔든 확률론적 세계관의 근본이 되었다. 닐스 보어와 하이젠베르크에 의한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은 미시 세계의 사건이 근본적으로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이 이에 대해 거부감을 표현한 일화는 유명하다. 동료 물리학자 막스 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양자역학은 경이롭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게 진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된 분(창조주)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썼다. 이 말을 들은 닐스 보어는 “신에게 이래라저래라하지 말라”고 응수했다고 한다.
200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공연 모습 / 사진출처. ⓒ Korea National Opera
2005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국립오페라단 '마탄의 사수' 공연 모습 / 사진출처. ⓒ Korea National Opera
이 세상의 변화와 모든 과정은 신의 대리인 ‘은자’가 대표하는 ‘거룩한 의지’에 따른 것일까, ‘자미엘’로 대표되는 ‘맹목의 우연’에 따른 것일까?

내가 오페라 연출가라면, ‘마탄의 사수’ 무대에 고양이와 상자를 등장시킬 것 같다. 물리학자 슈뢰딩거가 ‘코펜하겐 해석’을 비판한 이른바 ‘슈뢰딩거의 고양이’를 상징하는 소품으로서다. 상자를 열었더니 신부 화환 대신 고양이가 튀어나온다면 어떨까?

오페라 ‘마탄의 사수’의 서곡은 현의 도입부에 이어지는 유명한 호른 4중주로 시작된다. 이 선율은 찬송가로도 쓰이고 있다. 그 가사는 의지의 지배를 강조한 원곡의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 같다. 독일어로는 ‘Mein Jesu, wie du willst’, 한국어로는 ‘내 주여 뜻대로’다.

[베버 ‘마탄의 사수’ 서곡 중 호른 4중주]

유윤종 음악평론가·클래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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