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을 이기는 단 하나의 방법
[arte] 박정민의 그 영화의 서브텍스트
슈퍼맨, 그리고 슈퍼맨 신드롬에 대한 고찰
새로운 슈퍼맨은 로이스 레인을 구하지 않는다
영웅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슈퍼맨, 그리고 슈퍼맨 신드롬에 대한 고찰
새로운 슈퍼맨은 로이스 레인을 구하지 않는다
영웅을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솔직히 난 이 남자가 두렵다. 하늘을 날고 강철 같은 몸을 지녀서 두려운 게 아니라(그건 화면을 꺼버리는 순간 사라지는 세계에 불과하니깐), 온 세상에 곳곳에 숨어든 이 남자의 영향력이, 그 이미지가 두렵다. 언제나 더 강해져야 하고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누구보다 더 강하고 빨라야 하며, 더 높은 곳을 향하는 욕구. 누군가는 그것이 이 남자가 아니라 역사상 전례 없는 능력을 보여준 운동선수 때문이라고 말하거나 혹은 어떤 스타 CEO 때문이라고 말하겠지만 분명 그 모든 원형은 이 남자가 분명하다.
슈퍼카를 타는 한 남자는 그 슈퍼카를 타는 이유가 속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 속도를 낼 수 있는 도로가 이 나라에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이유는 내리는 순간 타인의 시선이다. 이 남자에게 그 차의 외형은 자아의 외연이다. 그 또한 이 남자의 지배하에 있다.
내가 이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크립토나이트가 아니다. 말하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미 말했지만, 누구와도 다르게 말할 수 있다고 믿어보는 것이다. 이 패배로 끝날 싸움에 뛰어드는 것이다. 나 또한 이 남자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고 말이다.
무엇이 슈퍼맨을 초인으로 만드는가?
2025년 버라이어티에서 조사한 역대 최고의 슈퍼맨 배우 1위는 여전히 크리스토퍼 리브다. ('Superman' Actors Ranked, Best to Worst) 그가 클락 켄트를 연기하는 순간 그의 양 어깨는 움츠러들며 거북목을 만든다. 양쪽 구두 밑창이 다르기라도 한 듯 엉성한 걸음걸이에 첫 출근부터 바지에 음료를 쏟고, 회전문에 걸리고, 강도 앞에서는 벌벌 떤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슈퍼맨을 초인으로 만드는 것은 하늘을 날고 지구를 들어 올리는 그 힘이 아니라(이것은 그저 태생에 의한 능력에 불과하므로) 평범함은커녕 평균보다 낮은 균형감각에 서류든, 물컵이든 온갖 것들을 쏟아버리고 넘어지는 그 클락 켄트라는 인물 속에 자신의 강함을 감추고, 그 인물을 연기하는 그 행위 속에 있다고 말이다. 슈퍼맨의 이름 또한 가혹한 운명조차 사랑하는 니체의 초인(위버멘쉬)에서 유래했으니 어쩌면 슈퍼맨을 진정한 초인으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힘을 갈무리하는 그 인격적 면모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슈퍼맨은 로이스를 구하지 않는다
새로운 슈퍼맨이 등장했다. 그런데 예전보다 오히려 약해졌다. 새로운 로이스 레인을 연기하는 배우 레이첼 브로스나한은 평범한 가정주부가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하는 내용인 <더 마블러스 미세스 메이즐>의 주인공 미리암을 연기했었다. 이 드라마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미리암과 잠시 연애하는 인물인 벤저민(재커리 리바이)이 식당에서 다투는 장면이다. 벤저민이 돌연 나처럼 덩치 큰 남자는 함부로 화도 못 낸다며 양팔을 펼치고 휘두르자 식당의 다른 손님들이 화들짝 놀란다. (이 배우의 프로필상의 신장은 191cm다) 이 벤저민이라는 인물은 분명 슈퍼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극 중에서 자신이 미리암을 구원할 수 있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자신은 키 크고 잘생긴, 게다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완벽한 남자이니깐. 하지만 미리암은 그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새로운 슈퍼맨은 패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눈밭에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는 그는 더 이상 강철 남자의 모습이 아니다. 게다가 때때로 좀 어린애처럼 군다. 이 영화의 주요 사건은 슈퍼맨이 미국의 동맹국인 볼리비아가 침공한 자한푸르의 국민을 보호해 주다가 국제 분쟁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이에 대해 추궁하는 로이스에게 ‘나 좋은 일 했는데 왜 뭐라고 해’라는 식으로 애처럼 투정을 부린다.
그는 확실히 최강의 존재라기 보다는 친근해졌다. 어쩌면 영웅 또한 인간이며 사실은 두려움과 나약함을 그 안에 감추고 있을 뿐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전의 슈퍼맨이 매일 5시간 운동해서 만든 비현실적인 몸을 자랑하며 화면 밖의 나를 주눅 들게 했던 것과 달리 이 어린애 같은 슈퍼맨은 더 이상 나를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비극은 우리보다 더 나은 고귀한 인물을 재현한다고 말했다. 그의 시대에도 초인적 신체 능력의 영웅(헤라클레스)이 있었지만, 그는 영웅의 성격이 비극적 사건 속에서의 고귀한 행동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히어로는 반드시 슈퍼 히어로가 아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동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가끔 어떤 슈퍼 히어로의 영화는 광고 같다. 그 캐릭터를 초인으로 만들어주는 어떤 아이템에 대한 광고, 그 아이템과 같은 외형의 물건을 사면 그런 마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또 슈퍼 히어로물이 아니어도 인물의 능력치에 주목하는 서사가 더 익숙하다. 이런 이야기가 재현하는 것은 인물의 고귀한 면모가 아니라 그들의 능력치와 승리라는 결과이다. 하지만 영웅을 만드는 것은 그 능력치가 아니다. 압박받는 상황 속에서의 행동(선택)이다. 세상을 자신의 신념에 맞추고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넘어선 현실에 지성과 의연한 태도로 맞서는 인물들이다. 그래서 때때로 이야기의 주인공은 패자가 될 수도 있고, 그런 패자들도 그 순간만큼은 이야기를 이끄는 영웅이다.
‘자기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영웅을 외면하지 마라. 더 높은 곳을 향한 꿈과 이상을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면 그리운 듯이 말하지 마라.’
-프리드리히 니체
내가 일깨우고 싶은 영웅은 빨강 망토를 두르고 있지 않다. 신과 같은 몸을 가지고 있지도 않고, 선망의 대상이 될만한 외모도 아니다. 어딘가 아파 보이는 일그러진 얼굴에 거북목을 하고서 책상에 고개를 숙이며 자신이 지피는 창조적 불길로 녹일 수 있는 우리 세계의 차가운 공간을 찾는 인물이다. 이것 하나는 슈퍼맨과 같다. 슈퍼맨이 두꺼운 얼음 속에 묻힌 고독의 요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태양의 힘으로 세상을 녹이는 것처럼 그 영웅도 고독의 요새에서 차가운 세상을 녹이는 불꽃을 발견하기 위해 모든 삶의 에너지를 소진하기 때문이다. 이 또한 하나의 운동이다. 정신적 운동. 저 높은 곳에 있는 영웅은 아니지만 진정한 초인을 내면에 불러오는 단 하나의 운동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