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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반 고흐'
안토니오 리가부에(Antonio Ligabue)
안토니오 리가부에(Antonio Ligabue)
으리으리한 저택 안, 두꺼운 나무 문 저편에서 무시무시한 짐승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주인 부부를 비롯해 그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방 안에서 마치 갇혀 있는 맹수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는 그것의 정체는…. 집주인이 초대한 화가, 안토니오 리가부에(1899~1965)였습니다. 그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뒤틀린 얼굴을 보며 맹수처럼 울부짖고, 동물의 몸짓을 흉내 내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요.
독특하고 강렬한 화풍의 화가 리가부에는 오늘날 이탈리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20세기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이탈리아의 반 고흐’가 그의 별명입니다. 리가부에의 삶은 여러 편의 영화와 책으로 만들어졌고, 이탈리아 파르마에는 작품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도 있습니다. 2020년에는 그의 생애를 다룬 영화 ‘히든 어웨이’가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황금곰상 경쟁 부문에 오르며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습니다.
길 잃은 원시인
세상에 처음 왔을 때부터 리가부에는 그 누구의 환영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1899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직후부터 리가부에는 각종 발작과 질병에 시달렸고, 어머니는 불과 6주 만에 그를 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아픈 아기였던 리가부에는 이때 겪은 영양 결핍으로 더욱 심각한 장애를 겪게 됐습니다.마을 사람들이 데리고 있던 그는 여덟 달 뒤 자식이 없던 독일계 스위스인 부부에게 입양됐습니다. 자식을 간절히 원했던 양어머니는 리가부에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양아버지는 허약하고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그를 무자비하게 학대했습니다. 양아버지가 그를 때리기 위해 벨트를 채찍처럼 휘두르는 소리는 리가부에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이상 행동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아홉 살에 퇴학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교사는 리가부에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지적 능력이 부족한 사회 부적응자.” 이후 여러 특수 교육 시설을 전전했지만, 늘 결과는 같았습니다. 3학년을 마치는 데 6년이 걸렸고, 정신질환은 갈수록 더 심해졌습니다. 급기야 그는 열여덟 살이던 1917년 극심한 발작을 일으켜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운명이 뒤바뀐 건 이 때였습니다.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마련된 붓과 물감을 본 게 계기였습니다. 리가부에가 갑자기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자 의사와 직원들은 경악했습니다. 그림의 색채와 모양이 너무나도 특이하고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붓에서는 날아오르는 야생 독수리들이 튀어나왔습니다. 종이 위를 벗어나 달려 나가려는 듯한 고릴라가 나타났습니다. 분노로 몸이 부푼 호랑이가 생겨났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리가부에는 계속 으르렁거리며 쉭쉭 소리를 내고 이를 드러냈습니다. 의사는 진료 기록에 적었습니다. “문명화되지 않은 천재.” 그는 곧 정신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스위스는 몰려드는 외국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 정부는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을 적극적으로 추방하기 시작했지요. 정신병력이 있는 리가부에도 그런 외국인으로 분류됐습니다. 결국 리가부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로 추방당하고 말았습니다.
예술과 만나다
1919년, 스무 살의 리가부에는 이탈리아 경찰에 이끌려 괄티에리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하지 못했던 그는 도착하자마자 ‘독일 놈’, ‘미친놈’이라 불리며 조롱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몸이 약하고 말귀도 잘 알아듣지 못해 일꾼으로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배척했습니다.결국 돈이 떨어진 리가부에는 마을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는 근처 강가의 버려진 오두막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나무 열매를 따 먹고 개구리와 물고기를 잡아 연명했습니다. 때로는 남의 채소밭을 뒤지거나, 너무 배가 고프면 날달걀을 훔쳐 먹기도 했습니다. 한편 그는 개와 토끼, 닭, 심지어 파충류까지 닥치는 대로 거둬들여 함께 살았습니다. 그는 점차 인간과 동물의 중간쯤 되는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강변에는 리가부에가 만든 조각들이 하나둘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이한 작품들을 본 마을 사람들은 적어도 리가부에가 해를 끼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리가부에에게는 ‘예술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아이들도 멀찍이서 그와 그의 오두막을 구경하곤 했습니다. 엘바라는 이름의 작은 소녀는 그중 하나였습니다. 말이 없었지만, 리가부에를 무서워하지 않던 유일한 아이였습니다. 토끼를 좋아했던 엘바는 그의 오두막까지 들어와 한참 동안 토끼를 쓰다듬다 가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의 발길이 끊겼습니다. 얼마 뒤, 상복을 입은 여인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엘바의 어머니였습니다. 그녀는 집에 불이 나 엘바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제발, 리가부에, 엘바의 초상화를 그려주세요. 당신은 엘바의 친구였잖아요. 물감값도, 작품값도 드릴게요.”
