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은 잠재의식, 뇌의 시냅스와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의 신화와 내러티브가 넘쳐나죠. 언제까지나 계속될 주제입니다.”

12월 7일 상파울루의 ‘카사 브라데스쿠’에서는 지난 9월부터 3개월간 이어져 온 에바 조스팽의 전시 <Re-Wild — Invented Nature>가 막을 내렸다. 고대 로마의 건축물, 시원으로서의 자연, 트롱프뢰유, 에두아르 뷔야르의 그림 등이 그녀의 작품에 어른거린다. 멕시코시티, 쿠리치바를 거쳐 상파울루로 왔던 이 ‘섬유 패널’과 ‘골판지 야생’ 세트는 이제 다시 파리로 간다. 벽 장식 패널은 베르사유 궁전을 장식한 바 있고 골판지 설치작품은 작년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의 병행 프로그램 중 하나로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상파울루에서 지난 12월 7일 막을 내린 에바 조스팽 전시 <Re-Wild — Invented Nature> 전시 전경. / 사진. © 서정
상파울루에서 지난 12월 7일 막을 내린 에바 조스팽 전시 <Re-Wild — Invented Nature> 전시 전경. / 사진. © 서정
숲의 다양한 요소를 평면으로 구성한 섬유 패널 ‘실크 룸’은 니트와 자수로 길게 뻗은 벽을 채우는 작업인 만큼 (디올의 의뢰로 제작되었고 길이가 36m에 이른다) 설치되는 공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카사 브라데스쿠’는 상파울루의 유서 깊은 산부인과 병원인 마타라조 병원 부지를 활용한 브라질 최대 민간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시다지 마타라조(마타라조 시티)의 건물군 중 하나다. 뉴욕과 파리, 방콕과 홍콩 등지에 현지 기후와 문화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흡수해 각각의 독특한 분위기로 선보이는 로즈우드 호텔 그룹에서 시도한 남미 1호 호텔인 로즈우드 상파울루도 이 프로젝트의 일부다. 파리 아랍문화원, 바르셀로나 토레 아그바르, 루브르 아부다비, 리움 미술관 등으로 이름난 장 누벨이 설계했고 익스테리어는 필립 스탁이 맡았다.
자수와 골판지로 허물어지는 경계...숲을 만드는 에바 조스팽
에바 조스팽, 실크 룸. / 사진. © 서정
에바 조스팽, 실크 룸. / 사진. © 서정
‘재생’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토착 예술가들의 이름이 눈에 띈다. 가령 비크 무니스와 스페투 같은 경우인데, 사진가 비크 무니스는 앤디 워홀의 ‘두 개의 모나리자상’을 땅콩버터, 젤리로 형상화한다. 그는 이미지가 갖는 순수한 감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과 실존하는 것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작업을 한다. 그래피티 예술가 스페투의 벽화는 브라질 북동부 영향의 코르델 스타일(문학 장르로서 코르델이란 손으로 인쇄한 작은 시집을 말하는데 브라질 북동부 내륙의 건조하고 빈곤한 지역의 인기 있는 주제, 민담, 혹은 전설 등을 다루었으며 특유의 판화로 삽화가 실리곤 했다) 목판화에서 영감을 얻었다. 즉 시다지 마타라조는 브라질 자연과 문화의 야생적 이미지가 묻어나도록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에바 조스팽과 시다지 마타라조는 그렇게 서로를 끌어당겼다.

골판지의 질감 활용해 만든 깊이와 복잡성

골판지에서 정글을 ‘발명’해내는 작가 조스팽의 작업은 첫눈에 전경을 보면 압도당하고 천천히 디테일로 눈을 떼면 한숨이 나온다. 겹친 판지 층은 빽빽해서 미로 같은 숲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게 하고 수직, 수평, 대각선으로 정확하게 잘려 나간 조각들이 형성하는 줄기와 가지, 뿌리는 거짓말처럼 우리 머릿속을 파헤치는 것만 같다. ‘종이’로 대변되는 물질의 역사이면서 ‘나’를 통해 우리로 나아가는 존재의 기억이다. 평범한 것이 숭고함으로 바뀌고, 일상적인 잔여물이 살아있는 풍경으로 변모한다. 고대 신화처럼, 우리는 조스팽이 만들어낸 숲(물질의 신기루)속에서 길을 잃는다. 그리고 더듬는다, 먼 기억을.

에바 조스팽은 2002년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에콜데 보자르)에서 고등 조형예술 학위(DNSEP)를 취득하며 예술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다(프랑스의 전 총리 리오넬 조스팽과 그의 첫 아내 엘리자베스 데넨뮐러의 딸이다). 2000년 7월 조각가 피에르 토레통과 결혼하였고, 두 자녀를 두었다. 이후 이탈리아 감독 아드리아노 발레리오와 함께 살며 또 다른 아들을 두었다.
에바 조스팽의 작품. / 사진. © 서정
에바 조스팽의 작품. / 사진. © 서정
지난 7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열린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에서 김연아가 포즈를 취하고 있던 배경의 우아한 엠브로이더리 장식이 있는 텍스타일 벽 역시 에바 조스팽 작품이다. 꽃과 정원, 장인정신을 테마로 한 전시였던 만큼 주디 시카고, 페이스 링골드, 미칼린 토머스 등 여성 아티스트와 협업한 디올 하우스가 내린 또 한 번의 과감한 선택이었다.

