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내가 지금 뭘 본 거지?”

영화 <티탄>(2021)을 본 배우 강동원의 한 줄 감상평입니다. 많은 관객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습니다. 쥘리아 디쿠르노 감독 특유의 난해하고 기괴한 연출. 혐오스러운 장면과 혼란한 사건 전개는 충격적이란 표현만으로 부족합니다. “이 괴물들을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죽하면 감독이 칸 영화제에서 이런 인사말을 남겼을까요? 하지만 관객이 느끼는 이 미지의 감정에는 따뜻한 잔향이 남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우리는 슬픔과 더불어 구원받는 듯한 전율을 느낍니다.

<티탄>은 평론가와 관객들이 입 모아 말하듯, 지금껏 보아왔던 영화와 전혀 다른 새롭고 급진적인 영화입니다. 영화는 신체와 기계, 젠더와 가족의 의미를 모두 해체합니다. 알렉시아(아가트 루셀)는 이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신인류의 어머니입니다. 감독의 말처럼 그는 예수이자 마리아이며 무염시태(성모마리아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어 원죄에 물듦 없이 잉태됨을 뜻함)를 연상하게 하는 인간입니다.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하느님(뱅상)에게 끝내 구원받는 속죄와 순교의 아이콘이기도 합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는 자동차 내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금속의 표면은 매끈하거나 거칠거칠합니다. 복잡한 관과 흐르는 오일은 인체 속 혈관과 혈액을 연상케 합니다. 다음 장면은 어린 알렉시아가 차 뒷좌석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관심에 고픈 그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를 흉내 냅니다. 아버지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끝내 안전벨트를 풉니다. 그녀를 제지하려던 아버지는 그만 교통사고를 냅니다.

큰 부상을 입은 알렉시아는 두개골을 티타늄으로 교체하는 대수술을 받습니다. (실제로 티타늄은 두개골에 손상을 입은 사람에게 뼈를 대체하는 데 쓰는 물질입니다) 목의 지지대와 연결된 고정장치를 머리에 부착한 알렉시아는 마치 면류관을 쓴 예수를 연상시킵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하얀 조명은 알렉시아의 신성함을 강조합니다. 퇴원한 알렉시아가 달려간 곳에 자동차가 있습니다. 그녀를 죽음 가까이 인도한 것도, 부활시킨 것도 메탈이라는 물질이었습니다.
영화 <티탄> 포스터 / 출처. IMDb
영화 <티탄> 포스터 / 출처. IMDb
알렉시아는 성장해 모터쇼의 댄서가 됩니다. 그녀는 남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단순히 그들의 눈요깃감은 아닙니다. 그녀의 춤은 오직 차와 함께 할 때만 관능적입니다. 오히려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들을 향합니다. 시선을 받는 객체와 주체가 전도되며 시선의 방향은 전복됩니다. 알렉시아는 키가 크고 마른 몸매에 중성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모터쇼에 참가하는 육감적 댄서라기보다 패션모델을 연상케 합니다. 그녀를 보는 남성의 시선 역시 음탕하다기보다 숭배에 가깝습니다.

알렉시아의 눈빛은 공허하고 얼굴은 무표정합니다. 누구와도 감정적 연결을 맺기 꺼립니다. 공연을 마치고 귀가하려는 그녀를 검은 그림자가 쫓습니다. 그는 알렉시아의 팬임을 자처하는 남자였고 그가 요구했던 것은 알렉시아의 사인입니다. 그가 선을 넘자, 알렉시아는 금발을 틀어 올린 비녀를 꺼내 그의 귀에 박아 넣습니다. 살인을 마친 알렉시아에게서 여전히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사이코패스이자 연쇄살인범입니다. 알렉시아의 비녀에 묻은 희생자의 골수와 피가 그녀를 불쾌하게 할 뿐입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아무도 없는 모터쇼장에 들어가 샤워하던 그녀는 기묘한 소리와 진동을 느낍니다.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울립니다. 금속의 표면은 빛을 받아 번쩍입니다. 이 차가 그녀의 부활과 파멸을 동시에 예고하는 무대입니다. 그녀는 안전벨트에 결박된 채, 자동차와 정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 한 번의 정사는 임신으로 이어집니다. 알렉시아의 자궁에서 엔진 오일 같은 분비물이 흘러나오고, 배는 점점 불러옵니다. 알렉시아는 그녀에게 호기심을 느낀 모델 저스틴(가렌스 마릴러)을 같은 수법으로 살해합니다.

저스틴의 친구들마저 모두 살해하려 하지만, 피해자 한 명이 알렉시아에게서 도망칩니다. 그녀는 결국 경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됩니다. 알렉시아는 집을 나서기 전, 피가 묻은 옷가지에 불을 지릅니다. 또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는 방문을 잠가 화마의 희생자가 되게 합니다. 아버지는 알렉시아에게 오랫동안 두려움과 혐오를 느껴왔습니다. 방화는 한 번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에 대한 복수입니다.