다음 날 리가부에가 마을에 나갔을 때, 그를 조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한 노인은 그를 향해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했습니다. 리가부에는 그것이 존경의 표시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마을의 인정을 받은 그에게 또 한 번의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화가 마리노가 직접 오두막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나도 예술가입니다. 내 작업실에서 함께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요?” 리가부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리가부에는 마을로 내려와 물었습니다. “그 화가 선생의 작업실이 어디요?” 1928년, 그의 나이 스물아홉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반 고흐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이 그를 찾았습니다. 나치 독일의 장교가 마을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독일 장교가 중요한 소식을 갖고 왔어. 지금 다들 주점에 모였는데, 통역을 좀 해주게나.” 독일어가 모국어였던 리가부에는 그 임무를 멋지게 수행하고 주점에서 술을 얻어 마셨습니다. 하지만 술이 들어갈수록 그의 기분은 불편해졌습니다. 고압적인 독일 장교의 태도에서 자신을 학대했던 양아버지를 떠올린 것이었습니다. 양아버지가 휘두르던 가죽 벨트의 기억이 그의 머릿속을 휘저었습니다.장교가 히틀러를 위해 건배하던 순간, 술 취한 리가부에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습니다. 리가부에는 맥주병으로 독일 장교의 머리를 내리쳐 그를 기절시키고 말았습니다. 리가부에는 이 사건으로 정신병원에 4년이나 수감돼야 했습니다.
그림을 그리며 리가부에는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그림에 놀라운 변화가 생겼습니다. 그가 스위스를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캔버스 위에는 눈 덮인 알프스 봉우리와 목조 주택, 양 떼와 소들, 푸른 초원의 사슴들이 나타났습니다.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풍경이 기억 속에서 쏟아져 나왔습니다. 머지않아 그는 정신병원에서 퇴원했습니다.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동차가 그의 발이 돼 줬지만, 내면은 여전히 공허했습니다.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했던 것은 인간적인 사랑이었습니다. 리가부에는 여관 주인 체사리나를 짝사랑했습니다. 그는 그녀와 결혼해 성에서 살고 싶다는 동화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나와 결혼해 주시오.” 그의 서툰 고백은 번번이 웃음거리가 될 뿐이었지만, 이 시기 그의 그림에는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성들이 들어섰습니다. 그렇게 리가부에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불안한 영혼의 흔적
63세이던 1962년, 리가부에는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체사리나였습니다. 하지만 리가부에는 그 사실에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 우반신이 마비되면서 그림을 그리던 오른손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품 활동이 끝났다는 뜻이었습니다.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리가부에는 거짓말처럼 온순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을 모두 잃은, 마치 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마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요양원에서 조용히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내는 일도 다시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1965년, 리가부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66세였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6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리가부에의 그림은 여전히 지나가는 사람들을 멈춰 세웁니다. 작품에 난 발톱 자국 같은 붓질은, 불안하지만 순수했던 리가부에의 영혼이 세상과 충돌하며 남긴 흔적입니다.
***이번 기사는 Beast in the Mirror: The Life of Outsider Artist Antonio Ligabue (Karin Kavelin Jones 지음), Fondazione & Archivio Antonio Ligabue di Parma(Google Arts&Culture) 자료를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