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주년을 맞은 올해의 부산국제영화제는 역대 최다 게스트, 최다 행사들과 함께 갖가지 기록을 경신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세계 최고의 감독들과 배우들, 그리고 영화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것은 영화제로 배출된 한국(독립)영화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중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한창록 감독의 <충충충> 그리고 영화제 기간에 열리는 부일영화상에서 2관왕(신인감독상, 신인남자연기상)을 차지한 독립영화 <여름이 지나가면>은 이번 부산에서도, 그리고 2025년 올해 관객을 만났던 수많은 독립영화 중에서도 단연코 주목할 만한 수작들이다. 엄청난 저력을 품고 나타난 이 두 영화를 꼭 기억하시기를!
부산국제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충충충> (한창록, 2025)
아마도 올해 부국제의 경쟁 섹션에 올라온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이며 논쟁적인 작품이 아닐까. 영화제 공개도 전에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미 영화의 ‘명성’은 알려진 바였다. <충충충>은 래리 클락의 <키즈>(1995) 와 장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1997) 그리고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가 불균질하게 뒤섞여 재탄생한 듯한 작품이다. 물론 언급한 작품들의 훨씬 진일보한 형태로 말이다. 영화는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세 명의 친구들(거식증과 애정결핍으로 고통 받고있는 ‘지숙,’ 지숙을 짝사랑하고 있는 ‘용기,’ 그리고 밤마다 여성인 척 섹스 쳇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퀴어, ‘덤보’)을 중심으로 한다.
셋은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결핍의 무게에 질식해 가는 인물들이다. 결핍에 의한 이들의 연대 혹은 사랑은 성형으로 다시 태어난 미남 ‘우주’가 전학을 오면서 균열이 생긴다. 지숙은 우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우주는 지숙을 이용해 욕망을 채운다. 우주의 만행은 그가 지숙과 관계를 갖는 도중 찍은 사진을 유포하면서 학교 전체에 알려지지만 그럼에도 극악한 아이들은 우주를 추앙하고, 지숙에게는 더욱더 모진 멸시와 비난을 퍼붓는다.
영화 '충충충'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의 제목 <충충충>은 이야기를 구성하는 세 개의 타이틀 ‘충(衝)동’, ‘충(衝)돌’, ‘충(衝)격’의 앞 세 글자를 하나로 모은 것이다. 영화는 내용과 형식 면에서 소제목들만큼이나 비관습적이고 파괴적이다. 시종일관 등장하는 핸드헬드 카메라와 그라피티처럼 화면 위에 중첩되는 컬러 그래픽, 장르를 명시할 수 없는 사이키델릭한 음악까지 영화는 더욱 극단화된 형태의 포스트 모더니스트식 해체와 전복을 반복한다.
영화는 주저하던 용기가 지숙의 염원, 즉 우주를 향한 피의 복수를 해 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모든 것의 종말처럼 보이는 이 엔딩은 그럼에도 앞서 보여진 ‘충동과 충돌, 그리고 충격’의 연속과는 다른 시선과 정서를 환기한다. 그것은 ‘연민’이다. 폭력과 결핍에 잠식당한 아이들이 추구할 수밖에 없는 가치와 상황. 그리고 그것의 결말은 경악스럽지만 동시에 연민과 공감을 가지고 고찰할 만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이자 과거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충충충>을 연출한 한창록 감독은 감각적이고도 깊은 층위를 가지고 있는 이 시대의 ‘앵그리 영 맨’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영국의 키친 싱크 리얼리즘과 90년대의 카운터컬처 영화들과는 다른, 즉 계급의 불균형 혹은 문화적인 변환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더욱 복합적인 것이다. <충충충>은 현 한국 사회의 저변을 채우고 있는 고질적인 차별과 폭력적으로 강요되는 가치, 그리고 그 바운더리에서 이탈한 일원들의 상황극을 고등학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재현한 풍자극이다.
<충충충>은 심사위원 특별상으로 영화제를 훌륭하게 마무리했지만 사실상 영화의 활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곧 일반 관객들 역시 이 영화의 충동과 충돌, 그리고 충격을 직접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충격적인 에너지를 많은 관객이 함께 공유할 수 있기를 부디 바라는 바이다.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충충충'팀. (왼쪽부터) 한창록 감독, 배우 주민형, 백지혜, 신준항이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 출처. 연합뉴스부일영화상 신인감독상, 신인남자연기상 <여름이 지나가면> (장병기, 2025)
일단 올해 부일영화상에서의 2관왕이라는 영화의 성취 이전에 <여름이 지나가면>은 상반기 가장 주목받았던, 그리고 1만이라는 넘기 힘든 스코어를 훌쩍 넘은 독립영화의 ‘히트작’이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충충충>과는 다르지만 비슷한 맥락에서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형제와 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린다. 10대 초반의 소년들이 중심이 되고는 있으나 영화는 마치 에드워드 양의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 그러했듯 장면, 장면과 이야기의 전반에 사회적 단면과 지표들이 뾰족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서울에 살던 ‘기준’이 농촌특별전형을 노리는 엄마에 의해 억지로 전학을 가는 시점으로부터 전개된다. 학교도, 아이들도 마음에 들지 않는 기준에게 전학 첫날부터 새 운동화를 도둑맞는 사건이 생기고, 그의 반감은 더 커져만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준은 학교에서 일어나는 모든 도난 사건이 부모로부터 버려진 형제, ‘영준’과 ‘영문’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알게 된다. 경계를 하면서도 그는 비행을 일삼는 영문에게 이끌리게 되고 곧 형제들과 가까워진다. 서서히 기준이 영준, 영문의 갖가지 비행과 작은 범죄들의 공범으로 추락하는 동안 그의 부모는 이 모든 원흉을 영준, 영문 형제에게 돌리며 형제들을 기준과 멀어지도록 회유한다.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결론적으로 영화는 한 순진한 소년이 비행 청소년을 만나 추락하는 과정을 그리는 청소년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이야기는 기준의 추락 서사(downward narrative)를 포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화는 지극히 평범한 한 소년이 지극히 평범하게 살고자 하는 한 형제를 만나 잃고 얻는 것들을 그리는 성장영화에 가깝다. 동시에 영화에서 보여지는 기준의 부모 역시 억울한 피해자 보다는 소극적인 가해자에 가깝다. 그들은 영준, 영문 형제를 포함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을 서울에서 사는, 그리고 교육받은 중산층보다 열등한 존재로 치부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하는 속물들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기준이 엄마와 함께 마을을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 누구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지만, 영화의 엔딩은 통렬한 씁쓸함을 남긴다. 평범하게 살지 못하는 삶이란 얼마나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것인가. 유년기부터 그것을 체득한 아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 것인가. <여름이 지나가면>은 결코 남들과 같은 여름을 보낼 수 없는 아이들, 그리고 삶을 통해 이 사회의 비정함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화다. 애정 어린 유년 영화 정도로 이 영화를 생각했다면 다시 마음을 먹기를. 그리고 지금 당장 극장으로 달려가시길!
영화 '여름이 지나가면'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김효정 영화평론가•아르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