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0년부터 야심 찬 도시 개발 계획이 진행되면서 그라시아 거리는 그 중심축으로 부상했다. 스페인 최초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바르셀로나에서 상공업으로 돈을 번 신흥 부자들은 새로운 고갱이에 호화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명문가라면 이 거리에 유명 건축가가 지은 집 한 채쯤 있어야 행세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 여러 개의 공장을 가지고 있던 섬유 사업가 호세 바트요 이 카사노바스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기회를 엿보던 그는 1903년 카사 바트요 예전 건물을 매입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가 사들인 건물 옆에는 호세 푸이그 이 카다팔치가 완성한 카사 아마트예르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탈루냐의 뛰어난 건축가이고 학자이며 정치인이었던 푸이그는 1898년부터 1900년까지 이 저택을 리모델링했다.
바트요는 고민했다. 그저 그런 평범한 집을 짓고 싶지는 않았다. 어렵사리 구한 자신의 건물이 그라시아 거리에서 단연 눈에 띄는 독보적인 작품이 되게 하고 싶었다. 최소한 카사 아마트예르보다는 나은 집을 짓고자 했다. 수소문 끝에 그가 찾아낸 건축가는 가우디였다.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창적인 건축 세계를 가지고 있는 가우디라면 자신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는 가우디에게 재건축을 부탁했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이었다. 백지상태에서 마음껏 창작의 날개를 펴보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가우디는 재건축보다 전면적인 개보수 작업을 택했다. 공사는 1904년에서 1906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가우디는 남들과 다른 아주 특별한 집을 원하는 건축주의 바람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기존의 건축 양식과 문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방법으로 새집을 지었다.
그라시아 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집 카사 바트요. 가우디는 남들과 전혀 다른 특별함을 원한 의뢰인을 위해 기존 건축 양식과 문법을 완전히 초월해 건물에 새 옷을 입혔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의 설계대로 집이 완성되자 사람들은 경악했다. 건물 정면에 해골과 뼈들이 등장하고 지붕에는 용의 등뼈와 비늘이 입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는 따뜻한 집이 아니라 귀신이나 동물이 사는 무서운 공동묘지 같았다. 사람들은 이 집을 ‘뼈의 집’, ‘해골의 집’, ‘가면의 집’, ‘하품의 집’, ‘용의 집’ 등으로 부르며 손가락질했다. 바트요 역시 당황스러웠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집을 원하기는 했지만, 이건 특별한 정도가 아니라 괴이했다. 특히 바트요 부인 고도의 반대가 심했다. 그녀는 가우디의 건축은 물론 그가 직접 만든 가구와 소품까지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가우디로 인해 바트요와 고도는 부부싸움을 자주 했다.
카사 바트요가 가우디의 손을 거쳐 새롭게 탄생한 후 사람들은 이 일대를 ‘불화의 블록(Manzana de la Discordia)’ 또는 ‘불화의 사과’라고 불렀다. 당대 최고의 건축가였던 루이스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의 카사 예오 모레라, 푸이그의 카사 아마트예르, 엔릭 사니에르 이 비야베키아의 카사 뮐레라스 등이 그라시아 거리에서 경쟁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 모습이 마치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헤라와 아테나와 아프로디테 세 여신이 황금 사과를 놓고 싸우는 것과 흡사하다고 해서 이 블록을 그렇게 부른 것이다. 스페인어로 ‘만사나(Manzana)’는 사과를 뜻하기도 하고 블록을 뜻하기도 하는 동음이의어다. 바르셀로나시 의회에서는 매년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골라 시상했다. 1900년 최초의 수상자는 카사 칼베트를 완공한 가우디였다. 바트요는 자신의 집이 이 건축상을 받기를 바랐다. 상을 받으면 사람들의 놀림이 존경으로 변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은 매년 다른 건물 차지였다.
