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입을수록 깊어진다…오버사이즈의 미학 [최혜련의 패션의 문장들]
크게 입는 옷, 감정을 숨기는 방식
‘버티는 시대’가 만든 실루엣
2026년은 장식 줄이고 로고 숨기는 게 대세
‘버티는 시대’가 만든 실루엣
2026년은 장식 줄이고 로고 숨기는 게 대세
2026년의 오버사이즈 트렌드는 더 이상 눈에 띄는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를 최소화하면서, 아이러니하게 더 분명한 신호를 보낸다. 오버사이즈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오버사이즈는 과거와 다르다. 이전에는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고, 스타일의 선택지 중 하나였다.
스트리트 패션은 원래 목소리가 큰 문화였다. 힙합의 오버핏은 존재 선언이었고, 스케이트 문화의 헐렁함은 규범에 대한 저항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스트리트는 다르다. 말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는다. 최근 몇 시즌 동안 발렌시아가, 오프화이트, 아크네 스튜디오 같은 브랜드들이 보여준 실루엣 역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볼륨은 커졌지만 메시지는 낮아졌고, 형태는 과장됐지만 태도는 차갑다. 이 옷들은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해석을 유예하는 데 더 가까워 보인다.
2026년 트렌드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장식의 축소다. 컬러는 무채에 가깝고, 패턴은 사라지며, 로고는 의도적으로 숨겨진다. 발렌시아가 이후의 하이엔드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점점 더 로고를 지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미니멀리즘의 귀환이라기보다, 과잉된 자기표현에 대한 피로의 반영이다.
오버사이즈는 ‘아직 젊다’는 신호가 아니라 ‘지금은 버티는 중’이라는 신호다. 그래서 오늘날의 스트리트는 활기보다 안정에 가깝다. 눈에 띄기보다는 마찰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멋을 위해 에너지를 쓰기보다, 소모되지 않기 위해 옷을 고른다. 실제로 최근 스트리트 룩에서는 기능성 소재, 여유 있는 패턴, 중립적인 색감이 반복된다. 이는 유행이기보다 생활 방식에 가깝다.
스트리트는 늘 런웨이보다 현실을 먼저 반영해왔다. 런웨이가 이상을 제시한다면, 거리는 생존을 기록한다. 지금 거리에는 낙관이 없다. 대신 계산이 있다. 옷은 커졌지만 자유는 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옷들은 말한다. 지금은 조심해야 할 시기라고. 과장된 실루엣 안에는 절제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거리는 지금을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크게 입는다는 건, 요즘을 버티는 방식이다. 그것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생존의 방식이다. 오버사이즈는 더 이상 스타일이 아니다.지금을 살아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