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추천 뉴스
전세계 흔든 루브르 박물관 1500억 도난 사건…그들은 무엇을 노렸나 [민은미의 파인주얼리]
루브르 아폴론 갤러리 도난 사건
4인조 괴한…7분 만에 왕실 보석 9점 털어
19세기 왕실 보석…오늘날 하이 주얼리 뿌리
문화유산 보안의 허점 드러낸 사건
4인조 괴한…7분 만에 왕실 보석 9점 털어
19세기 왕실 보석…오늘날 하이 주얼리 뿌리
문화유산 보안의 허점 드러낸 사건
아폴론 갤러리는 단순히 보석을 진열한 전시실이 아니다. 왕권과 예술, 그리고 기술과 럭셔리가 교차하던 문명의 무대였다. 특히 프랑스 왕실과 제정(帝政)의 보석 컬렉션이 이곳에 안치되면서 이 갤러리는 오늘날 수많은 현대 주얼러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그 찬란한 공간에 전시되어 있던 약 1499억원 상당으로 추산되는 왕실 보석들이 최근 한 일요일 아침, 단 몇 분 만의 강탈로 사라졌다. '문화사적 재앙'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다.
단 7분 만에 사라진 왕실 보석 9점
루브르 박물관의 일요일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사건이 발생한 건 지난 10월 19일 오전 9시 30분경, 박물관이 개관한 지 불과 30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아폴론 갤러리는 박물관 상층에 있다. 복면을 쓴 4인조 범인들은 외벽 공사 중이던 구역을 이용해 사다리차를 타고 상층 창문을 절단하고 침입했다. 그들은 소형 전동 절단기로 전시 케이스 2개를 부수고 단 7분여 만에 왕실 보석 9점을 탈취했다. 미리 준비된 스쿠터를 이용해 현장을 빠져나간 범인들은 보안망을 피해 사라졌다.
도난당한 왕실 보석 8점
표적이 된 보석들은 마리 루이즈 황후, 유제니 황후, 마리 아멜리 여왕을 위해 제작된 사파이어와 에메랄드 세트, 티아라,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등이다. 도난당한 8점과 회수된 1점에 대한 역사적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유제니는 프랑스의 마지막 황후다. 1870년 제정이 몰락한 뒤 아들 루이 나폴레옹 왕자와 함께 망명길에 올라 생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냈다. 그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동경하며, 자신을 그와 닮게 꾸미고 앙투아네트의 초상화와 주얼리까지 수집했다. 보석과 의상의 광팬이던 유제니 황후가 여행을 떠날 때면, 이를 안전하게 실어 나를 여행용 가방도 필수였다. 황후는 트렁크를 납품한 루이비통을 총애해 파리에 가게를 열도록 도왔다.
루이비통 원조 고객 유제니 황후의 보석들
유제니 황후의 리레쿼리 브로치와 다이아몬드 리본 브로치 두 점도 있다. 유제니 황후의 보석 컬렉션인 브로치 두 개가 도난품에 포함됐다.하나는 ‘리레쿼리 브로치’. 성유물이나 기념 유품을 간직하기 위해 만들어진 브로치 형태다. 왕실 공식 주얼러였던 알프레드 밥스트와 프레데릭 밥스트 형제가 제작했다. 이 브로치에 세팅된 세 번째로 큰 다이아몬드는 원래 루이 14세의 상의 네 번째 단추로 사용되었던 보석이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한 귀걸이로 다시 세공됐다가 현재의 형태로 변형된 것이다. 즉 이 브로치는 프랑스 왕실 보석의 여러 세대를 거친 전승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다이아몬드 리본 브로치’로 황후가 공식 복장에 착용하던 의전용 장신구다. 다이아몬드와 리본 모티브를 결합해 가슴 중앙을 장식하도록 디자인된 이 대형 브로치는 유제니 황후 특유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대표한다. 두 작품 모두 19세기 프랑스 제 2제정기의 미학과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걸작으로 2025년 루브르 박물관 도난 사건의 목록에 포함되면서 그 역사적 가치를 역설적으로 상기시키게 됐다.