타일 장식 원반과 다채로운 유리로 뒤덮인 정면 외벽. 주셉 마리아 후홀의 이 작품은 모네의 ‘수련’을 연상시킨다. 주철로 만든 발코니 난간은 가면 같기도 하고 해골 같기도 하다. / 사진. ⓒ 김혜경바다에서 나온 용이 지붕 위에 웅크리고 있는 집
내부로 들어오면 공용계단이 나오고, 뒤쪽으로 메인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연결된다. 건물 중앙은 채광창으로 뚫려 있다. 빛의 파티오(Patio)다. 천장을 쳐다보면 수중 동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타일의 색깔은 위로부터 코발트블루, 파란색, 하늘색, 펄그레이, 흰색으로 이어진다. 진한 색을 위쪽에 연한 색을 아래쪽에 안배함으로써 답답해 보이지 않고 햇빛이 각층에 골고루 미치도록 했다. 창의 크기 또한 아래로 내려갈수록 커지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아진다. 그래서 밑에서 올려다보면 실제보다 넓은 느낌이 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아스라한 느낌을 막아준다. 복도와 중정 사이에는 일렁이는 물결처럼 아쿠아 유리 난간이 놓여 있다. 중정을 바라다보면 실제 바닷속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오래된 목조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정을 오르내리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다.
건물 중앙은 채광창으로 뚫려 있으며 벽면은 타일 위에 부조를 붙여 입체감을 더했다. 코발트블루부터 흰색까지 색상을 다르게 배치해 위를 쳐다보면 거의 같은 색으로 보인다. / 사진. ⓒ 김혜경
중정 창의 크기는 아래로 내려갈수록 크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다. 그래서 밑에서 올려다보면 넓은 느낌이 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깊은 우물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막아준다. / 사진. ⓒ 김혜경
2층은 카사 바트요의 하이라이트다. 응접실로 사용되던 홀은 귀족적인 층이라는 뜻의 ‘플란타 노블(Planta Noble)’이라 부른다. 나무 바닥은 한옥처럼 격자무늬 나무로 짜여 있다. 천장은 소용돌이치는 하늘 위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 있는 것처럼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커다란 유리창으로 그라시아 거리가 훤히 내다보인다. 발코니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정강이뼈 형상이다. 뼈에서 식물이 막 발아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뼈와 해골은 전설 속에 나오는 용과 맞서 싸우다가 희생된 사람들을 나타낸다. 2층 외벽에는 돌들이 파도치듯 빙 둘러쳐 있다. 몬주익에서 가져온 사암(砂巖), 즉 모래가 뭉쳐 단단히 굳어진 암석이다.
메인 홀 천장. 소용돌이치는 하늘 위에 이글거리는 태양이 떠 있는 것처럼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우주가 탄생하는 태고의 신비를 집 한가운데서 체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 사진. ⓒ 김혜경
곡선으로 이어진 계단을 따라 불규칙한 모양으로 둥그렇게 연결된 난간. 동굴 속에 있는 용의 척추처럼 굽이굽이 잇대어진 계단 조각 장식은 재질이 매우 단단한 오크로 만들었다. / 사진. ⓒ 김혜경
한쪽에는 버섯 모양의 벽난로가 있다. 난로와 굴뚝을 벽에 붙여 하나의 조각작품처럼 만듦으로써 한적한 시골 농가 같은 목가적 풍경을 연출했다. 난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공간과 공간을 구분하는 문과 방과 방을 잇는 벽에는 나무로 된 갖가지 형태의 창과 틀이 붙어 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목조 장식이다. 쇠와 돌과 나무 그리고 유리까지 가우디의 손을 거치면 모든 게 융화되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회오리치는 유리 원반은 외벽의 색채를 내부로 전달해준다. 기하학적 곡선으로 이루어진 유리창도 기가 막혔다. 좌우 창문이 크기가 다른 비대칭이다. 살바도르 달리가 1931년에 제작한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길게 늘어진 시계를 반듯하게 펴놓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로와 굴뚝을 벽에 붙여 하나의 조각작품처럼 만듦으로써 한적한 시골 농가 같은 목가적 풍경을 연출했다. 난로를 사이에 두고 양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 사진. ⓒ 김혜경
기하학적 곡선으로 이루어진 유리창. 게다가 좌우 창문이 크기가 다른 비대칭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기억의 지속’에 나오는 길게 늘어진 시계를 반듯하게 펴놓은 듯하다. / 사진. ⓒ 김혜경
복도를 지나 바트요 가족이 이용했던 식당을 지나면 탁 트인 안뜰이 나타난다. 건물의 뒷면을 감상할 수 있는 개인 정원이다. 정면과는 대조적으로 돌출된 부분 없이 단순하게 마감했지만, 옥상 굴뚝과 철제 난간과 발코니로 이어지는 이면은 그 자체로 고졸미가 있다. 아트리움은 흐드러진 덩굴 식물의 꽃과 가지를 연상시키는 물결치는 쇠 장식으로 마감되었다. 가우디는 이웃집과 구분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세운 벽면에 포물선 아치를 그린 뒤 속을 정면 외관과 같은 타일 장식 원반과 다채로운 유리로 채웠다. 나비가 날아다니는 화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믹 원반은 점토의 소성과 천연 산화물 에나멜을 사용해 만들었다.
