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준은 보리의 일상의 그림자이다.

평양의 외교관으로 와 있는 보리는 자신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한국인’의 정체성 때문에 그리고 복주 때문에 몇 년째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연기 신청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평양을 떠나야 하고 복주와 헤어져야 하는 것이 못내 힘겨운 보리는 괴롭기만 하다.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보리와 복주는 여느 연인들처럼 손을 잡고 걸을 수도 없다. 둘이 같이 있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도 좋을 것이 없다. 서방 외교관인 보리는 평양에서는 물에 뜬 기름처럼 겉돌 수밖에 없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감시당하고 보고되고 있으며 그런 서구인에게 마음을 주는 것을 들키게 되면 복주의 삶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

보리에게는 아침부터 퇴근까지 늘 통역관 명준이 따라붙는다. 눈치챌 수 있듯이 명준은 단순한 통역관이 아니다. 보리를 감시하고 보고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퇴근 후 명준은 보리의 아파트 건너편 숙소로 들어가 헤드폰을 끼고 보리의 방의 소리를 듣는다.

낯선 타지에서 의지할 곳도 친구도 없는 보리는 일상의 대부분을 같이 보내는 명준과 가까워지고 싶어 하지만 명준은 늘 그 마음을 차갑게 쳐낸다.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게 보리와 동행하고 보리가 만나는 사람을 파악하고 보리가 하는 말을 듣고 보리의 행동을 보면서 명준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되었을까.

결국 보리가 고국으로 떠나기 직전, 그 파문이 자신에게 어떤 것일지 알면서도 명준은 큰 결단을 내리고 행동에 나선다. 명준은 왜 그런 일을 했느냐는 물음에 ‘외로워서일 것’이라고 답한다.

보리도 복주도 외로운 사람들이었지만 명준 또한 그러했던 것이다. 보리의 모든 말과 행동, 일상과 삶을 수년째 지켜보던 명준은 어느새 자신의 외로움을 보리에게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반대로 보리의 외로움이 명준에게 진하게 전달되어 시너지를 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이 실낱같은 온기를 찾아 손을 내밀었고 그 손끝에 닿은 희미하고 아무것도 보장해줄 수 없는 온기에 비로소 숨을 고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애니메이션 <광장>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엘리자베트에게 갑작스럽게 큰 변화들이 찾아온다.

외도를 한 남편은 이혼을 요구하고 집까지 팔려고 하고 딸은 용감하게 자신의 삶에 뛰어들기 위해 독립을 했으며 생계가 막막해진 채로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데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경력이 단절된 채 십수 년을 살다 보니 모든 것이 낯설고 쉽지 않다.

에펠탑이 보이는 센 강변, 라디오 프랑스에서 매일 새벽 4시에 청취자들의 전화를 받는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는 ‘밤의 여행자들’은 엘리자베트가 즐겨 듣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그곳 전화교환원으로 일하게 되고 늘 귀로 듣던 프로그램을 눈으로도 지켜보고 전화를 연결해 주는 보조 역할을 하면서 천천히 자신과 타인의 삶을 느끼고 받아들인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런 그녀에게 탈룰라라는 아들 또래의 소녀가 등장한다. 프로그램 게스트로 온 탈룰라는 맑고 단정한 눈빛을 지녔지만 어린 시절부터 험난한 삶을 지나오는 중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어둠과 증오에 잠식된 흔적이 없이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일상을 살아내고 있는 듯 보인다. 엘리자베트는 갈 곳 없는 소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그녀의 호의에 탈룰라도 점차 자신의 일상을 안정되게 잡아나간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은 뭐랄까, 외롭고 쓸쓸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스함과 격려가 있다고 할까.

어느 날 갑자기 깨져버린 평온한 일상의 조각을 붙들고 아빠의 어깨에 기대어 울기도 하지만 용기를 내어 일자리를 찾고 라디오 프로그램의 보조로, 도서관의 직원으로 조금씩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면서 딸과 아들을 향해 할 수 있는 만큼 날개를 펼쳐주려 하는 엘리자베트의 모습은 안타깝고 안쓰럽기보다는 든든하고 미더워 보인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인물들은 나름의 아슬아슬함과 위태로움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맞잡을 수 있는 손이 있음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손을 내밀고 잡음으로서 용기와 신뢰를 조금씩 쌓아나간다. 그리고 그것은 각자의 삶을 지지해주는 기초가 되어 조금씩 발판을 견고하게 만들어준다.

이제 독립할 아들에게 엘리자베트는 예전에 썼던 자신의 일기장을 건넨다. 거기에는 심야 프로그램 ‘밤의 여행자들’에서 들었던 글이 쓰여 있다.

‘우리는 매번 아름다운 이방인이었고 밤의 여행자들이었다’

이방인은 외롭고 힘겹고 약한 이미지를 담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방인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여행자 또한 즐거움과 미지에의 긍정적인 호기심을 떠올리게 하지만 긴긴 삶을 여행이라 은유할 때 낯섦과 고난을 포함하고 있다. 더구나 밤을 여행한다는 것은 일면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져 발이 부르트고 어둠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일이 빈번해지면 사기와 용기가 꺾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밤의 여행자들은 아침을 향해 걷고 있는 것이며 결국 아침을, 찬란한 태양을 맞게 될 것을 상기시키면서 끊임없이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그 온기와 생명력 그리고 아침을 향해 걷고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이 주는 힘과 용기는 가족에게서 나온다. 엘리자베트와 그의 자녀 그리고 탈룰라까지 함께 했던 어느 날의 저녁은 그 점을 크게 시사한다. 아이들이 어릴 때 크림 캐러멜을 먹는 날 다 함께 듣던 노래는 언제 어디서건 그 따스하고 단단했던 유대와 결속을 떠올리게 하고 그 아름다운 기억은 그 경험을 가족뿐 아니라 이방인이자 여행자인 탈룰라에게까지 가닿는다.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파리, 밤의 여행자들> 스틸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우리는 모두 아름다운 이방인이며 밤을 여행하는 여행자들이지만 맞잡을 수 있는 손과 기억의 공유가 서로를 결속하고 이어주기에 외로움과 쓸쓸함을 견디고 한 발씩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지혜 칼럼니스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