아멜리 왕비의 사파이어 세트는 큰 사파이어가 중심에 배열되어 있고 이를 둘러싸는 다이아몬드 장식과 사파이어 장식이 이어지는 형태다. 원래 소유자는 호르텐스 네덜란드 여왕이었다. 이후 마리 아멜리 왕비가 이 세트를 소유하게 됐다. 아멜리 왕비는 공식 행사에서 이 세트를 여러 차례 착용했고 사파이어 파뤼르를 착용한 초상화도 남아 있다. 제작 시기는 19세기 초반이며 제작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나폴레옹 둘째 부인 목걸이도
나폴레옹(당시 40세)은 1810년에 둘째 부인인 18세의 마리 루이즈를 맞았다. 첫 번째 아내 조세핀과의 결혼은 열정적이었지만 자식이 없어 결국 이혼으로 끝났다. 이혼 후 4개월여 만에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2세의 딸이자 마리 앙투아네트의 조카딸인 오스트리아의 마리 루이즈와 결혼했다. 그 결혼은 정치적 결합이었지만 나폴레옹은 그토록 바라던 후계자를 얻게 된다. 결혼 1년 후에 아들 나폴레옹 2세가 태어났다.
금과 은을 섞어 만든 섬세한 세공 위로 브릴리언트 컷과 로즈 컷 다이아몬드가 교차하며, 중앙에는 타원형 에메랄드가 중심을 이룬다. 나폴레옹 제국 양식이 지닌 장중함과 우아함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상징적 작품이다. 그 짙은 초록색 에메랄드의 이면에는 외교와 권력 그리고 제국의 야망이 교차한 정치적 서사가 스며 있었다.
도주 과정 중 떨어져 회수된 작품도
도주 과정에서 떨어져 회수된 유일한 작품으로, 보도에 따르면 사건 당일 박물관 밖 인근 거리에서 손상된 상태로 발견됐다. 나폴레옹 3세는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즈음하여 자신과 아내 유제니 황후를 위해 레모니에에게 두 개의 왕관을 의뢰했다. 레모니에가 만든 두 개의 왕관이 당시 박람회에 전시되었을 때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만큼 큰 화제였다. 황제와 황후의 왕관은 같은 스타일로 제작됐으나 황제의 왕관은 보전되지 않아 복제본만 남아있다. 황후의 왕관은 원형 그대로 남아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 중이었다가 이번 사건을 만났다.
독수리 사이사이에는 다이아몬드와 에메랄드 장식을 번갈아 세팅했다. 왕관의 상단에는 다이아몬드로 된 구형이 있고 구형의 한가운데는 에메랄드 띠를 둘렀다. 왕관의 가장 윗부분에는 십자가가 있는데, 6개의 라운드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그렇게 왕관에는 총 2480개의 다이아몬드와 56개의 에메랄드가 사용되었다. 유제니 황후의 진주 티아라와 함께 독수리 왕관은 오늘날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수작으로 손꼽힌다.
독일 드레스덴 ‘그린볼트’ 절도 사건 떠올라
유럽에서 왕실 보석은 끊임없이 도난의 표적이 돼 왔다. 그중에서도 2019년 독일 드레스덴의 그린 볼트 박물관에서 벌어진 대형 절도 사건은 이번 루브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새벽녘에 범인들이 창문을 부수고 침입해 18세기 작센 왕국의 보석 21점을 단 8분 만에 탈취했다. 프랑스 루브르의 왕실 보석과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사적 기록을 담은 유산이었다. 다행히도 독일 경찰은 조직범죄단을 검거하고 약 3년 만에 대부분의 보석을 회수했다. 하지만 일부는 이미 훼손된 상태였다.이번 루브르 아폴론 갤러리 사건은 "박물관에서 보석이 도난당했다"라는 수준의 사고가 아니다. 아폴론 갤러리는 세계 각국의 관람객이 찾는 루브르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들은 관람 시간 중 외벽 공사의 틈을 노려 불과 7분 만에 왕실 보석을 감쪽같이 탈취했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서 벌어진 이 사건은 문화유산에 대한 보안 체계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인명 피해가 없다는 점만이 유일한 위안이다.
사라진 유산의 가치는 금전으로 환산할 수 없다. 탈취된 보석들은 대부분 암시장에서 거래되거나 재연마와 해체를 거쳐 흔적 없이 사라질 위험에 놓였다. 보석을 빼내고 금속을 녹이는 일은 기술적으로 너무도 쉽다. 프랑스 왕실 주얼리의 자존심은 지금, 해체의 운명 앞에 서 있다. 이번 사건은 단지 과거의 유물이 사라진 비극이 아니다. 우리가 신뢰하던 박물관의 보안 체계 그리고 문화유산의 실체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경고다. 보석은 언제나 권력과 욕망 그리고 아름다움의 경계를 오가며 역사를 비추어 왔다. 그것이 왕의 관을 장식하든, 박물관의 진열대 위에 놓여 있든, 혹은 파리의 거리에서 산산이 부서져 있든, 그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안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