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수혜주인 줄 알았더니…소프트웨어주에 무슨 일이 [빈난새의 빈틈없이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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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 'AI 소프트웨어가 다음 주도 섹터가 될 것'이라던 시장의 분위기와 대조적입니다. AI의 발전·도입 진전에 따라 데이터센터와 GPU, 전력 같은 기본 AI 하드웨어·인프라 투자가 급증하는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AI 소프트웨어·애플리케이션 섹터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게 작년 하반기부터 올 초까지 월스트리트의 컨센서스였습니다. 하지만 AI의 침투율이 높아지면서 기본 컴퓨팅 공급조차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알파벳과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투자를 더 늘리겠다고 선언한 상태이고요.
이에 따라 달라진 시장의 의견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AI 인프라 섹터의 상방 여력이 아직 남아 있고, 둘째, AI 도입 가속화에 따라 AI가 단순 보조 역할을 넘어 기존 소프트웨어를 완전히 대체할 만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겁니다. "AI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키고 있다(벤 라이트시스 멜리우스리서치 매니징디렉터)"는 것이죠.
"앞으로 더 냉혹하고 자비 없는 시장 될 것"
핵심은 AI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일선 기업에 도입되면서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옥석 가리기도 더 빠르게 시작되고 있다는 겁니다. 대니얼 뉴먼 퓨처럼그룹 CEO는 "AI가 산업의 판을 바꾸면서 (소프트웨어 산업의) 파괴가 현실이 되고 있다"며 "원래 5년 걸릴 줄 알았는데 2년 만에 일어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은 시장에서 밸류에이션 재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며 "3분의 1에서 절반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라이트시스 멜리우스리서치 매니징디렉터도 "AI가 계속 진화함에 따라 SaaS 기업들은 (사람처럼 알아서 소프트웨어 작업을 수행하는) AI 에이전트 구동 인프라 기업에 밀려날 것"이라면서 "이에 따른 멀티플 재조정 국면에 진입했다"고 했습니다. 현재의 주가 하락은 그 시작이라는 겁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나 오라클, 메타 등 '인프라 위너 기업'들이 대체될 수 있는 SaaS 기업들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HFS 리서치의 필 퍼스트 CEO는 “앞으로 더 냉혹하고 용서 없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AI 경제에서 프리미엄 주가가 정당화되려면
문제는 기존 SaaS 기업들의 기술력이 뒤처지거나 형편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핵심은 AI 시대에 맞춰 수익화 구조와 대체 불가능한 차별화 포인트를 구축했는지 여부입니다.퓨처럼 그룹의 셰이 볼루어 수석 전략가는 밸류에이션이 축소되고 있는 SaaS들의 첫 번째 문제로 과금 구조를 지적합니다. 전통적인 기업 소프트웨어는 사용자 수 기반 요금제를 사용합니다. 직원이 1,000명인 회사 전원이 소프트웨어를 쓰면 1,000개의 라이선스 비용을 매달 또는 매년 내는 방식입니다.
이런 고금 구조에선 장기적으로 AI 에이전트가 직원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사용자 수가 줄어들면 소프트웨어의 매출도 줄어듭니다. 에이전틱 플랫폼의 시대엔 적합하지 않다는 겁니다. 반면 AI 네이티브 기업들은 성과나 사용량 기반으로 과금하는 모델을 주로 씁니다. 가령 얼마나 많은 워크플로우를 자동화했는지를 보여주고 쓴 만큼, 성과가 나온 만큼만 요금을 내는 식입니다.
경쟁적으로 새로운 AI 툴이 출시되는 건 물론, AI 서비스를 API로 호출하거나 오픈소스로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의 전환 비용도 낮아졌습니다. 높은 시스템 전환 비용은 기존 SaaS들의 매출을 방어해주는 요소였는데, 이 장벽도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AI의 초기 도입을 촉진했던 오픈소스의 강점이 이제 수익화의 한계 요인이 됐습니다.
그러면서 볼루어는 "더 싸고 빠르게 진화하는 AI 도구를 내놓는 스타트업들과, AI를 대규모 번들 생태계에 통합해 제공하는 아마존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라클 등 빅테크의 사이에서 중간 규모의 기존 SaaS 제공 기업들은 '빅 스퀴즈(Big Squeeze)'를 겪고 있다"며 "AI 소프트웨어의 랠리는 분명히 있겠지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건너가지 못한 기업들은 랠리에 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AI가 몰고온 구조적인 변화 속에서 단순히 기존 제품에 AI를 접목시키면서 성장만 해도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해주던 국면은 이제 끝났고, 수익성과 대체 불가능한 경쟁우위를 증명하지 못하는 SaaS 기업들은 주가 프리미엄이 빠르게 축소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지난 5일 간 주가가 40% 폭락한 트레이드데스크가 사례입니다. 지난주 좋은 실적을 발표한 광고 테크 기업 트레이드데스크는 "관세와 인플레이션으로 고객사들이 (광고 예산) 압박을 받고 있다"는 코멘트를 빌미로 주가가 급락한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볼루어는 트레이드데스크가 여전히 기술력, 실행력, 수익 창출 역량 등에서 뛰어난 기업이지만 "광고주들은 점점 더 많은 예산을 아마존과 메타로 돌리고 있다면서 "(이제까지처럼) '잘한다'는 것만으로 AI 경제에서 프리미엄 멀티플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AI 승자에게 전리품을 몰아주는 세상에서의 새로운 현실"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오픈AI가 GPT-5를 공개한 지난 7일부터 내리 주가가 떨어지고 있는 듀오링고도 마찬가지입니다. GPT-5는 이날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몇 분 만에 프랑스어 학습 게임을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을 시연했죠. 호실적을 발표한 뒤 주가가 30% 급등하고 있던 듀오링고는 이 시연 직후 하락 전환했습니다. AI가 얼마나 빠르게 소프트웨어를 대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전리품을 독식할 승자가 될 기업
이 새로운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은 AI 에이전트 플랫폼을 구축하고 운영하는 데 필수적인 인프라 레이어를 장악한 회사입니다. AI 에이전트가 일을 처리하려면 꼭 거쳐야 하는 대체 불가능한 핵심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볼루어는 "이런 기업들에 시장은 높은 밸류에이션을 부여할 것이고, 멀티플이 아무리 높아도 매수세가 붙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물론 이 기업들이 결코 정답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모두가 예상한 것보다 빠르게 AI 소프트웨어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고, 낙관론이 짙었던 소프트웨어 섹터에 냉혹한 '승자 독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지 더 깐깐하게 선택해야 할 때가 됐습니다.
뉴욕=빈난새 특파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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