3층부터 6층까지는 임대용이었다. 한 층에 두 채씩 여덟 채의 가구가 있었다. 7층은 포물선 형태의 궁륭으로 이어진 다락방이다. 새하얀 벽과 따사로운 빛이 조화를 이루며 천사들의 날개를 생각나게 하는 이 장소는 입주자들을 위해 창고, 세탁실, 건조실 등으로 사용했다. 심미감과 기능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곳이다. 산타 테레사 학교가 떠오른다. 산타 테레사 학교 포물선 아치 복도에서 수도원과 여학교에 어울리는 우아함과 경건함이 넘쳐난다면 카사 바트요 궁륭 다락방에서는 도심 속 생활 공간에 들어맞는 청결과 낭만을 느낄 수 있다. 60개의 기울어진 아치가 연이어 배치된 복도에 들어서면 마치 용의 흉곽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기분도 든다. 다락방을 지나 나선형 계단을 오르면 카탈루냐의 전설을 품고 있는 옥상에 다다른다. 구약 성경에서 큰 물고기가 자기 배에 숨어 있던 요나를 갑자기 육지로 토해낸 것처럼 용의 배에 웅크리고 있다가 마침내 탈출한 듯한 황홀감이 온몸을 감싼다.
2층 홀에서 내다본 그라시아 거리. 발코니를 받치고 있는 기둥은 경골(脛骨), 즉 정강이뼈다. 뼈에서 식물이 발아하는 모습을 표현했다. 이는 죽음 그리고 삶과 중생의 상징이다. / 사진. ⓒ 김혜경전설은 어떻게 현실이 되는가?
옥상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굴뚝이다. 땅을 뚫고 솟아난 야생 버섯을 떠올리게 하는 굴뚝은 27개가 네 그룹으로 나뉘어 자리하고 있다. 각양각색 유리 조각과 꽃무늬 타일 조각 모자이크로 덮인 약 6m 높이의 나선형 굴뚝은 꼭대기에 모자처럼 원뿔형 뚜껑이 올려져 있다. 구엘 저택 옥상의 굴뚝과 카사 밀라 옥상의 굴뚝을 비교해 보면 가우디의 옥상 조형물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화려함은 카사 바트요가 으뜸이다.
가우디가 카사 바트요에 입힌 상징과 은유는 카탈루냐 수호성인인 성 조르디 전설이다.
아주 오래전 카탈루냐 산악 지대인 몽블랑에 독을 내뿜어 사람을 죽이는 흉악한 용이 있었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은 용을 달래기 위해 하루에 한 사람씩 제비를 뽑아 용에게 갖다 바치기로 했다. 많은 사람이 희생 제물이 되었다. 어느 날은 불행히도 왕의 딸이 뽑히고 말았다. 공주도 예외는 없었다. 그러나 공주가 용에게 잡아먹히기 직전,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났다. 기사는 자신의 창을 들어 과감하게 찔렀고 용은 그대로 쓰러졌다. 공주와 사람들을 구해낸 그 기사가 바로 성 조르디다. 이후 용의 피가 떨어진 땅바닥에서 붉은색 장미꽃들이 피어났다. 영웅이 된 성 조르디는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서 공주에게 바쳤다.