조스팽의 작품에는 숲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골판지를 사용해 조각과 다양한 설치작품으로 변주되는 숲은 신화와 고전에서 영감을 얻어 관람객의 깊은 사색을 유도한다. 숲은 자연이되 개인의 내면으로 쉽게 침범한다. 조스팽은 인터뷰를 통해 “내 숲은 완전히 정신적인 것이다. 인간의 고민을 반영한다”라고 말한다. 동굴에선 종유석이, 수도원 뜰에선 기념비가 먼 꿈처럼 있다가 또 없다. 신기루 같지 않은가, 싶을 때 그다음 이어지는 관람 동선에는 너무 세밀해서 차라리 과학이라고 해야 할 드로잉이 지도처럼 걸려있다. 길을 잃었나, 그렇다면 여기, 라고 말하는 듯.

에바 조스팽의 작품. / 사진. © 서정
에바 조스팽의 작품. / 사진. © 서정
에바 조스팽은 열 살 때, 가족의 친구인 화가 피에르 카롱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조스팽은 그에게서 크게는 고전 회화, 세부적으로는 인간 피부의 묘사에 대해 매혹당했고 그것을 미스터리로 여기고 ‘풀어내고자’ 했다. 이후 연극에 이끌렸고, 건축에 매혹되었다가, 회화로 나아갔다. 그렇게 에콜데 보자르를 거쳐 이탈리아에서 조스팽은 미래의 ‘자기 주제’와 미학적·물질적 만남의 기회를 얻는다. 건축 모형을 만들 때 흔히 사용되는 소재에 눈을 돌렸다. 자기 작품에 대한 통제권과 장악력을 갖춘 채 대형 설치작품을 제작하고자 하는 욕구로 그녀는 골판지를 만지기 시작했다. 재활용센터에서 잔뜩 모아온 듯한 ‘쉬운’ 재료처럼 보이지만 겹겹이 붙이고 조각하여 속을 비운 다음 다시 겹겹이 붙여나가는 작업은 대단한 인내심을 요구하는 세밀한 작업이었다. 조스팽은 말한다. “창조는 매우 다양한 상태를 말합니다. 드로잉으로 시작해 미래에 자신을 투영하는 것이죠. 꿈을 꾸는 거라고도 말할 수 있어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긴 인생의 모든 순간과도 같습니다. 지루한 순간엔 끈질기게 인내해야 하고 그건 집요함으로 비치기도 하겠죠. 그러다 놀라움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찾았다가 이내 잃게 되는 숨결입니다.”

연약하고 장엄한

조스팽은 숲이야말로 다양한 구조물을 끌어낼 수 있는 고대의 자연 형태라고 말한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답게(에콜데 보자르 입학 전 건축학교에서 수학했다) ‘공간’의 탐구가 예술가로서 가졌던 첫 화두였기 때문에, 그녀는 건축물의 기원을 둘러싼 개발과 소멸 등을 폭넓게 고민했다. 숲, 퇴적에 관한 질문에서 시작하면 결국 세계의 구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건축과 미술사에서 주로 영감을 받은 조스팽의 작품들은 시간적 역설을 구현한다. 골판지(종이)라는 취약하고 임시적인 재료로 조스팽이 재구성하는 건 천년의 숲과 고전 시대의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2016년, 대중은 루브르 광장에서 조스팽의 설치작품 <파노라마(Panorama)>를 마주했다. 2017년에 그녀는 로마 빌라 메디치의 상주 작가가 되었고, 2018년에는 페라라의 팔라초 데이 디아만티, 2019년에는 카이저슬라우테른 팔츠 갤러리, 2020년에는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 2023년에는 아비뇽의 교황궁, 2024년에는 베르사유궁 등에서 전시했다.
에바 조스팽의 아비뇽 교황청 전시 전경. / 사진 출처. festival avignon.com
에바 조스팽의 아비뇽 교황청 전시 전경. / 사진 출처. festival avignon.com
‘규모의’ 수작업이므로 엄청나게 노동집약적인 작품이다. 당연히 팀 작업이 필수적인데, 이 주제로 전 세계를 돌며 십여 년 전시를 진행하다 보니 전 세계 여성 팀, 장인들과의 협업 데이터가 쌓였다. 매체의 경계를 끊임없이 허무는 철학적 탐구로서 조스팽의 작품은 현실에 맞서는 탈출구(이는 회화적일 뿐 아니라 음악적이면서 문학적이기까지 하다)를 제공한다. 덩굴이 구조물을 덮고 해면과 같은 유기적 요소가 조각의 형태와 결합한다. 자연과 인간의 장인정신으로 융합한다. 거기서 경이와 신비가 피어오른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흐려진다. 이렇게 임시성의 문제는 항시성을 획득한다. 조스팽의 작업이 만날 새 시간과 새 땅을 기대한다. 자수와 골판지는 끊임없이 그 경계를 허물 테니까.

서정 에세이스트•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