그녀의 눈앞에 광고판이 펼쳐집니다. 이미 10년 전에 실종된 아들을 찾는 아버지가 낸 광고물입니다. 알렉시아는 생존을 위해 실종된 아들의 10년 뒤 모습을 연기하기로 합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코뼈를 부러뜨립니다. 아버지 뱅상(뱅상 랭동)은 알렉시아를 보자마자 그가 자신이 애타게 찾던 아들 아드리앙이라고 말합니다. 뱅상은 유전자 검사도 거부합니다. 그의 맹목은 종교적 신념과 같습니다. 의심은 불온이자 불신의 증거입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뱅상의 직업은 하필 소방관입니다. 불을 끄고 인명을 구조합니다. 영화에는 불과 금의 이미지가 자주 쓰입니다. 영화 초반 알렉시아가 관계를 맺은 차에는 불꽃이 그려져 있으며 알렉시아의 머릿속에는 금속이 있습니다. 뱅상은 금속을 제련하는 불처럼 알렉시아를 사랑이란 불꽃으로 다스립니다. 뱅상은 소방관들에게 알렉시아를 소개합니다. “난 너희들의 신이고 이 아이는 예수다. 너희가 나를 신처럼 대하듯 이 아이를 예수로 대하거라.” 이 말을 통해 알렉시아는 예수로 재림합니다.

단 한 번도 무조건적 사랑을 받아보지 못한 알렉시아는 뱅상을 경계합니다. 멈추지 못한 살인 본능 때문에 뱅상을 살해하려 시도합니다. 그러나 뱅상은 가볍게 알렉시아를 제압합니다. 늘 생명을 빼앗던 알렉시아는 소방 행위와 인명 구조로 사람을 구원하기 시작합니다. 뱅상의 조건 없는 사랑은 점점 그녀를 변화하게 합니다.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습니다. 혈연과 성별, 인간과 기계의 경계마저 초월한 가족입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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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녀의 배는 점점 불러옵니다. 그녀는 부푼 유방과 불룩한 배를 압박 붕대로 칭칭 감습니다. 몸에 들어온 이물질에 대한 신체의 거부반응 때문일까요? 알렉시아는 극심한 가려움으로 배를 긁다가 기겁합니다. 뚫린 피부 사이로 티타늄이 그녀의 배를 둥글게 감싸고 있습니다. 알렉시아의 머리를 감싼 티타늄처럼, 금속은 그녀의 자궁을 보호하며 동시에 억압합니다. 임신을 거부했던 그녀는 어느덧 새로운 생명에 경이를 느낍니다. 그녀의 육체는 내면까지 기계화되었지만, 그녀의 정신에는 ‘인간성’이 자리 잡습니다.

영화에는 유난히 춤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신체를 통해 무언가를 표현하는 춤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수단입니다. 춤은 영적 의식에 쓰이기도 합니다. 알렉시아는 처음에 자동차 위에서 춤을 추며 기계와의 사랑에 눈뜹니다. 뱅상과 알렉시아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을 해소한 수단 역시 춤입니다. 동료 소방관들의 부추김으로 소방차 위에 올라간 알렉시아는 끈적끈적한 음악에 맞춰 모터쇼 때 보여주었던 에로틱한 댄스를 재현합니다. 그러나 알렉시아가 모터쇼 댄서로 일했을 때와 달리, 그를 보는 동료들의 시선은 불쾌함으로 가득합니다. 똑같은 춤을 추었을 뿐인데, 젠더 역할의 차이 때문에 그녀의 춤은 역겹게 여겨집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뱅상의 무조건적 사랑에 알렉시아는 마음의 문을 엽니다. 그를 아빠라 부르고 그에게 머리를 기댑니다. 남성성을 상징하는 뱅상(그는 젊음과 남성성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맞습니다)이 보여주는 맹목적 사랑은 아이러니하고 눈물겹습니다. 알렉시아가 연쇄살인범임을 눈치챈 소방관이 뱅상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려 하자, 뱅상은 그를 죽음으로 단죄합니다.

드러난 젖가슴을 보고도 그는 묵묵히 알렉시아를 아들로 대합니다. 그러나 뱅상의 내면에 점차 의심과 회의, 죄의식이 고개를 듭니다. 그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지만, 자살은 실패로 돌아갑니다. 그때 출산이 임박한 알렉시아가 그의 방을 찾습니다. 여전히 뱅상은 그를 아들로 대하며 알렉시아의 출산을 돕습니다. 알렉시아는 힘겹게 자신의 이름은 알렉시아라고 말합니다. 뱅상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알렉시아의 존재 자체를 오롯이 받아들입니다. 출산과 동시에 알렉시아는 사망합니다. 뱅상은 그녀가 낳은 아이를 쓰다듬습니다. 아이의 튀어나온 등골은 메탈로 이루어졌습니다. 신인류의 탄생을 바라보는 뱅상의 눈은 눈물과 사랑으로 흥건합니다.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티탄> 스틸 컷 / 출처. IMDb
영화 <티탄>은 바디 호러의 외피를 쓴 사랑에 대한 찬가입니다. 젠더, 인간과 기계의 경계 해체, 부모 됨과 돌봄의 은유를 뒤섞은 가족극이기도 합니다. 알렉시아의 폭력성은 자기 몸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기력과 마주합니다. 유산을 시도하려던 알렉시아의 마음에 어느덧 모성애가 자리 잡습니다. 연쇄살인이라는 원죄는 구조 행위, 죽음,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라는 통과 의례를 통해 구원받습니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비밀은 메시아이자 아버지인 뱅상의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몸의 일부가 된 티타늄, 그 차가운 금속이 그녀를 보호했고, 결국 그녀를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티탄>은 고통과 분열, 파괴 속에서 오히려 사랑과 구원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기묘한 성장담이자, 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그린 기적의 기록입니다.

이수정 문화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