푸른 하늘을 떠받친 굴뚝들. 가우디가 예술 공간으로 재창조한 옥상 중에서 카사 바트요가 제일 화려하다. 날이 저물면 낮과는 전혀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파티가 열린다. / 사진. ⓒ 김혜경
가우디는 이 전설의 피날레를 옥상에 화려하게 펼쳐 놓았다. 정면 상단에는 입체적으로 장식된 원통과 비늘 모양의 세라믹으로 금세라도 꿈틀거리며 깨어날 것 같은 용의 등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다. 용의 등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데, 이는 몬세라트의 낙타 바위를 본뜬 것이다. 항아리를 쪼개 엎어놓은 듯한 원통의 굴곡진 모습은 용의 척추를 떠올리게 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척추 아래는 포물선 형태의 궁륭 다락방, 즉 용의 흉곽이다. 기와처럼 정교하게 쌓아 올린 비늘 모양의 세라믹은 푸른색을 띠다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검붉은 빛깔을 띤다. 창에 맞은 용이 피 흘리는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용을 찌른 기사의 창끝에는 네 개의 팔을 가진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런데 다른 건물에서 봤던 네 팔 십자가와 약간 다르다. 십자가 아래 튤립과 백합 같은 식물의 알뿌리인 구근(球根)이 놓여 있다. 마요르카에서 가져온 구근을 지탱하고 있는 탑에는 나선형으로 ‘JHS’, ‘M’, ‘JHP’라는 모노그램이 붙어 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마리아는 공작 왕관을 쓴 ‘M’으로 표기했다.
네 팔 십자가 아래 구근이 놓여 있고, 하단의 탑에는 ‘JHS(예수)’, ‘M(마리아)’, ‘JHP(요셉)’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입체적으로 장식된 원통과 비늘 세라믹은 용의 등을 상징한다. / 사진. ⓒ 김혜경
밑을 내려다보면 지붕 아래 꽃이 만발한 모양새의 발코니 하나가 보인다. ‘공주의 발코니’다. 성 조르디가 공주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꺾어 바친 것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해마다 4월 23일이 되면 카사 바트요 정면 외벽은 붉은 장미로 뒤덮인다. 카탈루냐 전역에서 ‘성 조르디의 날’로 기념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199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지정되면서 의미가 더 풍성해졌다. 이날이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 된 것은 스페인 소설가 세르반테스와 영국 작가 셰익스피어가 1616년 4월 23일 동시에 세상을 떠난 데서 유래한다. 이날이 되면 거리는 사르다나를 추는 사람들과 책과 장미를 판매하는 부스로 가득 찬다. 누구나 장미와 책을 선물할 수 있으나 전통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장미를 선물하고 여성이 그 답례로 남성에게 책을 선물한다. 사랑과 지성이 넘쳐나기에 이날을 카탈루냐의 밸런타인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카탈루냐인들에게 성 조르디의 날은 그 어떤 강한 힘이 위협하더라도 담대히 싸워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지켜나갈 것을 다짐하는 날이기도 하다.
시간이 흘렀다. 용의 등에 올라탔지만, 다시 내려가야 한다. 그러려면 용의 입으로 들어가 흉곽 속을 헤집고 수중 동굴을 지나야 한다. 전설의 바다를 나와 현실의 땅으로 걸어가야 한다. 가우디는 카사 바트요라는 바다를 유영하며 무엇을 얻었을까? 그라시아 거리에 용의 전설을 구현해내며 어떤 상상을 했을까? 가우디는 1904년 바르셀로나시에 공사승인서를 제출했으나 거부당했다. 바르셀로나시는 1906년 가우디에게 공사 중단을 요청했다. 그의 건축은 한 번도 순탄하게 진행된 적이 없다. 거의 모든 작품이 미완성이다. 어쩌면 인생에서 진정한 의미의 완성이라는 게 있기는 있는 걸까? 남들과 다르게 산다는 건 뭘까? 아주 특별한 인생이란 어떤 걸까? 요나처럼 육지로 토해져 나오는 동안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카사 바트요는 밤에도 관광객이 몰려든다. 조명이 들어오면 지붕 위의 용이 꿈틀대며 승천하는 듯한 모습 또는 외벽의 뼈들이 일어나 춤추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 사진. ⓒ 김혜경
유승준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