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잠재의식, 뇌의 시냅스와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신화와 내러티브가 넘쳐나죠. 언제까지나 계속될 주제입니다.”
12월 7일 상파울루의 ‘카사 브라데스쿠’에서는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이어져 온 에바 조스팽의 전시 <Re-Wild — Invented Nature>가 막을 내렸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 시원으로서의 자연, 트롱프뢰유, 에두아르 뷔야르의 그림 등이 그녀의 작품에 어른거린다. 멕시코시티, 쿠리치바를 거쳐 상파울루로 왔던 이 ‘섬유 패널’과 ‘골판지 야생’ 세트는 이제 다시 파리로 간다. 벽 장식 패널은 베르사유 궁전을 장식한 바 있고 골판지 설치작품은 작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 프로그램 중 하나로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골판지에서 정글을 ‘발명’해내는 작가 조스팽의 작업은 첫눈에 전경을 보면 압도당하고 천천히 디테일로 눈을 떼면 한숨이 나온다. 겹친 판지 층은 빽빽해서 미로 같은 숲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고 수직, 수평, 대각선으로 정확하게 잘려 나간 조각들이 형성하는 줄기와 가지, 뿌리는 거짓말처럼 우리 머릿속을 파헤치는 것만 같다. ‘종이’로 대변되는 물질의 역사이면서 ‘나’를 통해 우리로 나아가는 존재의 기억이다. 평범한 것이 숭고함으로 바뀌고, 일상적인 잔여물이 살아있는 풍경으로 변모한다. 고대 신화처럼, 우리는 조스팽이 만들어낸 숲(물질의 신기루)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더듬는다, 먼 기억을.
에바 조스팽은 2002년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에콜데 보자르)에서 고등 조형예술 학위(DNSEP)를 취득하며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프랑스의 전 총리 리오넬 조스팽과 그의 첫 아내 엘리자베스 데넨뮐러의 딸이다). 2000년 7월 조각가 피에르 토레통과 결혼하였고, 두 자녀를 두었다. 이후 이탈리아 감독 아드리아노 발레리오와 함께 살며 또 다른 아들을 두었다.
조스팽의 작품에는 숲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골판지를 사용해 조각과 다양한 설치작품으로 변주되는 숲은 신화와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관람객의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숲은 자연이되 개인의 내면으로 쉽게 침범한다. 조스팽은 인터뷰를 통해 “내 숲은 완전히 정신적인 것이다. 인간의 고민을 반영한다”라고 말한다. 동굴에선 종유석이, 수도원 뜰에선 기념비가 먼 꿈처럼 있다가 또 없다. 신기루 같지 않은가, 싶을 때 그다음 이어지는 관람 동선에는 너무 세밀해서 차라리 과학이라고 해야 할 드로잉이 지도처럼 걸려있다. 길을 잃었나, 그렇다면 여기, 라고 말하는 듯.
조스팽은 숲이야말로 다양한 구조물을 끌어낼 수 있는 고대의 자연 형태라고 말한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답게(에콜데 보자르 입학 전 건축학교에서 수학했다) ‘공간’의 탐구가 예술가로서 가졌던 첫 화두였기 때문에, 그녀는 건축물의 기원을 둘러싼 개발과 소멸 등을 폭넓게 고민했다. 숲, 퇴적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하면 결국 세계의 구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건축과 미술사에서 주로 영감을 받은 조스팽의 작품들은 시간적 역설을 구현한다. 골판지(종이)라는 취약하고 임시적인 재료로 조스팽이 재구성하는 건 천년의 숲과 고전 시대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2016년, 대중은 루브르 광장에서 조스팽의 설치작품 <파노라마(Panorama)>를 마주했다. 2017년에 그녀는 로마 빌라 메디치의 상주 작가가 되었고, 2018년에는 페라라의 팔라초 데이 디아만티, 2019년에는 카이저슬라우테른 팔츠 갤러리, 2020년에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23년에는 아비뇽의 교황궁, 2024년에는 베르사유궁 등에서 전시했다.
에바 조스팽의 아비뇽 교황청 전시 전경. / 사진 출처. festival avignon.com
‘규모의’ 수작업이므로 엄청나게 노동집약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팀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 주제로 전 세계를 돌며 십여 년 전시를 진행하다 보니 전 세계 여성 팀, 장인들과의 협업 데이터가 쌓였다. 매체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무는 철학적 탐구로서 조스팽의 작품은 현실에 맞서는 탈출구(이는 회화적일 뿐 아니라 음악적이면서 문학적이기까지 하다)를 제공한다. 덩굴이 구조물을 덮고 해면과 같은 유기적 요소가 조각의 형태와 결합한다. 자연과 인간의 장인정신으로 융합한다. 거기서 경이와 신비가 피어오른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렇게 임시성의 문제는 항시성을 획득한다. 조스팽의 작업이 만날 새 시간과 새 땅을 기대한다. 자수와 골판지는 끊임없이 그 경계를 허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