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키아 투자, 깐부치킨 회동…젠슨 황의 큰 그림은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지난 한 주 주식시장은 '엔비디아의 주간'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10월 29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사상 최초로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하며 기업 역사를 새로 썼습니다. 올 7월 4조 달러를 돌파한 지 불과 78일 만에 이룬 기록적인 성장입니다.
바로 뒤이어 젠슨 황 CEO가 날아간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습니다. 한국을 뜨겁게 달궜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치맥 회동'은 맛보기였죠. 젠슨 황 CEO는 한국 대표 기업 총수들과 이재명 대통령까지 모인 자리에서 한국 기업·정부에 블랙웰 GPU 26만 장을 우선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젠슨 황 CEO는 왜 한국 시장에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걸까요? 왜 오픈AI, 인텔에 이은 엔비디아의 다음 투자처가 노키아인 걸까요? "엔비디아는 단순한 GPU가 아닌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인) 'AI 팩토리'를 만드는 회사"라고 주장해온 젠슨 황 CEO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엔비디아 여전히 싸다"
먼저 엔비디아의 기념비적인 주가 폭등을 가져온 결정적인 촉매, 젠슨 황 CEO의 GTC 기조연설부터 살펴봅니다. 가시적인 수치로 밸류에이션을 계산해야 하는 월가 증권사들은 이날 젠슨 황 CEO가 제시한 AI 데이터센터용 GPU 매출 전망에 반응했습니다.
번스타인은 "이대로라면 내년 데이터센터 매출이 기존 추정치였던 2500억 달러를 넘어 최소 3000억 달러 이상이 될 것"이라면서 AI 거품론을 일축할 만한 스토리라고 평가했습니다. "AI 과열 혹은 버블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 때문에 엔비디아 주가가 다른 많은 AI 관련주보다 다소 뒤처져 왔지만, 지금은 걱정할 때가 아니라는 게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엔비디아의 목표주가를 300달러로 유지하고 있는 캔터피츠제럴드도 "엔비디아 주가는 지금도 싸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투자자들이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매출을 가능케 할 동력입니다. 엔비디아가 AI를 더 확산시키고 그 산업에서의 지배력을 더 공고히 할 수 있는 큰 그림이 무엇이냐는 것이죠.
캔터피츠제럴드의 분석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두 가지 요인을 꼽아보면 첫째, 엔비디아는 CUDA-X 라이브러리를 활용해 자사 표준에 따라 새 시장을 개척하고 AI를 확산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CUDA-X는 엔비디아가 만든 AI 가속기용 소프트웨어 툴박스 같은 겁니다. 기업이나 개발자가 AI 모델 학습이든, 자율주행이든, 로봇 제어든 직접 GPU를 프로그래밍할 필요 없이 목적에 따라 전문 기능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라이브러리를 350개 이상 개발해 놨습니다. 이는 경쟁사가 따라잡기 어려운, '엔비디아 생태계'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자산입니다.
물리적 AI 시대, '노동자'로 진화하는 AI
둘째, 젠슨 황 CEO는 AI가 더 이상 '도구'가 아닌 '노동자(worker)'로 진화하는 세계에서도 엔비디아를 그 생태계의 핵심으로 만들기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는 엔비디아 GPU에 대한 수요 폭증으로 또 이어집니다. 지능이 높아진 AI를 지원하기 위한 추론 컴퓨팅 수요가 폭증(스케일링 법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렇게 AI가 똑똑해지고 생산성 향상, 수익 창출에 기여할 수록 도입하는 기업들이 많아질 것이고, 그럼 컴퓨팅 수요는 또 늘어나는 선순환을 완성합니다.
물리적 AI 위한 통신 인프라 선점
엔비디아가 이번에 네트워크 장비 제조사 노키아에 투자하면서 통신 인프라 시장까지 진출한 것도 물리적 AI 시대에 대비하는 움직임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엔비디아는 노키아에 10억 달러(지분 2.9%)를 투자, 새로운 AI 무선통신(RAN) 하드웨어 '엔비디아 Arc'를 노키아와 함께 만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AI가 직접 통신 품질을 조정하고 트래픽, 날씨 등에 맞게 주파수 분배를 최적화하면서 스펙트럼 효율을 높이면 전력 소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인터넷 위에 구축된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사용하듯이, 무선통신망 위에 엣지 산업용 로보틱스 클라우드를 구축할 수 있습니다. 대규모 데이터센터 없이도 각 지역 기지국에서 데이터 처리와 추론 연산을 수행해 AI를 돌리는 게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물리적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 SW·제조·AI 모두 보유"
젠슨 황 CEO의 한국 시장 공략도 이런 '물리적 AI' 시대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초고속 광대역 통신망이 깔려있고, 세계 최고의 하드웨어 제조 역량을 보유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물리적 AI가 확산하기에도, 물리적 AI를 생산하기에도 최적의 시장입니다.
SK는 최고 수준의 반도체 기술(SK하이닉스) 뿐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광범위한 백본 네트워크와 기지국망(SK텔레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AI 인프라 진출에 유리한 물리적인 경쟁력을 이미 확보하고 있죠. 네이버 역시 클라우드, 디지털트윈, 로보틱스 등 다양한 AI 인프라 기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또 이 대기업들과 협력하는 수많은 기업 생태계가 촘촘하게 구축돼 있습니다.
'엔비디아 주도' 생태계로 수요 창출
젠슨 황 CEO는 미래 기술인 양자 컴퓨팅 분야에서도 '엔비디아가 주도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엔비디아 GPU(고전 컴퓨터)와 QPU(양자 컴퓨터 프로세서)를 직접 연결하는 NVQLink 기술을 발표한 것도 그 일환입니다. 엔비디아가 직접 양자 컴퓨팅 하드웨어를 만들진 않지만, 양자 컴퓨터 스타트업과 연구자들이 엔비디아의 고전 슈퍼컴퓨터와 연동되는 기술을 만들도록 유도해 '락인'을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정말 이런 그림대로라면, 엔비디아는 앞으로도 가장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AI 주식은 아니어도 가장 끈질기게 살아남는 기업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투자자들 역시 엔비디아의 생태계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업들로부터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겠지요. 미국 뿐 아니라 한국 기업들 중에서도 물리적 AI 시대의 보석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